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호텔 방에서는 인터넷도 잘 되지 않아 낯선 이국에서의 밤은 잠을 설치고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새벽 5시가 넘는 것을 보고 노천탕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타이센카쿠 호텔은 1관 2관 3관이 워낙 크고 넓은데다 새벽이라 사람도 없어서 왔던 길을 또 가는 등 몇 번이나 헤맨 끝에 겨우 찾을 수가 있었다.

노천탕은 크고 넓어서 탕도 몇 개나 되고 나무도 무성하고 무엇보다도 지붕이 있었다. -29일 아침에 지붕이 없는 노천탕은 너무 추워서 이용할 수가 없었다. - 노천탕에는 우리 일행 여럿이 이미 와 있었는데 필자에게는 물이 너무 뜨거워서 탕에 오래 있기가 어려웠다.

일본 호텔에서는 인터넷이 잘 되지 않지만 호텔 로비에는 와이파이가 있었다. 전화는 자동로밍이 되지만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수신 및 발신에도 요금이 발생하나, 단문 문자메시지 수신은 무료이다. 외국여행을 할 때는 로밍을 해가도 까딱하면 요금 폭탄을 맞게 되므로 선불 요금의 와이파이도시락을 준비하라고 한다. 와이파이도시락은 외국여행을 가기 전에 예약을 하고 공항에서 대여를 받으면 된다. 특히 일본은 충전기용 돼지코가 필요한데 미리 준비를 하든지 아니면 공항에서 대여하면 된다.

타이센카쿠 호텔의 아침 뷔페 식당과 노천탕. ⓒ이복남

호텔에서의 아침은 모두가 뷔페식이었는데 밥과 미소된장국 흰죽 빵 야채 과일 등 누구라도 충분히 먹을 수 있었지만 음식은 대체로 달고 짰다. 그리고 뷔페에는 계란찜 에그스크램블 계란후라이 등 여러 가지가 나왔는데 모두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흰계란이었다. 흰계란과 갈색계란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는 전부 흰계란이었다. 필자는 믹서커피 몇 개를 가져갔는데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 여행에서도 믹서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아침을 먹고 모두 버스에 올랐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반대로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데, 왼쪽 운전석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간혹 헷갈려 하기도 했다.

오늘 가는 곳은 사가현(佐賀県)의 시오이가와 파크골프장(神水川パークゴルフ場)이라고 했다. 가이드는 사가현에 대해서 몇 가지 설명을 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말 중에 아이들이 울거나 위험에 처하면 ‘이비야’로 아이를 달래거나 못하게 했다. ‘이비야’가 임진왜란 때 생긴 말이란다.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일으킨 전쟁인데 처음에는 조선군의 목을 베어오라 했으나 목을 일본으로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귀나 코를 베어오라고 했더니 조선군인 뿐 아니라 부녀자나 아이까지 아무나 닥치는 대로 귀와 코를 베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병을 코와 귀를 베어가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이비야(耳鼻爺)'라고 불렀단다. 이(耳)는 귀, 비(鼻)는 코, 야(爺)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이비야 온다'고 하면 울던 아이도 무서워서 울음을 뚝 그쳤다는 것이다. 이후로 이비야는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를 나타내는 뜻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임진왜란 때 선봉을 섰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조선에 와 보니 일본에는 없는 까치가 있었는데 까치의 발음이 일본의 승리라는 가치(かち,勝ち)라고 부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까치 몇 마리를 잡아 왔는데 이상하게도 까치가 사가현에만 살더라는 것이다. 그 후 까치는 사가현의 명물이 되어 일본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는데 요즘은 까치가 사가현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발견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까치가 전봇대에 집을 지어서 한전에서도 골칫거리인 모양인데 일본에서는 천연기념물이라니……. 그러나 필자는 사가현에서 한 번도 까치를 보지 못했다.

고이노보리. ⓒ이복남

버스는 강변을 달리고 있었는데 가이드가 왼쪽 창밖을 보라고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강위에 커다란 물고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잠시 풍어제인가 생각했으나, 일본의 전통 풍습으로 남자아이를 상징하는 잉어모양을 대나무 장대에 걸어 세우는데 이것을 고이노보리(鯉のぼり)라고 부른단다. 고이노보리는 잉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된다는 뜻으로 남자아이의 성장과 출세를 상징하며 일본의 남자어린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잉어깃발이란다. 그런데 버스가 빨리 지나가 버려서 제대로 사진을 찍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여자는? 아하, 지난 번 후쿠오카에 와서 야나가와 뱃놀이 때 주변 곳곳에 꽃과 인형 등을 장식한 곳이 있었는데 그 때 가이드가 여자 아이들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히나마쓰리(雛祭)하고 했었다. 여자아이들의 안녕을 비는 히나마쓰리는 3월 3일이고, 남자아이들을 위한 고이노보리는 5월 5일이란다.

일본의 도로는 우리나라 보다 대체로 좁은데 파크골프장에 관광버스가 올 일은 없는 지 길이 좁아서 버스는 몇 번이나 전진 후진을 했다가 겨우 파크골프장에 들어갔다.

코스 안내. ⓒ시와이가와 파크골프장 홈페이지

시오이가와 파크골프장은 총 45홀인데 북큐슈 지역에서는 최대의 파크골프장이란다. 파크골프는 잔디 위에서 클럽 하나로 직경 6cm의 공을 쳐서 30~100m 정도에 있는 지름 20cm의 홀컵에 넣는 스포츠인데 9홀이 33타 기준이다. 파크골프는 1983년 일본 홋가이도에서 시작되었는데 3세대(어린이 젊은이 어르신)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며, 자연환경을 중시하고, 에티켓을 지키는 매너게임이다.

이 세 가지는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중요시 하고 있는데 가끔 자신의 의도대로 공이 치지지 않자 화를 내거나, 클럽을 내팽개치는 행위는 파크골프의 기본에도 위배되는 몰상식한 행동으로 필히 삼가야 할 것이다.

위 초·중급자 코스, 아래 상급자 코스. ⓒ이복남

시오이가와 파크골프장은 초급 9홀, 중급 18홀, 상급 18홀로 구성되어 있었다. 파크골프에서 초급이나 중급, 상급의 구분은 난이도에 있다. 초급 코스는 거의 평면 수준이다. 그리고 중급 18홀은 약간의 난이도가 있고 상급 코스는 중급 보다 더 난이도가 있어서 홀컵에 공을 넣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시오이가와 파크골프장에서도 각 팀별로 친선게임을 했는데 필자는 초보 수준이라 몇몇 사람들과 함께 초급 9홀부터 시작했다. 파크골프는 4명이 한 조로 출발한다.

점심 먹으러 휴게실로 가면서 사무실 옆 작업 도구실 문이 열려 있어서 들여다보니 작업도구들로 가득했다. 다른 지방은 잘 모르겠지만 부산의 경우 몇 가지의 작업 도구가 있을 뿐인데 이곳에는 별의별 도구들이 많았다.

시오이가와 파크골프장에도 식당은 없으므로 가이드와 김창수 이사가 벤또를 준비해 왔다. 오전에는 초급과 중급을 쳤으니 오후에는 상급을 쳐 보아야 할 텐데 저 멀리 강 건너 상급 파크골프장을 보니까 너무 멀어서 아득했다.

시오이가와 파크골프장 작업도구. ⓒ이복남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김창수 이사에게 상의를 했다. 장애인들이 잔디밭에서 공을 칠 때는 천천히 걸어 다닐 수가 있지만 상급자 코스로 가는 아스팔트길은 너무 멀어서 걷기가 힘들 것 같다고 했더니 사무실에 상의해 보겠다고 했다. 사무실에서는 장애인을 위해서 우리나라의 다마스 같은 작업용 차량을 내 주었다. 차량에는 기사 외에 세 명밖에 탈 수가 없어서 차는 강 건너에 있는 상급자 코스까지 세 차례나 왕복을 했고, 나머지 비장애인들은 전부 걸어서 갔다 왔다.

상급자 코스에서도 각 팀 별로 친선게임을 했는데 필자는 다른 장애인 한사람과 코스 체험을 하면서 27홀을 돌았다. 상급자 코스도 티잉그라운드나 잔디는 잘 되어 있었으나 대부분의 홀컵이 무덤처럼 높고 둥글게 되어 있어서 컵에 들어가지 못한 공은 그대로 흘러내려서 몇 타수나 잡아먹곤 했다.

시오이가와 파크골프장에서. ⓒ이복남

김정포 회장도 잔디나 티잉그라운드는 잘 되어 있지만 상급자 코스는 난이도가 높아서 장애인은 어렵겠고, 더구나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아예 접근이 불가할 것 같다고 했다. 김정포 회장은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는 지체 1급 장애인이다. 일본에도 파크골프를 하는 장애인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그들은 과연 어떤 파크골프장을 이용하는 것일까.

장애인 일행 중에는 의족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의족을 한 부분이 마땅찮아서 일본까지 와서 공을 제대로 칠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본은 대부분의 파크골프장이 민영이라고 했지만 개인이 아니라 사단법인이나 공익법인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유료라서 그런지 잔디도 잡풀 하나 없이 잘 가꾸어져 있었고 티잉그라운드도 잘 되어 있었다. 산과 들에는 여기저기 연분홍 사쿠라가 만발했고 파크골프장 길가에도 노랗고 하얀 수선화가 군데군데 피어 있었는데 파크골프장의 잔디는 아직 새순이 돋지 않아 파크골프장은 그린색이 아니라 노란색이었다.

노란색 파크골프장을 뒤로하고 다음 여정을 위해 떠났다. 둘째 날 숙소는 구마모토현의 키쿠치 호텔이란다. 키쿠치 호텔도 료칸식 호텔인데 어제 보다는 좀 못하지만 그래도 온천물이 좋아서 피부가 츠루츠루(つるつる 반질반질) 해질 거라고 했다.

사가현에서 구마모토현으로 가기 위해서는 고속도로를 두 시간 쯤 달려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공을 치느라 피곤했는지 거의 다 잠이 들어 고속도로 휴게실에서야 일어났다. 가이드는 화장실을 다녀오고, 쓰레기를 버리라고 했다.

한글 안내의 화장실과 쓰레기통. ⓒ이복남

필자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 때 받은 물병을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찾으니 캔류 페트병 종이류 등 모두 한글로 표기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병뚜껑은 따로 분리하고 있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쓰레기 통 앞에 분홍 바구니가 달린 곳이 페트병 뚜껑을 담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시오이가와 파크골프장 장애인 화장실에도 ‘화장지는 사용 후 변기 안에 버려 주세요’라는 한글이 씁쓸해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한지가 몇 십 년이 지났고, 화장지는 물에 들어가면 그대로 풀어진다. 아직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신문지나 달력종이를 사용하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화장실에는 화장지를 따로 버리라는 휴지통이 있었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많이 드나들면서 화장실에 휴지통이 있는 것을 보고는 불결하다는 말이 많아지자 2~3년 전부터는 화장지를 변기 안에 버리라며 휴지통을 없앴다. 하지만 화장지를 따로 버리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모양이라 먼 이국 땅 일본의 화장실에 까지 화장지를 변기 안에 버리라는 말이 한글로 써 있음에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수세식 화장실의 변기 안에 화장지는 버리되 여성들의 생리대나 아기 기저귀 등 다른 쓰레기를 버려서는 안 된다. 가끔 생리대 등으로 변기가 막혀서 청소원들이 생고생을 한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그러나 장애인화장실에는 화장지는 변기 속에 버려도 되지만 그 외에 성인용 기저귀 등을 버릴 수 있는 별도의 휴지통이 필요하다고 한다.

키쿠치 호텔의 좌식 연회장. ⓒ이복남

드디어 키쿠치 호텔에 도착했다. 온천은 본관 1층과 동관 6층 두 곳에 있었다. 온천을 하고 저녁 연회장을 찾으니 오늘은 좌식이었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좌식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지난 번 평창 올림픽 때도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좌식문화는 요가 내지 벌 받는 것 같았다며 그래서 좌식 식당은 손님이 없었다고 한다.

일본은 다다미방의 좌식문화이고, 한국은 온돌방의 좌식문화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에게 좌식은 불편하다. 다리를 구부리기가 쉽지 않을 뿐 더러, 한 번 앉으면 일어서기는 더 어렵다. 그런데 저녁을 먹을 때는 이왕 차린 것이니 그냥 두고 뒤편에 의자 몇 개만 놔 달라고 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에서의 둘째 날의 밤도 그렇게 깊어갔다. <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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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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