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중개업 뿐 아니라 설비사업도 잘 되었다.

“돈을 엄청 벌었습니다. 하루에 담배도 두어 갑씩 피우고 술도 말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부도를 맞았다.

“한 군데서 터지니까 걷잡을 수가 없데요.”

강신기 씨. ⓒ이복남

그는 조금이라도 건지고자 집이며 남은 돈을 전부 아내 앞으로 돌리고 이혼을 했다. 아내는 아이들을 길러야 했던 것이다. 그는 지명수배가 떠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1998년 하는 수 없이 다시 부산으로 내려 와서 문현동에다 방을 하나 얻고 여기저기 설비사업을 하러 다녔다.

혼자 부산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기 10여년 만에 감천항 조선소에서 배관작업을 하다가 추락했다.

“갑판 위에서 용접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발판에서 미끄러지면서 아래로 떨어진 겁니다.”

5층 정도의 높이였다는데 그가 떨어지자 사람들은 놀라서 달려 왔으나 한 참 있다가 정신을 차린 그는 털고 일어나 배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는데. 그 순간 허리를 움켜쥐고 주저앉고 말았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를 본 의사는 갈비뼈가 나간 것 같다며 응급실에서 경과를 지켜보자 했다. 그런데 갑자기 숨이 차고 호흡 곤란이 오자 병원에서는 부랴부랴 다른 병원으로 그를 보냈다. 그 병원에서 검사를 해 보니 오른쪽 늑골이 산산조각이 났단다. 응급으로 수술이 들어갔다.

수술 후 3개월을 그 병원에 누워 있다가 다시 처음 간 병원으로 다시 옮겨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의 치료비는 산재로 처리를 했으나 수술의 고통이 어느 정도 아물 무렵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다. 왠지 모를 불안이 그를 엄습했고 월남에서의 전쟁 상황이 떠올랐다.

급기야 정신과 진료를 받았고 그는 정신과에 입원했다. 약을 먹으면 약에 취해서 잠이 들기는 했으나 눈만 뜨면 총알이 날고 포탄이 터지는 월남에서의 전투장면이 그를 괴롭혔다. 그동안은 잘 몰랐으나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 검사를 했는데 청각장애 4급에다 반복성 우울장애 3급으로 중복장애 2급을 받고 퇴원했다.

하사가파크골프 회원들. ⓒ이복남

더 이상 일을 하기는 어려웠다. 정신과 약을 먹었지만 월남에서의 환청과 환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몇 달씩이나 혼자 방안에 틀어 박혀서 환청과 싸우다가 겨우 찾아 낸 것이 해병전우회 남구사무실이었다.

해병전우회 사무실에는 오래 전부터 드나들기는 했지만 설비 일을 못하면서 보수도 없는 사무국장을 맡아 아침이면 해병전우회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별다른 할일은 없었지만 아침에 출근해서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하다 저녁이면 퇴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러나 사람들과 만나서 하는 이야기라고는 주로 군대 이야기였고 어쩌다 월남전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들과 이야기 할 때는 ‘그 때는 그랬었지’ 맞장구를 치면서도 혼자 있을 때면 머릿속은 월남의 정글을 헤맸다. 약을 먹고 잠을 자도 죽고 죽이는 월남의 정글은 꿈속에서도 나타났다.

그러다가 우연히 장애인 금인하 씨를 만났다. 그도 중복장애 2급이었던 것이다. 당시 금인하 씨는 하사가파크골프 총무였다.

“형님, 파크골프 한번 안 해 보실 랍니까?”

금인하 씨와 같이 낙동강 변에 있는 삼락동 파크골프장으로 갔다. 푸른 잔디밭에 서 보니 파크골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힘껏 공을 때려 보았다. 예전에 평택에 있을 때 지인들이 골프 치러 가자고 해도 마다했었는데 파크골프는 일반 골프와는 다른 것 같았다.

제주도 바닷가에서. ⓒ이복남

마음 내키는 대로 공을 치다 보니 가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번번이 오비가 났다. 처음에는 숨을 고르고 전열을 가다듬어 조심스레 공을 친다고 해도 예사로 오비가 나더니 몇 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조금씩 적응이 되는 것 같다.

하루 종일 파크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하니 밤이면 피곤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약을 먹어야 잠을 잘 수가 있다. 그는 파크골프구장에서 홀컵을 옮기고 깃대를 바로 세우는 등 파크골프구장을 보수하고 정리했다. 그런데 파크골프장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 이런 저런 일이 있기 마련이다.

“불의를 보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해병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는 예전부터 싸움은 잘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해병대 이후로 주먹을 쓴 일은 없다. 그렇지만 요즘 같아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자신도 알 수가 없어 겁이 난단다.

“내일 행사가 있으면 아침 일찍 못 일어 날까봐 약을 안 먹는데 약을 안 먹으면 잠이 안 옵니다. 그러면 알밤을 까는 거죠.”

그가 말하는 행사란 파크골프 대회인데 그는 현재 장애인골프협회 임원을 맡고 있다. 밤에 잠을 못 자면 무엇을 하는 걸까?

“그냥 밤거리를 돌아다닙니다.”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조심하고 있지만 아직은 아무 일도 없습니다.”

지금도 잠이 들면 꿈속에서도 월남의 정글 속을 헤매곤 하지만 그래도 낮에는 파크골프장의 잔디밭을 돌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때때로 월남전을 잊게 된단다.

어떤 경우라도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람들의 욕심이란 항상 나는 옳고 당신은 그르기 때문에 죽고 죽이는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하고 있다.

“내 머리 속에서 월남전을 깨끗이 씻고 옛날처럼 약 없이도 편히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 없는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기를 빌어 본다.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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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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