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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⑭

밀알복지재단 주최, 가작 '내 친구 수민이‘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12-01 09:09:45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국민일보, 에이블뉴스, MBC나눔의 후원으로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228편 접수됐다. 이중 김인주 씨의 ‘콩벌레’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4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공모전 수상작 총 14편을 연재한다. 마지막은 가작 수상 최영심 씨 ‘내 ㅊ니구 수민이’다.


내 ‘친구’ 수민이
최영심


15살 때의 일이다. 나는 여중을 다녔고, 새 학기를 맞아 반이 바뀌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생각에 걱정과 설렘이 가득하여 복잡했다. 당시엔 이름순으로 번호가 정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번호대로 자리에 앉아 새 학기 짝꿍을 만났다. 옆자리에 앉은 아이는 하얗고 왜소한 체형이었다.

규정상 단발머리를 했어야했는데, 1학년을 벗어나 2학년이 된 개성이 넘치는 아이들에겐 잘 지켜지지 않는 규정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정말 똑 단발을 하고는 아직도 헐렁해 보이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2학년이 되면 교복이 꼭 맞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말이다.

같은 중학교에서 1년을 다니면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그 아이의 이름은 ‘수민이’였다.

‘안녕? 몇 반이였어?’ 내가 처음 내뱉은 질문에 수민이는 빙글빙글 웃기만하면서 대답은 안하고 몹시 수줍어하는 눈치였다. 대답이 없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 뒤로도 수민이의 특이한 점은 한 둘이 아니었다.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나 쇼핑 등의 관심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수업을 같이 들어도 내 필기를 베끼기만 할 뿐 이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부끄럼이 많다고 치기엔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나는 궁금증이 많은 편이었으나 그냥 그런 아이인가보다 생각하고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수민이는 늘 그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본인이 전혀 그것에 대해 개의치 않은 듯 하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 담임선생님께서는 방과 후 나를 따로 불러내셨다.

평소 교과목에 여러모로 적극적이어서 성적도 우수한 편이었고, 학교에서 유명한 편집부 활동을 했던 터라 나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따로 불려갈 일이 전혀 없었는데 상담실까지 불려갔으니 매우 긴장했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수민이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수민이는 자폐아였다.

선생님과 짧은 면담을 끝내고는 왠지 모르게 수민이에게 거리감이 생겼다. 원래 그렇게 친한 편이 아니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 아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특히나 거부감이 생겼던 것은 짝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생님께서는 면담 때 수민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게 나에겐 버거운 부탁이었다.

그러던 중 문제는 수학여행 때 터졌다. 수민이가 수학여행을 같이 가는데 선생님께서 수민이를 나와 같은 조로 묶으셨던 것이다. 중학교 시절 한번뿐인 소중한 수학여행이었고, 나는 친구들과 오붓하게 놀고 싶었는데 수민이가 끼어든 사실이 불편했다. 가장 최악인 것은 수민이가 생리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에는 나도 사춘기 소녀였다. 특히 내 몸의 변화에 대하여 매우 민감하고 거부감이 많았는데 나도 하지 않는 월경을, 그것도 나와 동갑인 아이의 월경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반장도 아닌데 처음 짝이 되었다는 이유로 이런 대우를 받은 것이 몹시 불합리하고 생각했다.

여러모로 불편하고 분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수학여행은 시작되었고, 수민이는 평소와 같이 매우 조용히 나를 쫓아다녔다. 중간 중간 수민이를 챙겨야 할 때마다 예민함이 폭발하여 투덜거리면서도 선생님과의 약속으로 그 아이를 챙겼다. 그리고 고맙게도 수민이를 챙겨야하는 나를 나의 친구들은 이해해주었다.

걱정이 가득했던 수학여행은 생각보다 즐겁게 끝났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똑같은 학교생활을 했고, 수민이와의 관계는 그저 그랬다. 나는 똑같이 그 아이를 신경 쓰지 않았고 내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듯 수민이를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상당실에 불려갔다. 두 번째라 긴장감이 덜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담실에는 담임선생님이 아닌 다른 분이 앉아계셨고, 그 분은 나를 보며 반갑게 반겨주시며 ‘수민이 엄마’라고 말씀하셨다. 아줌마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시다가 예쁘고 착한 친구가 도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몇 번이나 내 손을 잡고 인사 하셨다. 그리고 수민이가 수학여행에 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말씀해주셨다.

미리 병원에 가서 생리기간을 조정해보려 약도 먹어보았고,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얼마나 교육을 시키셨는지를 듣고 나니 수민이를 귀찮아했던 마음이 들킨 것만 같아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민이가 어떤 아이인지, 언제 자폐증을 진단 받았는지, 초등학교는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짧은 시간의 대화로 수민이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알던 그 짐짝 같은 아이는 아니었다.

그리고는 수민이를 일반 학교로 보낸 것이 자신의 욕심인 것만 같아 고민이 컸는데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부끄럽게도 아줌마가 말씀하신 도움을 준 사람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굳이 장애 학교가 아니라 일반 학교로 보낸 것에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애석하게도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장애가 없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를 몰랐다. 당장 내 불편함에 치중되어 나도 모르게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장애인은 나에게 피해를 준다는 색안경.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보통의 사람들이 사는 삶에 가까워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도 나와 동등한 또래이자 인격을 가진 사람이고, 어느 집의 귀한 자식이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주위의 ‘친구’ 중 하나라는 것을 몰랐다.

아줌마와의 대화를 통해 색안경을 벗으려는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냉정하게 수민이를 통해서 내가 어떤 피해를 본 일이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봤는데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수민이는 그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수민이의 짝이라는 이유로 내가 계속 피해를 보고 도와주는 입장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아이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일방적이었다. 보통의 친구였다면 서로에 대한 생각과 호감을 따졌을 텐데 나는 일방적으로 내가 도움을 주는 입장으로만 생각하여 그 아이를 짐짝으로 여겼다. 수민이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그제야 수민이가 나와 동등한 우리 반 ‘친구’로 보았다.

그 이후로 수민이의 생각이 궁금하여 의사를 묻는 일이 많아졌다. 자세한 설명은 못해도 좋고 싫은 의사는 표현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좀 더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내가 어디에서 도움을 주길 원하는지, 수민이가 불편한 것은 없는지, 내가 필요한 부분에서 도와주고 있는지. 물론 그 옆에는 내 변화에 함께 어울려준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1년을 보낸 후 나는 좀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수민이와 진심으로 함께 웃으면서 마주볼 수 있었다. 더불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여 색안경을 끼는 일이 얼마나 좁은 시야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장애가 있는 친구들도 우리와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생각할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은 벌써 10년이 흘렀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수민이와 연락이 닿지 않아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수민이가 분명 좋은 어른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 수민이의 학창시절에 있어 나라는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이 추억되길 바란다.

내가 수민이를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더불어 이 이야기를 통해 나와 비슷한 사춘기를 겪고 있을 어린 친구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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