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통방송에서 연락이 왔다. 장애인에 관한 인식개선 캠페인을 위해 녹음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장애인당사자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인식개선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섭외에 응하기로 했다. 이제까지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노력이 없었던 게 아니지만 장애인을 여전히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게 하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에 대해 늘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맨처음 서울시에서 의뢰를 받았을 때 확인한 바와는 달리 교통방송 PD와 통화를 해보니 그쪽에서 직접 원고도 작성해 준다고 했다. 나는 원고를 직접 쓰겠다고 했다. 비장애인인 그들이 써주는 원고를 앵무새처럼 읽고 싶지는 않았다.

"하실 말씀이 엄청 많으신가 보죠?"

"그럼요."

나는 PD의 마지못한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다. '원고료가 나오는 것도 아니건만 내쪽에서 원고를 써주겠다고 하면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닌가?' '그래도 내가 장애인잡지를 만드는 사람인데 내가 못미더워서일까?'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왜 장애인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인당사자의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익숙한 걸까? 잠시 후 다시 PD의 전화가 걸려왔다. 기왕이면 원고를 두 개 만들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밑천이 바닥나 자기들 스스로 내용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설명이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들 문제를 절실하고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우리의 목소리가 아니라면 어디서 생동감 있는 내용이 저절로 뿜어져 나오겠는가? 나는 이것도 작은 실천의 한 형태라고 여기고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원고를 세 가지로 만들어 메일로 보내놓고 8월 28일 아침 서둘러 교통방송국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사태가 벌어져 있었다.

PD는 먼저 원고 내용이 좋았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나름대로 이 작업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필요 때문에 자청해서 한 일이었으므로 그런 칭찬이 별다른 의미는 없었지만 내 의지가 관철되는 결과가 보이는 것만 같아 뿌듯했다. PD는 세 가지 원고 중 나보고 '장애여성도 충분히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주제를 담은 내용을 읽으라고 했다. 대강 읽어보니 내가 보낸 원문을 크게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분량조절만 하였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보였다.

그런데 또 한 사람 녹음하기로 되어 있는 또 한 분의 원고가 문제였다. 내가 보내준 원고 중 하나를 원문으로 하긴 하였는데, 내 원뜻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굳이 원고를 작성한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내세울 생각은 없었지만 그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 내용은 문제가 많다. 장애인들이 들으면 기분나빠 할 것 같다'면서 내게 의견을 구했기에 하는 수 없이 원고 작성자임을 밝히고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장애인은 아니었지만 장애인 관련해서 오래 일을 해왔기 때문에 장애인의 입장에서 헤아릴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는 듯했다.

처음 원고는 '장애인을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인에게 장벽이 되는 사회환경을 바꾸는 데 함께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는데, PD가 고쳤는지 작가가 고쳤는지 '따뜻함이 중요하다' 어쩌고 하는 내용으로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원고를 읽을 분이 내게 원뜻을 자세히 묻고 나서 원뜻에 가깝게 수정을 하겠다고 하니까 PD는 노골적으로 언짢아 하는 기색을 보였다. 자기가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나? 장애인이 듣기에 어떤지와는 무관하게 자기만 만족하면 된다는 뜻인지…. 아니, 누가 들어도 뭔말을 하는 건지 모를 만큼 이상한 문구를 만들어놓고도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소위 장애인을 '위해' 무언인가 한다는 사람들(특히 비장애인)의 태도가 대부분 그런 줄은 잘 알고 있지만 몹시 불쾌했다. 결국 그분과 내가 힘을 합쳐 어느 정도 원뜻에 가깝게(만족스럽지는 않다) 수정을 한 뒤에 녹음에 들어갔기에 더 이상 문제삼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맡은 부분을 녹음하는 과정에서도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내가 애초에 '장애여성'이라고 명시를 하였건만 수정된 원고에서는 '그들 또한'이라는 표현으로 고쳐져 있었다. 나 역시 장애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서두에서 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한데다 '장애여성'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보급할 필요를 느끼고 있기에 녹음중 내 마음대로 '장애여성'으로 바꾸어 읽어버렸다.

물론 PD가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면 사전에 충분히 의견조율을 했겠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원고를 직접 쓴 사람으로서 그 정도 권리는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PD가 "장애여성이라고 꼭 쓰고 싶으세요?"라며 마치 투정부리는 어린아이에게 왜 투정이냐는 투로 물었다. 나는 "네. 그들이라고 하면 대상화되는 느낌인데다 운동 차원에서 '장애여성'이라는 용어를 써야 할 이유가 있거든요." "꼭 써야 한다면 그렇게 하셔야겠지만 느낌은 무지 안 좋습니다. '장애'라는 말이 그렇게 여러번 나오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하시든지…." 승낙도 아니고 거절도 아닌 듯한 어정쩡한 말에도 아랑곳않고 난 '장애여성'이라는 용어를 넣어 다시한번 또렷하게 읽어나갔다. 그리고 단 한번에 O.K 사인이 났다.

'휘유'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하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나는 이번에 만난 PD가 특별히 못됐거나 오만하기 때문에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그 PD에 대해서는 아무런 개인적 감정이 없다. 다만 우리 사회 전체가 장애인 문제에서 장애인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시스템이 그러하기에 개개인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장애차별주의와 싸워나가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니고선 우리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를 배제하는 사회 시스템을 결코 바꿀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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