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중국 등에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7~8월에 꽃줄기 끝에 산형꽃차례(다수의 꽃이 한 곳에 모인 형)를 이루며 4∼8개가 달린다. 백합처럼 생긴 연분홍 또는 노란색 꽃을 피우는데 꽃은 아름답다 못해 요염하기까지 하다.

봄이 되면 얼었던 대지를 비집고 연녹색의 풀잎이 고개를 내민다. 하늘하늘 봄바람을 마음껏 향유하다 어느 날 슬그머니 시들어 버린다. 긴긴 장맛비도 그치고 여름이 무르익을 때쯤이면 시들은 풀잎을 헤치고 싱싱한 꽃대가 불쑥 솟아올라 탐스런 꽃을 피운다.

지난 7월 어느 담벼락에서 찍은 상사화. ⓒ이복남

상사화는 잎이 지고 난 다음에 꽃이 피어나므로 천년을 살아도 잎은 꽃 못 보고, 꽃은 잎을 만날 수 없는 안타까운 그리움을 일러 상사화(相思花)라 했던가.

그런데 상사화 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꽃이 있다. 꽃무릇 즉 석산((石蒜)이다. 상사화나 석산이나 둘 다 백합목이고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잎이 먼저 올라와서 바람에 하늘거리다가 잎이 시들고 난 다음에 꽃대가 올라와서 꽃을 피우는 것도 같다.

상사화는 봄에 잎을 피우고 잎이 지고 난 다음인 7~8월에 꽃이 피는데 연분홍 또는 노란색 꽃을 피운다. 그런데 석산은 꽃이 지고 난 다음인 가을에 잎이 나서 겨울을 견디다가 5월에 잎이 시들고 9월쯤에 붉은 꽃이 핀다.

청각장애인단체 찬불가 발표회. ⓒ이복남

이처럼 상사화와 석산은 비슷하지만 다른 꽃이다. 그러나 둘 다 잎은 꽃 못 보고, 꽃은 잎을 만나지 못 한다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의 엇갈린 사랑이라는 것은 비슷하다.

예전에 한 청각장애인 단체에서 마련한 수화발표회가 있었다. 청각장애인들이 그 동안 익힌 기량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그런데 청인 자녀들이 ‘벙어리 자식’이라는 주위의 놀림에 속상했던 심정 등을 눈물로 이야기 했다. 옆에서는 수화통역사가 통역을 했고, 관객들은 모두가 목이 메어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그렇지만 농인들은 청인 자녀들의 눈물에 젖은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목이 메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날 청각장애인 행사에 시각장애인들이 찬조출연을 했던 것이다. 청각장애인들은 춤을 추고 시각장애인들은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청각장애인은 시각장애인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시각장애인은 청각장애인의 애절한 몸짓의 노래를 볼 수는 없었다.

정발장군 동상 뒤편의 꽃무릇1. ⓒ이복남

소리의 세계를 모르는 청각장애인 그리고 빛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 그들은 바로 상사화 같은 엇갈린 사랑이었다.

낚시를 좋아하는 시각장애인이 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청각장애인도 있다. 어쩌다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함께 밤낚시를 갔다. 예전에는 필자도 이런 자리에 자주 동행하였다.

밤낚시는 주로 송도 앞바다로 간다. 배를 띄우고 뱃전에 낚시 줄을 드리운다. 달 밝은 밤이면 달빛에 출렁이는 은빛 물결이 뱃전으로 밀려오는데 시각장애인은 달빛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청각장애인은 달빛의 소리를 본다. 상사화 같은 장애인의 심정을 비장애인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물론 상사화 같이 엇갈린 사랑이야기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뿐 아니고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내가 너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 수 있겠느냐”

정발장군 동상. ⓒ이복남

남의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은 채 자기 고집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스스로가 서로를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가 되고 만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입장을 바꿔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역지사지는 서로 다른 장애인 유형 간에도 필요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비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도 필요하다.

서로가 볼 수 없고 들 수 없는 상사화 같은 시각장애인의 노래나 청각장애인의 춤일망정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상사화가 비록 잎과 꽃이 만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같은 알뿌리에서 나오는 것이거늘.

벌써 처서도 한참이나 지난 가을이라 올해의 상사화는 이미 오래 전에 졌다. 그런데 필자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꽃무릇 즉 석산이 이제야 피고 있지 않은가. 며칠 전 초량 정발장군 동상 옆을 지나다가 붉은빛을 자랑하는 꽃무릇을 보고 문득 지난날의 상사화 같은 사랑이 생각났다.

정발장군 동상 뒤편의 꽃무릇2. ⓒ이복남

그래서 며칠 전 일부러 꽃무릇이 피어 있는 정발장군 동상을 찾았다. 꽃무릇 즉 석산은 정발장군 동상 뒤편 소나무 사이에 탐스럽게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그러나 그곳을 지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큰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은 곳이라 약간은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서 꽃무릇축제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여쁜 꽃을 볼 때 잎은 꽃 못 보고 꽃은 잎 못 만나는 상사화 같은 사랑도 한 번 쯤은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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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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