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갔던 친구들에게 먼저 가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노래도 있었구나! 그 음악을 다시 듣기 위해 저는 그 영화를 두 번이나 더 보았습니다.”

운명은 이상한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고등학교까지는 죽도록 공부만 했기에 이런 음악이 있다는 것조차 잘 몰랐었다. 노래제목도 가수이름도 잘 몰랐지만 극장을 나와서도 그 음악들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며칠 후 서면에 있는 레코드점을 찾았다. 가게에는 한 아가씨가 있었다.

“저 혹시 졸업에 나온 노래를 좀 알 수 있을까요?”

아가씨는 친절하게도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등의 음악을 다시 들려주었다. 그의 집이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당장 레코드판을 살 형편은 아니었기에 얼마 후에야 졸업 판을 샀다. 노랫말은 전부 영어였기에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단짝 친구 중에 영어를 잘 하는 애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자기 집으로 초대를 했다.

그 때 그 시절. ⓒ이복남

그 친구는 아버지가 하야리아 부대에서 통역을 하는 군무원이어서 부대 근처에 살고 있었다. 그 친구가 영어를 잘 하는 것도 부러웠지만 친구의 방은 더욱 더 놀라웠고 그에게는 꿈같은 신세계였다. 널찍한 자기방에다, 진공관 전축과 수많은 LP판, 그리고 바이올린이 있었던 것이다.

“저는 영도 섬나라에서 연탄재를 던지며 놀았는데 그 친구는 바이올린을 가지고 놀았던 것입니다.”

그가 살던 문화하고는 너무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던 친구가 한편 부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친구는 학교 공부 외에 DJ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 것이 아니라 강남으로 가던 중 강남 가는 친구를 만나 함께 하게 되었던 것이다. 월광팝송 등 음악잡지를 샀고, 수업이 끝나면 DJ박스가 있는 음악다방으로 달려가곤 했다.

어느 날 친구가 DJ로 취직을 한다고 했다. 얼떨결에 그도 친구를 따라 갔다가 DJ로 취직이 되었다. 음악다방 사장은 친구를 보고 그도 채용한 모양이지만 사실 그는 DJ를 잘 모르는 초보자였다.

훌륭한 DJ가 되고 싶었지만 그런 공부를 가르쳐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좋은 DJ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다. 음악책을 사고, 빌보드차트를 외우고 ‘아이 라이크 쇼팽(I Like Chopin)’을 들으며 처음에는 방과 후에 2~3시간을 할애했으나 음악에 심취할수록 점점 시간이 모자랐다. 결국 휴학계를 내고 DJ에 매달렸다. 신체검사를 했는데 예전에 손을 못에 찔린 적이 있어 손가락이 불편했기에 방위(공익)로 빠졌다. 쉿! 이건 비밀이었지만 방위를 하는 동안에도 밤에는 가발을 쓰고 DJ를 계속했다.

기타치며 노래하고. ⓒ이복남

그러나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하는 수 없이 다시 복학을 했고, 교직과목을 이수했기에 중등교사 자격증과 함께 졸업장을 받았다. 부모님의 뜻과는 다르게 회계사의 길에서는 너무 멀어져 버렸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명한 DJ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그가 DJ가 되는 것을 한사코 만류했기에 하는 수 없이 DJ를 그만두고 중소기업 총무과에 취직을 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과의 타협이었다. 회사생활을 하면 시간도 더 좋고 월급도 많았지만 마음은 언제나 콩밭에 가 있었기에 일에는 흥미가 없었다.

모두가 그에게는 적이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장인 장모도 반대했지만 단 한사람, DJ시절에 만났던 아내 추옥희(64년생)씨만은 그의 편이었다. 아내는 언제나 그의 편에서 그를 격려했고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아내의 격려에 힘을 얻어 5년 만에 회사생활을 청산했다. 집에는 큰소리를 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으나, 세상은 이미 변해 있었다.

그가 떠나 있던 5년 동안 세월은 쏜살같이 지나가서 DJ박스는 이미 끝물에 와 있던 것이다. DJ로 취직을 하기는 틀린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음악다방을 직접 차려야지. 그런데 무슨 돈으로 어떻게 차릴 것인가. 사업구상이랍시고 할 일없이 세월만 갉아먹고 있었다. 그는 오토바이를 좋아했었다. 백수생활의 무료함을 오토바이 동호회 활동으로 달래고 있었다. 오토바이 동호회에서는 3~40명씩 함께하는 투어를 자주 했는데 어느 여름밤 동호회에서는 금정산 투어에 나섰다.<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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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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