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소록도병원의 직원지대에 있는 미감아 보육소 아동과 병사지대의 부모는 한달에 단 한 번 바람을 등지고 도로 양 옆으로 갈라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만나야 했다.<사진으로 보는 소록도 80년>

어린 사슴을 닮은 소록도

찬양은 누린 자의 몫이고, 감사는 받은 자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모습을 한 그 섬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누리지 않고 섬기는 기쁨에 대해, 받지 않고 베푸는 행복에 대해, 귀 기울여 보라고. 밥 한 끼와 이불 한 채로 천국을 세우는 사람들의 섬, 그 섬에 다녀왔다.

위에서 보면 섬전체가 어린 사슴을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 소록도.

그 섬에 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처음엔 가장 쉬운 방법으로 그 섬에 갔다. 김포에서 여수까지 비행기로 가서 다시 버스로 녹동까지 가는 길이다. 그렇게 3시간 30분이면 한반도 남쪽 고흥반도 끝자락 녹동에 서게되고 거기에서 잡힐 듯 가까이 소록도가 보인다.

국립소록도 병원은 1916년 처음 개원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센병 환자만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의학의 발달로 한센병 환자가 점차 사라지면서 1960년대 이후 수용 위주에서 치료 위주로 관리 정책을 바꾸었고 한때는 6천 명을 웃돌던 원생 수가 급격히 감소해 지금은 600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다. 이제는 발병률도 거의 없거니와 약물에 의해 완치가 가능한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이들마저 떠나고 나면 소록도는 한때 병원이었다는 기록만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현재 소록도에 사는 환자들의 평균 연령은 71세, 고령의 환자들이라 해마다 소록도의 주민 수는 빠르게 줄어든다.

몸이 마음을 구속하는 노부부

피붙이 앞에서조차 죄인으로 내몰리던 시절, 그 긴 세월의 해풍을 견딘 섬은 이제 고즈넉이 바다 위에 떠있다. 무르익은 가을이 스산해질 무렵 1999년 처음 소록도를 찾았을 때 김대근 할아버지와 이정순 할머니 부부를 처음 만났다.

이 노부부는 동생리라고 불리는 마을에 살고 있다. 쪽마루를 지나 이어진 방 한 칸. 한눈에 다 보이는 방안이 분주하다. 할아버지의 운동시간인 듯 하다. 눈도 보이지 않고 손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옷매무새를 조금은 덜 불편한 할머니가 잡아 준다. 신을 신는 일도 할머니의 도움이 필요하다. 병의 후유증으로 손과 발이 끝마디부터 제 모양을 잃어간 탓이다.

서른 네 해를 이 섬에 살고 있지만 운동 삼아 나온 부부의 산책은 동네 한 바퀴가 전부다. 예전엔 시절이 몸을 구속하더니 지금은 몸이 마음을 구속한다. 그래도 남편의 걸음에 한 박자씩 한 박자씩 자기 걸음을 늦추는 아내의 마음이 오늘도 동네 한 바퀴를 돌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서둘러 다시 집으로 향한다.

하루에 두 차례 간호사가 마을에 거주하는 환자들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지금 소록도에 한센병을 앓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병을 앓고 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 연로해서 후유증으로 인한 장애가 깊어가기에 날마다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해야 한다.

▲한센병 환자에게 식사돕기를 하는 한 간호사의 모습.<국립소록도병원-사진으로 보는 소록도 80년>
간호사와 환자는 한가족

간호사와 환자들은 대부분 한 식구 이상으로 허물없이 지낸다. 여기 소록도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들은 도심지 여느 병원의 그들과는 다른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20년 가까이 이들 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간호조무사도 있다.

간호사들만큼 환자들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또 있다. 자원봉사자들이다. 소록도엔 자원봉사를 오는 단체며 개인들이 많다. 노령화, 중증장애, 치매 등으로 혼자 사는 것이 어려운 환자는 점점 늘어나는데 현재의 간호 인력으로는 다 도울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희생과 봉사 정신으로 소록도를 찾는 자원 봉사자는 큰 힘이 된다. 자원봉사회관에 짐을 풀고 역할에 따라 조를 짜서 움직인다. 청소, 심부름, 목욕 등을 돕는 노력봉사. 도배, 이발 등의 기술봉사. 국악 공연이나 풍물 같은 문화봉사.

봉사단원들은 제 할 일을 찾아 섬의 구석구석을 누빈다. 그중 20년째 매년 두차례씩 200여명정도의 인원이 한꺼번에 오는 단체가 있다. 대구에 소재한 '참길회'라는 단체다. 참길회의 봉사 활동 가운데서 소록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있다. 쌀이며 옥수수를 튀겨내는 뻥튀기다.

대부분 삼십 년, 사십 년 전에 소록도에 들어와 섬을 떠난 적이 없으니 소싯적 뭍에서 경험한 뻥튀기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뻥튀기란 것이 눈과 귀와 입을 동시에 즐겁게 하는 먹을거리 아니던가. 참길회의 봉사 일정은 4박 5일. 뻥튀기 기계 앞에 앉은 사람은 돌아가는 날까지 손잡이를 돌려야 한다.

▲소록도는 행정구역상으로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이며 육지인 도양읍(녹동)과의 거리는 500미터, 전체 면적은 150만평이다.
하루 종일 분주한 5병동

마을에서 병세가 악화된 환자들은 병원본관 입원실에 입원한다. 국립 소록도 병원 제 5병동은 상대적으로 증세가 심한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곳이다. 현재 5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모두 65명.

한센균에 대한 면역력이 적은 극히 일부의 사람에서만 발병하는 한센병. 사회에선 아직도 전염되고 유전되는 병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다. 한센병은 천형의 병이 아니라 약물로 치료가 되는 전염병에 불과하다. 병에 걸렸더라도 치료약을 먹으면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장기간 약물 치료를 하면 완전히 낫는다.

대부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환자들이다 보니 그만큼 간호사들이 바삐 움직여야 한다. 환자들의 손발이었다가 환자들의 마음이 된 사람들로 국립 소록도 병원 제 5병동 복도는 하루 종일 분주하다.

병실에 새로 깔 시트며 이불, 환자들이 갈아입을 옷이 한 짐 지나간다. 생존을 위한 모든 것을 남에게 의지해야 한다면 삶은 너무 잔인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남의 생을 오롯이 안고 있는 사람들은 덤덤하다. 잔인한 것은 오히려 지금 불편해 하는 당신 마음이라는 듯 낯선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센균에 의해 손발이 상하고 시력을 잃은 환자들. 치료는 한센병 자체에 대한 것과 한센병을 앓고 난 뒤 오는 후유증에 대한 치료로 나뉜다. 입원 환자들 대부분은 한센병의 후유증에 대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환자들이 워낙 고령이라 증세가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실정이다.

의학적으로 완치가 가능한 병이지만 치료 시기를 놓쳐 불편한 몸을 병원 침대에 눕혀야 하는, 시절이 불우했다고 돌리기엔 너무 아픈 사람들. 어떻게 그 속내를 헤아릴 수 있을까? 한병실을 들어가 보니 침대 머리맡에 카네이션이 꽂혀있다. 지난 어버이날 간호사들이 직접 만들어 달아드린 종이꽃이다.

환자와 간호사로 만나 긴 병을 함께 견디는 식구가 된 이들의 인연이 빨간 꽃만큼 선명하다.

▲소록도는 하늘에서 본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의 형상을 닮았다해 붙여진 이름이다.<사진으로보는 소록도 80년>

아프지 않은 세상을 만날까

형편대로 시간을 나눈다면 이곳의 시간은 일 년 같은 하루, 하루 같은 일 년이 아닐까. 간호사들은 치료뿐만아니라 기저귀 갈기에 식사 수발까지 들어야 한다. 손마디가 다 떨어져 나간 할머니 한분이 손목에 찬 고무줄에 숟가락을 끼워서 어렵사리 식사를 하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 주렸던 시절에도 한 끼가 이렇게 절박했을까? 할머니들의 저녁 식사가 내내 마음을 저어 놓는다. '옛날에 옛날에 사진 찍을 적이 좋았어!' 한 할머니가 식사를 하다가 푸념처럼 내뱉은 한마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할머니의 좋은 시절은 이제 어디로 가버렸을까? 삶도 바퀴 같이 구르는 거라면 거슬러, 거슬러 아프지 않은 세상을 골라 만날 수 있으련만.

죽음이 더 익숙한 소록도

소록도에서 익숙한 것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다. 하지만 슬픔이 다는 아니다. 천상의 영혼으로 거듭나는 길이라 믿기에 이곳에서 죽음은 애통함을 넘어서는 의미다. 먼저 고통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남은 사람들은 믿는다. 망자의 평생을 가두었던 몸 감옥은 태워버리고 한 줌 흔적만 상자에 담아 남긴다.

일 년 동안 보관한 상자들은 해마다 10월이 되면 소록도 안의 묘역으로 옮긴다. 상자를 옮기는 것도 아직 육신에서 자유롭지 못한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우뚝하게 묘역을 지키고 서 있는 것, 만령당이다. 많은 영혼들의 집. 이름처럼 만령당은 소록도에서 스러져간 한센병 환자들의 마지막 안식처다. 태어난 해는 다르지만 죽은 해가 같은 망자들끼리 모여 있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들은 만령당 뒤쪽 묘역에 함께 묻힐 것이다. 소록도 사람들은 천형의 병이라고 자신들을 내몰았던 길고 긴 천형의 세월을 그렇게 침묵으로 묻어 버린다.

또 다른 길을 찾아서

▲이정률(조이영상 대표). 다큐멘터리 전문 감독.
가을에서 다시 다음 해 가을까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소록도를 다녀왔다. 갈 때마다 가고 싶은 길은 여러 갈래였다. 하지만 섬은 늘 한 가지 이야기만 했다. 비록 지상의 삶이 어두웠지만 신이 있어 그를 따라 그의 나라로 가게 될 거라고.

가보지 않은 죽음의 나라는 이야기하면서 이미 지나온 죽음의 시절은 말하지 않는, 저 섬의 침묵이 자꾸 발길을 잡는다. 볼 때마다 노을이 더 짙어지는, 다음 계절엔 저 섬에 가는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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