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이다. 일 년은 365일이고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의 사계절이 있는데 어찌 가을의 기도가 따로 있을 수 있겠냐마는 무슨 연유인지 시인은 유독 낙엽이 지는 가을을 택했다. 낙엽이 지는 때가 삶의 본질에 대한 영혼의 소리가 잘 들리기 때문일까.

양이훈 씨. ⓒ이복남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자신을 철저하게 고독한 존재로 만들어서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로 삶에 임하겠다는 비장함은 어떤 사람과 닮아 있는 것 같다.

그 어떤 사람 양이훈 씨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다.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어린나이에 수술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1급이 되어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우연히 장난으로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다시 개안 수술을 받고 깜깜한 어둠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물체를 볼 수 있게 되었으나 장애연금 등으로 조금 더 욕심을 낸 것이 그만 5급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양이훈(1973년생)씨는 부산 감만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학장동에 있는 기계관련 회사에 다녔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을 하고 가슴 설레는 첫 아들이 태어났는데 기쁨도 잠시, 아이의 눈이 이상했다. 어머니는 처음 아이의 눈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순간 가슴이 철렁했으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자위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서 까르르 웃고 방긋방긋 웃으면서 엄마하고 눈을 맞출 즈음에도 아이는 눈 맞춤도 없었고 자꾸만 이상하게 찌푸리는 아이의 수정체가 혼탁했다.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병원으로 데려 갔는데 선천성 백내장이라고 하더랍니다.”

영화의 전당에서. ⓒ이복남

부모님에게는 청천벽력 같았지만 수술하면 괜찮을 거라고 해서 8개월 만에 수술을 했다. 수술 후에는 눈이 정상으로 돌아 온 듯 했고 그 이후에는 별 탈이 없었다.

“국민학교 때는 제일 뒤에 앉았는데도 칠판글씨가 다 보였습니다.”

별다른 문제없이 학교를 다녔고 공부도 그런대로 하는 편이었다.

“어렸을 때 장래 희망은 장군이었습니다.”

왜 장군이 되려고 했을까.

“저도 ‘공산당이 싫어요! 인데 3학년 때 아웅산 테러가 있었고 얼마 후에는 다대포에 무장간첩이 나타났습니다.”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이 방문했던 버마(현 미얀마) 랭군의 아웅산묘지에 포탄테러 사건이 발생하여 수행원 등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아웅산 테러는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져 국내에서는 연일 대북 규탄대회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열기가 뜨거웠다. 그런데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인 1983년 12월 3일 부산 다대포에서 무장간첩이 생포되었다. -필자 주)

그도 크면 장군이 되어 공산당을 무찌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장군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 했다. 그는 공부 외에도 운동을 좋아했는데 야구 축구 농구 배구 탁구 등 구기 종목은 다 좋아했고 대부분 잘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장군에 대한 꿈은 멀어져 갔다. 서서히 눈이 나빠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학생이 되자 자리를 조금씩 앞으로 옮겨야 했다. 뒤에서는 더 이상 칠판글씨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몇 군데 안과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가는 곳마다 수술도 안 된다고 합디다.”

어느날 기차에서. ⓒ이복남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고 그리고 절망했다. ‘공부를 해서는 뭐하겠노. 이제는 장군이 되기도 틀렸고 운동선수도 어렵게 되었는데…….’ 혼자 있을 때면 죽음만 생각했다. 그래서 수면제를 먹어 보기도 했는데 죽어지지가 않았다.

“중3 땐가 영도 태종대 말고 오른쪽으로 가는 2송도 바닷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려고 갔는데…….”

어떤 아저씨한테 멱살을 잡혀 끌려 나왔단다.

“그 아저씨가 나중에 눈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아저씨는 모르는 것 같았고 ‘와 여와서 죽을라 카노’ 하시면서 귀싸대기를 때리는데 맞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낯선 남자에게서 볼이 얼얼하도록 몇 대 맞고 나니까 웬일인지 가슴이 좀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사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그래 눈을 감고 한번 살아 보지 뭐!’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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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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