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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물의 시간’ 정영선 작가와의 만남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0-06-01 11:57:03
이 소설은 한 인간의 죽음을 전하는 비통한 부고이자, 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연서라고 했다. 양윤의 문학평론가의 말이다. 소설에 나오는 한 인간이란 명성왕후이다. 작가는 명성왕후와 함께 사라진 조선의 시간을 얘기하고 있다. 그 때 사라진 것이 어디 명성왕후 뿐이겠는가. 조선의 시간과 함께 누각(樓閣)의 물시계도 사라졌던 것이다.

‘물의 시간’(산지니)은 정영선 작가가 조선의 마지막 국모인 명성왕후를 시간 속에서 새롭게 재조명한 소설이다.

“그동안의 픽션이 명성황후를 야심찬 정치가, 지엄한 국모, 남편의 사랑을 바라는 여자로 그렸다면 이 소설에선 폐경으로 자신의 시간을 잃은 여자이자 조선의 시간을 잃어 가는 황후로서의 모습을 복합적으로 담으려 했다. 황후뿐만 아니라 조선도 폐경 직전이지 않았는가.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떠나 오직 조선의 것이기 때문에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싶었다.” 정영선 작가의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물의 시간’을 알게 되었는데 이달 말에 정영선 작가와 ‘저자와의 만남’이 '백년어 서원'에서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5월 25일 작가와의 만남을 앞두고 ‘물의 시간’을 읽었다. 조선 말기에 대한 많은 자료와 소설의 구성, 문체 등은 가히 경탄할 만 했다.

그런데 ‘물의 시간’을 읽으면서 약간은 편치 않았다. 정영선 작가가 역사 선생이라는 것을 감안한다 해도 역사적 사실과 소설과의 괴리 때문이라고나 할까.

‘물의 시간’에서 박봉출은 오래전 고향마을에서 갑자기 강물이 불어 여섯 살 민씨 처자를 업어서 건네주었고, 그녀가 중전이 되자 왕후를 위해 파루의 북을 쳤다. 왕후에게는 폐경이 찾아오고, 머리는 염색을 했고, 시커먼 기미는 화장으로 가리고, 앙상한 몸매는 몇 겹이나 되는 옷으로 가렸다. 지리학자도 접견하고 파루의 북소리를 세기도 하는 망해가는 조선 같이, 명성황후는 아름다운 비운의 여인으로 그려졌다.

한말비사(韓末秘史)로 매천야록(梅泉野錄)을 남긴 황현(黃玹)은 조선 후기의 우국지사인데 을사늑약(乙巳勒約) 후 국치의 통분으로 순국하였다. 매천야록에 의하면 임오군란으로 민비가 피난 갔을 때 한 노파가 민비인 줄 모르고 ‘요망한 중전 때문에 난리가 났다’고 했다. 민비는 꽁하고 있다가 환궁하여 그 노파를 찾았으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그 마을 사람 전체를 몰살 시켰다고 한다. 필자는 그런 민비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작가와의 만남에서 필자는 불편했던 심기를 질의 했는데 작가의 답변은 너무나 간단하고 명쾌했다. ‘이것은 소설이다’ 작가는 역사 선생이니 명성황후나 매천야록을 모를 리가 없을 테니 소설과 사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 한 필자의 어리석음이여! 소설은 픽션(fiction) 즉 허구의 이야기다.(story) 사실은 논픽션(nonfiction)이고 역사이다.(歷史, history) ‘물의시간’은 역사소설은 아니고 역사적 소설로써 몽환적인 감성소설이었다.

‘물의 시간’이 아무리 픽션이라 할지라도 의아한 부분은 또 있었다. 왕후를 흠모하는 박봉출은 진무영(鎭撫營)의 군사였다. -조선시대 진무영은 해상경비의 임무를 맡았던 군영으로 강화도에 있었다.― 박봉출이 휴가를 얻어 맞재를 넘어 집으로 갔다. 몇 년 째 지붕을 이지 않았는지 지붕의 왼쪽이 푹 꺼져있고, 담 아래는 풀이 무성했다. 뺑덕어미 같은 계모는 자식을 데리고 어디론가 달아나고 없었다. 자신을 좋아했던 박현감네 규수였던 아내는 헝클어진 머리끝에 비녀가 걸려있고 치마와 저고리는 달빛에 봐도 짧고 더러웠으며 방은 얼음장 같았다. 한마디로 박봉출의 집은 비참할 정도로 가난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1882년 임오군란은 군인들에게 급료를 지불하지 않아서 일어났었다. 박봉출도 진무영의 군사인데 월급이 없었을까. 그리고 아내는 박현감의 딸인데 아내의 친정도 이렇게 비참했을까.

그것보다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 또 있었다. 박봉출은 막걸리를 한 잔하고 주막을 떠났는데 주인이 말렸다. “이 시각에 맞재를 넘으려고…” 입추를 지난 해는 금방 어두워졌다. 열흘달이라 길은 하얗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새들을 만나고, 사슴을 만나고, 여우에게 홀리지 않으려고 귀를 막고,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늑대를 때려눕히고, 맞재를 너머 마을로 들어설 때는 제법 밤이 깊었으리라.

박봉출이 아버지가 계신 사랑방 문을 여니 ‘머리카락은 탕건 사이로 빠져나와 산발이 되었고 음식물이 묻은 수염엔 벌레가 꼬물거렸다. 윗목에 둔 요강은 언제 비우고 안 비웠는지 방바닥으로 넘쳐 질척거렸고…’ 박봉출이 아무리 눈이 밝기로서니 깜깜한 밤중에 아버지의 수염에 벌레가 꼬물거리는 것까지 어떻게 보였을까.

작가는 ‘방에 불을 켜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글쎄, 박봉출의 아버지는 맹인인데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맹인의 방에 불을 켜 두었을 리가.

아무튼 ‘물의 시간’에는 두 사람의 맹인 즉 시각장애인이 나온다. 첫째 맹인은 박봉출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관상감의 첨정인데 종묘에 제사 지내는 시간을 잘못 알린 죄로 의금사에서 곤장 백대를 맞고 내쳐진 후 아내를 잃고는 눈이 멀었다. 눈이 먼 아버지는 고향 여주에 내려와 살았는데 여주는 왕후의 고향이기도 하다.

첨정(僉正)은 조선시대 시(寺) 원(院)감(監) 등의 이름이 붙은 관아에 속한 종 4품직이다. 그리고 의금사(義禁司)는 1894년 갑오개혁 때 의금부를 개칭한 것이니 아버지는 의금부에서 곤장을 맞았고, 박봉출은 의금사에서 곤장을 맞았을 것이다.

아들 박봉출이 휴가를 나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불렀다. “맞재를 넘거든 진무영으로 가지 말고 이 편지를 가지고 관상감으로 가거라.” 그렇게 해서 박봉출이 관상감의 전루군(傳漏軍)이 되어 물시계를 지키게 되지만 아버지는 눈을 감은 맹인인데 어떻게 편지를 쓸 수 있었을까.

두 번째 맹인은 바로 박봉출이다. 그는 왕후를 위해 파루의 북을 울렸지만 파루를 잘못 울렸다는 죄목으로 의금사에 끌려가 곤장 백대를 맞고 나와 왕후의 죽음을 듣고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필자는 아버지나 아들 박봉출처럼 극한 상황이 생기면 눈이 먼다는 사실은 소설 뿐 아니라 실제에서도 많이 보았다.

지금은 이미 유명을 달리했지만 12·12사태 때 김오랑 중령이 숨지자 그 충격으로 아내 백영옥은 눈이 멀었었다. 따라서 박봉출이나 그의 아버지가 곤장 백대를 맞고 실의에 빠져 눈이 먼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눈 감은 맹인이 글을 쓰다니…. 박두성 선생이 제생원 맹아부(濟生院盲啞部)에 교사로 있으면서 한글 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을 완성 한 때가 1926년이니 당연히 명성왕후 시절에는 점자도 없었다. 소설에서 박봉출은 눈이 먼 후에 마음의 눈으로 왕후의 죽음을 보고 글을 썼다. 2년이나 걸려서.

‘왕후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단 서너 마디의 말이다. 나는 그 부분을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느라 종이를 몇 장이나 버렸다.’ 한석봉이 절에서 공부를 하고 왔을 때 그의 어머니가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써라’ 하시고는 불을 껐는데, 다시 불을 켰을 때 떡은 고르고 가지런했지만 한석봉의 글씨는 들쑥날쑥 삐뚤빼뚤했다고 한다. 요즘같이 볼펜과 종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붓에다 먹물을 묻혀서 눈 감은 맹인이 글씨를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했다니 종이나 붓을 마음으로 볼 수가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일까.

그 뿐 아니라 ‘물의 시간’에서 눈 감은 맹인 박봉출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앉아서 천리, 서서 구만리를 내다보는 천리안을 가진 사람쯤으로 그려진 것 같다. 소설에서 장애인 특히 시각장애인이 특별한 재주를 가진 아름다운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에 대해서는 작가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소설이 아무리 허구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작가들이 장애인이 사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여 빚어지는 지나 친 미화는 독자들로 하여금 장애인의 삶을 오해하게 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싶은 우려도 지울 수가 없다.

박봉출은 전루군이 되어 누각의 물시계를 지키면서 왕후를 위해 북을 쳤다고 하는데, 북 치는 시간은 물시계가 알려주었다. 조선시대의 시각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로 하루를 열두 시간으로 나누었는데 해가 뜨면 하루가 시작되고 해가 지면 하루 일을 마무리 했다.

그러나 밤을 가리키는 시간은 또 달랐다. 밤이 시작되는 술시부터 새벽의 인시까지를 오경(五更)이라 해서 하룻밤을 초경 이경 삼경 사경 오경으로 나누었고, 다섯 시간을 또 다섯 점으로 나누었다. 밤 이경(二更 밤 10시경)이 되면 성문을 닫는 통행금지로 인정을 쳤다. 인정(人定)에는 스물여덟 번을 쳤는데 이것은 우주의 일월성신(日月星辰, 28별자리)에게 밤사이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경삼점(五更三點 새벽 4시경)이 되면 파루를 서른세 번 쳤다. 파루를 33번 울리는 것은 제석천의 삼십삼천에게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평안하기를 기원한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물시계는 국보 제229호 보루각자격루(報漏閣自擊漏)이다. 「중종 31년(1536)에 다시 제작한 자격루의 일부가 현재 남아 있다. 청동으로 된 큰 물그릇은 지름 93.5㎝, 높이 70.0㎝이며, 작은 물그릇은 지름 46.0㎝, 높이 40.5㎝이다. 작은 물그릇이 놓였던 돌 받침대는 지금 창경궁 명정전 뒤에 2개가 남아 있다. 」(문화재청)

여담이지만 ‘경을 치다’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되게 꾸지람을 듣거나 벌을 서다’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 경이 바로 인정이고 파루이다. 밤 10시, 이경이 되면 인정을 쳐서 통행을 금지 시켰는데 어쩌다 밤에 돌아다니다가 순라군에게 잡히면 순포막으로 잡혀 갔다. 그러나 통행금지 외에 다른 죄가 없으면 순포막에서 기다리다가 새벽 4시, 오경이 되어 파루가 울리면 풀려났기에 경(更)을 치고 나온 데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경(黥)은 조선시대에 행해졌던 형벌의 하나로서 자자(刺字)를 의미하는 경형(黥刑)의 준말이라고도 한다.

‘물의 도시’에는 물시계의 찌꺼기로 소금이 남는데 그 소금은 궁중의 이야기를 남겨서는 안 되는 중전과 함께 묻힌다고 했다. 작가와의 만남 중에 한 독자가 웃었는데 ‘물시계에서 소금이 나온다고 친구에게 거짓말을 할 뻔했다.’는 것이다. 소설에는 왕후를 만났던 실존인물인 비숍 여사(Bishop, Isabella Bird)가 지리학자로 나오는데 그녀는 “그 나라에선 그 물을 햇볕에 말린다네. ~그 걸 그 나라 왕후에게 준다는 거야”로 물시계에서 소금이 생기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진 소설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소설에서의 무녀처럼 “다가오지 않은 시간은 지나간 시간과 똑같다. 지나온 시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듯이 다가오지 않은 시간으로도 갈 수 없다. ~보는 방법이 다를 뿐….”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맹인의 표준어는 시각장애인임을 알려드립니다. 맹인은 시각장애인의 옛 표현으로 소설에서 맹인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에 기사 본문에서 맹인이라는 용어를 일부 활용했습니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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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 (gktk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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