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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육교는 다 어디로 갔을까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0-22 15:44:41
옛날 전통가옥은 대문을 들어서면 4~50cm 정도 되는 축담이 있고 그 축담 위에 다시 5~60cm 정도 되는 높이에 대청마루가 있다. 축담 위에 신발을 벗고 대청마루를 지나서 방으로 들어간다. 방의 뒤쪽이나 왼쪽 또는 오른쪽 어딘가에 아궁이가 있어 아궁이에 불을 때면 방고래를 통해 구들장을 데울 수 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불의 기운이 방고래를 통해서 구들장에 전달되므로 방고래 깊이만큼 축담이나 마루를 높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전통가옥이 그런 구조였다.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예전에는 높으신 양반들은 말을 타고 다녔는데 말에서 바로 내리려면 축담만큼의 높이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축담과 마루의 높이나 말에서 내리려는 높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장애인 편의시설과는 거리가 멀다. 그 속에 장애인은 아예 없었으니까.

축담과 마루가 있는 밀양 손씨 고가.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축담과 마루가 있는 밀양 손씨 고가. ⓒ이복남
우리나라에 장애인복지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81년 6월 5일 「심신장애자복지법(心身障碍者福祉法)」이었다. 이 법에도 편의시설 조항이 있었다.

제13조 (편의시설) 도로ㆍ공원ㆍ공공건물ㆍ교통시설ㆍ통신시설 기타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을 설치하는 자는 심신장애자가 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설비를 갖추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1981년 법 제정 당시에도 ‘편의시설’이라는 조항은 있었지만, 편의시설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편의시설은 단지 법조문에 불과했다.

그 후 1985년 8월 16일 「건축법 시행령」이 개정되었다.
제61조의2 (지체부자유자를 위한 관람공간등의 확보) 500석이상의 관람석을 설치하는 공연장 또는 관람장은 다음표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지체부자유자가 이용할 수 있는 관람공간을 확보하고, 당해 관람공간에 이르는 통로는 경사로 등 지체부자유자의 통행에 편리한 구조로 설치하여야 한다.

1986년 12월 29일 「건축법 시행령」 개정.
제53조 (승용승강기의 설치) ①연면적이 2천제곱미터이상으로서 6층이상인 건축물에는 건설부령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승용승강기를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6층인 건축물로서 각층의 거실의 용도에 쓰이는 바닥면적 300제곱미터마다 1이상의 직통계단이 설치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승용승강기를 설치하는 건축물중 4대이상의 승용승강기를 설치하는 의료시설ㆍ공공업무시설ㆍ관광호텔ㆍ공연장 또는 관람장의 경우에는 그 승용승강기중 1대이상은 지체부자유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건설부령이 정하는 기준에 적합하게 설치하여야 하고, 당해 승강기에 이르는 통로는 지체부자유자의 통행에 편리하도록 설치하여야 한다. <신설 1985ㆍ8ㆍ16, 1986ㆍ12ㆍ29. >

장애인등편의법시행령, 위(1921.4.6.) 아래(1998.4.11.) ⓒ법제처 에이블포토로 보기 장애인등편의법시행령, 위(1921.4.6.) 아래(1998.4.11.) ⓒ법제처
그러다가 1989년 「장애인복지법」이 전부 개정되었다. (시행 1989. 12. 30.)
제33조 (편의시설) ①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이 교통시설 기타 공공시설을 이용함에 있어서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시설의 구조, 설비의 정비등에 관하여 적절한 배려가 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②도로ㆍ공원ㆍ공공건물ㆍ교통시설ㆍ통신시설ㆍ공동주택 기타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을 설치하는 자는 장애인이 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③제2항의 시설이나 설비의 기준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④복지실시기관은 제3항의 시설이나 설비의 기준에 미달하는 시설이나 설비를 설치한 자에게 이의 시정을 요청할 수 있다.

⑤제4항의 요청을 받은 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

「장애인복지법」이 전부 개정되고 제33조에 편의시설 조항이 들어 있지만 그야말로 아무도 지키지 않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했고 그 법에 위배되었다고 해서 처벌하는 사람도 없었다. 필자를 비롯하여 몇몇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법이 있는데 왜 안 지키느냐’고 항의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1997년 4월 10일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 (약칭: 장애인등편의법)이 제정되었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편의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부산 지하철은 1985년 7월부터 운행을 시작하여 현재는 4호선까지 운행되고 있다.

현재 서면 6번 출구 휠체어리프트.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현재 서면 6번 출구 휠체어리프트. ⓒ이복남
당시 1호선이 개통되기는 했지만 전부 다 계단으로 되어 있었고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은 아예 없었다. 그 당시 필자도 장애인단체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지하철에 편의시설을 설치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후 부산 지하철에서도 장애인 관련법을 지켜야 하겠다 싶었는지 각 역사에 리프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필자는 “리프트는 안 된다. 비싼 돈을 들여서 리프트를 설치해봤자 곧 무용지물이 되고 말 테니 어렵더라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고 하였으나 지하철에서는 그들도 법을 지킨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법에 의하면 장애인용 승강기, 장애인용 에스컬레이터, 휠체어 리프트, 경사로 중에서 택1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장애인등편의법시행령」 별표2 조항이 1998년 제정 당시의 그때나 20여 년이 지난 2021년 현재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서면에서 충무동까지 부산의 주 간선대로에 횡단보도는 하나도 없었다. 하나도 없었다기보다는 지금은 이사를 하였지만, 초량 KBS 방송국 앞에 횡단보도 하나가 있었다.

부산진시장 엘리베이터 육교.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부산진시장 엘리베이터 육교. ⓒ이복남
장애인에게 제일 좋은 편의시설은 문턱에서 문턱까지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애인은 승용차를 이용하였고, 일반 휠체어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장애인은 많지 않았기에 설치 된 리프트는 장애인의 날 등에 언론사의 홍보용에 불과했다. 결국 기계란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슬게 마련이라 휠체어리프트는 무용지물로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를 즈음 여기저기 경사로 육교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구청장은 그것을 치적이랍시고 내세우고, 기자들은 얼씨구나 그 치적을 받아썼다. 당시만 해도 경사로 육교 하나 설치하는데 7~8억이 든다고 했는데 언론에서는 그 많은 돈을 들여서 경사로 육교를 설치한 구청장을 잘했다고 칭송했다.

필자는 구청장을 칭송하는 기자들이 못마땅했다. 아무리 장애인복지에 무지하기로서니 도로에 금하나만 그으면 될 것을 그리 비싼 돈을 들이는 게 무에 그리 잘한 일이라고 칭송하는가 말이다.

아무튼 경사로 육교를 설치하면 편리하게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음식점 배달부가 스쿠터를 타고 부릉부릉 지나다니고, 가끔 학생들의 자전거나 유모차가 이용을 했다.

부산시내 곳곳에 설치 된 BRT 공사 현수막.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부산시내 곳곳에 설치 된 BRT 공사 현수막. ⓒ이복남
어럽쇼! 그동안 무용지물로 방치되었던 지하철 리프트 이용자가 갑자기 늘어났다. 2005년부터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가 보건복지부에서 보장구로 지정되어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너도, 나도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를 구입하기 시작했고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로 지하철을 이용했다. 그러나 당시 지하철에는 휠체어리프트 밖에 없었기에, 여기저기서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지하철에 설치된 리프트는 수동휠체어용으로 수동휠체어의 중량은 15~20kg인데 반해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는 60~100kg 정도이고 거기다가 사람이 타면, 리프트가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하철에서는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의 리프트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지하철 휠체어리프트에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의 사용이 금지되면서 1호선에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 시작했고 새로 개통하는 2, 3, 4호선에는 처음부터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지상에서는 경사로 육교 대신 엘리베이터 육교가 설치되었다. 경사로 육교나 엘리베이터 육교나 거기서 거기 같지만, 그래도 장애인을 위해서 설치되는 것이므로 가상하지 않은가 말이다.

1997년 5월 12일에 부산진역 앞에 경사로 육교가 개통했는데, 2011년 6월 17일에 철거해서 경사로 육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하철에 휠체어리프트를 없애고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도로에 육교를 철거하고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서 장애인에게 편리한 것 외에 긍정적인 것이 한 가지는 있다. 많은 예산을 들이고, 예산을 들인 만큼의 인력 창출은 했을 테니 말이다.

보도 내용에 의하면 자동차 위주의 도로에서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부산 시내 160여 개의 육교 중에서 40여 개의 육교를 철거하고 횡단보도를 설치하기로 했다는 데 이 기사가 나올 당시가 2009년이었다. 부산시에서도 앞으로도 예산을 확보해서 육교를 점차 철거하겠다고 했다는 데 2021년 현재 남은 육교는 몇 개 없다. 아무튼 육교를 설치하는 데 돈이 들고 철거하는 데 또 돈이 들고.

부산진시장 육교 철거 후.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부산진시장 육교 철거 후. ⓒ이복남
아무튼 이제 몇 개 안 남은 육교 중에서 부산진시장에 엘리베이터 육교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중앙버스 체계 즉 BRT 공사를 하면서 부산진시장의 육교도 철거한다고 했다. 부산진시장 2~3층 상인들이 반대를 한다고 하더니만, 그래도 며칠 후에는 육교를 철거했다.

부산 서면 지역은 이미 작년에 BRT 공사를 끝내고 현재는 버스가 중앙노선으로 다니고 있지만 나머지 충무동까지의 구간은 BRT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제 부산진시장에 하나 남은 엘리베이터 육교도 철거가 되고 도심에는 육교 대신 횡단보도만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도 한 장애인이 도심에 있는 횡단보도는 너무 길어서 자기 걸음으로는 다 건너가지 못한다면서 대책을 좀 세워달라고 했다.

횡단보도가 너무 길어서 다 건너가지 못한다면 신호등 시간을 늘리든가 아니면 중간에 보행섬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가운데 보행섬이 있는 서면 횡단보도.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가운데 보행섬이 있는 서면 횡단보도. ⓒ이복남
부산시경 관계자에게 문의했더니, BRT 공사가 완공되면 보행섬이 생기므로 조금만 참아 달라고 했다. 그런데 보행섬이 생기니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보행섬이 장애인에게는 긴 횡단보도를 반으로 줄일 수 있는 반면, 비장애인에게는 횡단보도 길이가 짧아지니까 신호를 안 지키고 뛰어가는 바람에 또 다른 교통사고를 유발한다고 했다.

또 하나, 횡단보도의 거리가 짧아지고 보행섬이 생기면서 음향신호기가 사라진다면, 보행섬에 볼라드라도 설치되어 있다면 시각장애인은 어쩌란 말인가.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다. 장애인이 편리하면 모두가 편리하다. 그런데 보행섬이 장애인에게는 편리하지만, 비장애인에게는 편의를 넘어 교통사고를 유발한다니 어이없는 이 같은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BRT는 모두의 편의를 위해서 마련된 것인데 행여 이를 악용해서 횡단보도가 짧아졌다고 해서 무단횡단으로 뛰어가다가 교통사고를 유발해서 장애인이 되는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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