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가 장애인의 잠재된 문화예술 역량을 계발하고, 장애인도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근로 주체임을 알려 올바른 장애 인식 개선에 기여할 목적으로 지난 2000년부터 ‘장애인 고용 인식개선 콘테스트’ 개최하고 있다.

올해로 17회를 맞은 콘테스트 공모전에는 운문, 산문, 사진, 컴퓨터그래픽, 미술, 광고영상/스토리보드 등 6개 부문에 총 469명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작품 1029점을 응모했고, 1·2차 심사를 통해 총 68점이 최종 선정됐다. 에이블뉴스는 운문, 산문 부문의 입상작 26점을 소개한다. 다섯 번째는 운문 부문 입선 수상작 5점이다.

닳아지는 날들

우덕호(남, 시각·지체)

다시 태어난다면 어둠 없는…

낡은 녹음기와 적선 통을 앞세운

하반신이 문드러진 한 사내가

시장바닥을 굼벵이처럼 기어간다

고단한 삶에 찌든 야윈 등 위로

따가운 시선들 비수처럼 꽂히고

허기진 구걸 통 속에는

비껴가는 발자국소리만 쌓여간다

문득 바닥을 보이는 구걸 통 너머

오늘 함께 나오지 못한

며칠 전부터 감기몸살로 앓아누운

지하 단칸셋방 지키고 있을

아내의 쓸쓸한 모습이 떠오른다

어둠 짙은 이런 곳에서도

내일의 희망 꽃 피어날 수 있을까

이 그늘진 캄캄한 곳에도

따스한 햇살 한줌 비춰들 수 있을까

하지만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

애써 절망의 부기 가라앉히며

내일을 향해 마음 다잡는데

어느덧 하루해가 기울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한줄기

빈 통을 핥고 지나간다

라일락

최은숙(여, 정신)

할머니는 월급날 밤새 달빛을 쫓아 걷다

이른 아침 불종거리 옆 상업은행 문 앞 허리춤에

찬 전대를 만지작거리며 서성이며 라일락 향기

햇살처럼 퍼지던 날 갸륵한 목돈을 탔다

나에게 생일선물이라며 실반지 하나 끼워주고

내 눈물 다섯방울 흘리게 하더니

혼자 사는 너그 애비 순한 라일락 담배

좋아하신다며 네 보루 사고

새벽 청소부 아저씨 울리는 종소리에

흰 고무신 닦던 할머니

보라색 보따리 안고 완행버스 타러갔다

오십방울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칭찬

김미경(여, 지체)

하루는 무뚝뚝한 아빠가

내 머리 쓰다듬으며

손님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요놈이 내 아들이네.

공부 머리는 크게 없어도

인정 머리는 아주 많아"

잠자리에 대자로 누웠는데

자꾸 실실

웃음이 나온다.

*마커스레빈은 못 말려

손성일(남, 뇌병변)

몽땅 못

굽은 자세로

어두운 상자에서

줄,줄,줄!

눈물을 가슴으로 삼키는데

드르륵,

문이 열리더니

아저씨 손에 들려

어디론가 갔다

쓰레기통으로

가는구나

모든 걸 내려놨는데

땅, 땅, 땅!

벽에 박히자

당황한 못

그러자 아저씨

쓸모없다는

못의 눈물을

예술로 말린 거다

가슴으로 말한다

* 영국 예술가

투닥투닥 친구들

신현종(남, 지체)

새 버스면 어떠냐

헌 버스면 어떠냐

태안 바로 가면 어떠냐

안성 들러 가면 어떠냐

이화동산 넘나들던 우리들

밤나무 잘타던 다람쥐 같던 나

나무늘보 같던 현식이

진달래꽃 바쳤던 수로부인 영린이

몽당연필 따먹기만 하면 모조리 따가던

코 찔찔이 성구

얘들아

둘도 없는 친구들아

50년만에 만난 초딩들이

마지막 잎새같은 귀한 시간

투닥투닥 그만하고

맘껏 뒤엉켜 원없이 놀아보자

까불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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