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도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발달장애가 장애영역으로 포함되면서 발달장애 1급으로 등록하였다.

2차 광주로 출발. ⓒ이진섭 블로그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복지법(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된 것은 1981년이고, 장애인등록은 1988년 11월 1일부터 시작되었는데 지체부자유, 시각장애, 청각장애, 음성·언어장애, 정신박약 등 5가지였다. 1989년 12월30일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지체장애 신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정신지체로 변경되었다. 1999년 12월 31일 개정법에서 뇌병변장애, 발달장애, 정신장애, 신장장애, 심장장애 등 5가지가 추가되었고, 2003년에 호흡기장애, 간장애, 안면장애, 장루·요루장애, 간질장애 등 5가지가 추가 되어 15가지가 되었으며, 2007년 개정에서 정신지체는 지적장애인으로, 발달장애인은 자폐성장애인으로 변경되었다.-필자 주.)

“예전에는 정신지체라는 용어로 분류 했는데 발달장애라는 영역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C초등학교에도 특수학급이 생겨서 균도는 특수학급에서 생활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니 가까운 곳에는 특수학교가 없어서 일반학교인 D중학교로 진학을 했다.

D중학교에 특수학급이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이 학습부진아였고 균도 같은 장애인은 개교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일반학교에서 특수학급이란 본래의 자기반이라는 원적반이 있고 특수학급은 과외반이라 3월 한 달은 원적반에서 적응하는 시기였다. 더구나 특수교사는 정원 외가 아니라 정원에 포함되므로 일반학과 과목도 맡아야 했다.

광주로 가는 길. ⓒ이진섭 블로그

“균도는 한 번씩 과잉행동장애가 있어서 누군가는 지켜봐야 되는 아입니다.”

특수교사인 김00선생은 일반학생 수업에 들어가고 균도는 보조교사도 없이 원적반에서 적응해야 했다.

“이런 제도가 어이가 없었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는 아침 9시까지 균도와 함께 등교해서 균도 반 교실 뒷문 밖에다 의자 하나를 놓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하루 종일 균도를 지켰다. 그도 하는 일이 있었지만 모든 것을 야간으로 돌리고 균도와 함께 등교해서 균도와 함께 하교 하면서 그렇게 한 달을 교실 밖에서 균도를 지키다보니 학교에 소문이 나서 모든 선생들이 다 알게 되었다.

덕분에 4월이 되자 일단은 보조교사 문제가 해결되었고, 특수교사인 김 선생은 다른 반 수업을 하지 않고 균도만 맡을 수 있게 되었다. 꼬박 한달, 그 한 달은 참으로 힘들고 고달팠지만 다른 선생이나 학생들에게 장애인을 알리는 산교육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특수학급에는 균도 외에도 서너명의 학생이 더 있었는데 그가 한 달 동안 불침번을 선 계기로 2명의 부모를 설득해서 장애인등록도 하게 했다.

“김 선생한테 참 고마운 게 김 선생이 균도의 서번트증후군을 발견해 주셨어요.”

김 선생은 균도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서 지금도 원만한 검색은 혼자 할 수가 있고, 그리고 균도가 자유롭게 해석은 못할 지라도 영어 책을 읽을 줄은 안 단다.

균도와 대마도에서. ⓒ이진섭 블로그

균도는 장애가 있다 해도 지역사회에서 살아야 하므로 특수학교로 가게 되면 또래집단에서 이탈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학창시절을 공유하지 않으면 또래집단에 속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이진섭 씨는 힘들지만 아들 균도를 일반학교로 진학시켰던 것이다.

“균도를 일반학교에 보낸 것은 지금생각해도 잘 한 선택이었습니다.”

지금도 같이 학교생활을 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단다. 더구나 ‘균도와 세상걷기’를 하면서 언론에서 균도가 조명될 때마다 그 때 알던 친구들이 균도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자기 부모에게 당당히 소개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들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균도가 중학교를 졸업 할 무렵, 덩치는 커지고 과잉행동이 표시가 날 만큼 학교 현장에서 다른 친구들의 학습을 침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균도에 대한 시험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균도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괴성을 지르거나 자신의 양쪽 팔뚝 또는 손가락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마침 집 근처에 특수학교인 부산성우학교가 문을 열었고 균도는 그곳으로 진학했다.

그러나 특수학교 역시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전부 제각각인데 개별화가 인정되지 않는 교육 현장에서 균도는 별로 나아질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특수학교니까 부산장애인부모회에서 부모교육을 나왔다. 그때가지만 해도 그런 단체가 있는 줄도 몰랐다. 장애아 부모들이 뭉쳐서 아이들 문제를 하나씩 헤쳐 나가자는데 어느 부모가 반대를 하겠는가. <4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