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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휠체어무용의 전설 ‘김용우’

휠체어댄스스포츠 선수로 국제무대 휩쓸어

휠체어로 무용의 아름다움을 이야기로 표현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11-02 15:25:00
휠체어무용가 김용우. ⓒ김용우 에이블포토로 보기 휠체어무용가 김용우. ⓒ김용우
휠체어가 몸이 되다

외식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자녀가 살아갈 세상은 더 넓어질 것이란 생각에 아들은 호주로 딸은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보냈다. 부모님 모두 이북에서 월남한 가족사를 갖고 있어서 생활력이 무척 강한 분들이었다.

1972년에 태어난 아들이 바로 김용우이다. 김용우는 어린 시절 산동네에서 살았다. 집을 사서 이사한 것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것은 아버지 사업을 좀 더 규모 있게 발전시키기 위해서였고 어학연수를 간 것은 해외 진출을 위한 준비 차원에서였다.

호주 어학연수를 마치고 동생과 함께 귀국하기 위해 캐나다로 갔다. 귀국 전에 로키산맥 여행을 가기로 하고 동생을 포함한 7명의 한국유학생들이 로키산맥을 향해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던 여행 첫날 그만 사고가 났다.

눈길에 미끄러져서 차량이 언덕을 굴러 전복되었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친구는 차밖으로 튕겨져 나갔고, 안전벨트를 착용한 사람들은 찰과상 정도의 경상을 입었다. 김용우는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지만 좌석 위치가 나빠서 위로 아래로 출렁이면서 척수에 손상을 입었다.

1997년의 바로 그 교통사고로 김용우는 하반신마비 장애를 갖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꿈이 많던 혈기왕성한 젊은이에게 더 이상 걸을 수 없으니 휠체어를 타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은 더이상 살아 있을 이유가 없는 사형 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캐나다로 날아온 아버지는 의사 말을 믿지 않았다. 40일 동안 병상에서 간호를 하며 아들을 반드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혹독하게 운동을 시켰다. 김용우가 병원에서 얻은 별명 ‘슈퍼맨’은 아버지의 억척스러운 노력의 결과였다.

휠체어댄스스포츠 선수로 국제무대를 휩쓸다

긴 방황을 하던 어느 날 휠체어댄스스포츠 동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휠체어 사용자가 비장애인 무용수와 호흡을 맞춰 춤을 추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는 휠체어댄스스포츠가 도입되지 않았던 때라서 휠체어댄스스포츠를 배울 곳도 없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기에 동영상을 교재 삼아 혼자서 시작하였다. 그때가 2002년이었다. 월드컵 열기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을 때 김용우는 도전을 향한 담금질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저 휠체어댄스스포츠 선수가 되려고 해요.” 아버지는 아들이 강한 의지를 보이자 좋아하셨다. 축구선수였던 아버지는 선수 생활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가 선수가 된 것을 보지 못하고 그해 8월 간암으로 세상을 뜨셨다.

선수로 활약한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한 것을 김용우는 가장 아쉬워한다. 휠체어댄스스포츠는 휠체어를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운동선수만큼의 체력이 소모되고, 무용이기 때문에 감각도 있어야 하고, 연기이기 때문에 표정이 중요한 종합예술이라 많은 노력이 필요하였다.

김용우는 독학으로 익힌 휠체어댄스스포츠로 2003년 일본에서 개최된 휠체어댄 스스포츠경기대회에 출전해서 결승에 진출하여 휠체어댄스스포츠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그 후 아시아휠체어댄스스포츠경기대회 4년 연속 우승,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4위를 하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선수로 인정을 받았다.

김용우는 국제대회에 첫 출전하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2005년 홍콩에서 개최된 아시아휠 체어댄스스포츠경기대회에 우리나라는 출전을 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김용우는 선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제대회 경험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2팀을 꾸려서 자비로 출전을 강행하였다. 대회장에서도 해프닝이 벌어졌다. 한국이 그동안 출전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선수 입장을 할 때 들고 들어갈 국가 피켓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공연 사진. ⓒ김용우 에이블포토로 보기 공연 사진. ⓒ김용우
김용우는 종이에 매직으로 KOREA 라고 직접 쓴 것을 들고 맨 마지막으로 선수 입장을 하였다. 전체 선수단의 절반이 일본 선수단이었을 만큼 화려하고 강한 선수단을 이끌고 온 일본이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며 대회 분위기를 일본이 압도하고 있었고, 실제로 일본은 아시아휠체어댄스스포츠 강자였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어 김용우팀이 연기를 하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형성되었다. 일본팀이 갖고 있지 못한 라틴댄스의 우아함이 보태져 휠체어댄스스포츠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연기에 심사위원은 물론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우승은 KOREA의 김용우에게 돌아갔다. 불모지에서 일군 통쾌한 승리였다.

휠체어무용으로 이야기하다

김용우는 우리나라 최초의 휠체어댄스스포츠 선수로 활약하며 한국 휠체어댄스스포츠의 역사를 써 왔는데 2007년 장애인과 비장애인 무용수로 구성된 영국 현대무용단의 공연을 보고 무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휠체어 댄스스포츠가 1분 30초 동안 선수가 갖고 있는 고난위도 기술을 보여 주는 것이라면, 휠체어무용은 긴 호흡으로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는 휠체어무용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휠체어댄스스포츠를 배울 때처럼 휠체어무용을 가르쳐 줄 스승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일반 춤을 배우면 그것을 휠체어 춤사위로 변형시키며 안무를 짰다. 이렇게 해서 2009년 첫 무용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휠체어로 현대무용과 한국무용을 선보이며 휠체어무용이란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현대무용은 휠체어댄스스포츠에서 구사했던 라틴 춤을 응용하였지만 한국무용은 새로 창안해야 했다.

김용우는 휠체어의 움직임과 한국무용의 전통적인 움직임을 공부하면서 휠체어 한국무용의 동작을 만들고 있는데 상체의 움직임이 매우 정교하고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무대에 연기하는 무용수로서의 활동 외에도 휠체어무용의 안무가로 어떻게 하면 휠체어로 무용의 아름다움을 이야기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연구하고 있다.

그들이 있으면 무대가 빛난다

“저 두 사람 부부예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몸이 되어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휠체어를 장애인 보장구가 아닌 무용소품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휠체어무용에 빠져 있는 관객에게 옆자리에 있던 행사 관계자가 무용수 관계가 부부라고 귀띔해 주면 그때부터 질문이 이어진다.

결혼 사진. ⓒ김용우 에이블포토로 보기 결혼 사진. ⓒ김용우
김용우는 2012년 11월 11일 결혼하였다. 부인은 명문대 무용과 출신의 무용수이다. 함께 공연을 하다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이야말로 찰떡궁합이다.

그들처럼 사랑한다면 결혼의 환상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춤은 이제 부부의 삶이 되었다. 춤에 대한 열정과 무대에 대한 열망으로 무장한 부부 춤꾼이기에 그들이 있으면 무대가 빛난다.

# 주요 경력

(사)빛소리친구들 무용단 단장,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문화예술위원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이사, 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중앙(전임)이사 및 (현)심판위원 평창올림픽 장애인 멘토 선정.

2004년~2009년 휠체어댄스스포츠 국가대표 2005~2008년 한국. 홍콩. 일본. 대만. 휠체어댄스스포츠 아시아대회 4년 연속 우승 2006~2008년 휠체어댄스스포츠 세계선수권 결승 진출 6위, 4위 외.

<휠체어 무용 공연 120여 회>=2006년 전국무용제 초청공연/2006년 장충체육관 중국 장애인기예단 초청공연 “My Dream” 공연/2007년 일본 나고야 한국 장애인 예술가 초청공연/2007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장애인문화초대석” 공연/2008년 시청 광장 “하이 서울 페스티발” 공연, 2008년 코엑스 광장 “강남 댄스 페스티벌” 공연/2009년 세계장애인문화예술축전 개막식 공연/2010년 서울문화 재단 홍은예술창작센터 “춤 열다 1” 서대문문화예술회관/2010년 제30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 개막공 연(63빌딩)/2010~2011년 부산국제무용제 초청공연/2011년 대학로예술극장 “무엇을 바라보는가?” 공연/2011년 제11회 전 일본 휠체어댄스스포스 선수권대회 초청공연/2013년 경찰의 날 기념식 축하 공연(세종문화 회관)/2013년 평창장애인올림픽 엠블럼 선포식 공연/2014년 인천 송도 컨벤시아 “노피 노피 페스티벌” 공연/2014년 도전 한국최고 수상 및 축하공연/2014년 인천 국제 장애인 문화엑 스포 공연/2014년 국회 헌정기념관 사랑의 릴레이 “희망나눔 콘서트” 공연/2015년 핀란드 ACCAC 페스티벌 초청공연/2015년 KBS “열린음악회” 공연/2015년 평창 올림픽 D-1000일 기념축제 “천일의 약속” 공연/2016년 제2회 평창 페럴림픽 데이 축하공연/2016년 세계 한류 대상. 글로벌 고객만족대상 시상식 축하공연/2016년 한국무용협회·열정 NO.1 젊은 춤꾼들의 이야기/2016년 핀란드 ACCAC 카니발-탐페레. 요엔수. 2개 도시 초청공연/2016년 호암예술회관 “오즈의 마법사” 축하공연/2016년 그랜드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 “대한민국 톱스타상 시상식” 축하공연/2017년 노원어울림 극장 “푸 르나메 희망콘서트” 공연 외.


# 수상 경력

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공로상 수상 척수장애인협회 1회 자랑스러운 척수장애인상 수상 도전 한국인 운동본부 한국판 기네스 인증 대한민국최고기록 인증 수상 제8회 자랑스런 한국 장애인상 수상 제10회 대한민국 장애인문화예술대상 대상 대통령상 수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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