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11월 14일: 집에 혼자 있던 발달장애인이 고혈압 약 과다 복용으로 숨져

- 2018년 11월 15일 : 강남구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 자살

- 2018년 11월 24일: 중증 자폐아들을 둔 70대 노모, 요양병원에서 아들과 동반자살 시도

위의 사건들은 지난 11월 한 달에만 일어난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 사건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발달장애인 가족 자살을 검색하면 수많은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이 나온다.

그 사연들도 너무 비참하고 원통스럽다. 2018년 11월 24일에 일어난 사건의 사연만 소개하면 이러하다. 도전행동이 매우 심한 40대 아들을 둔 70대의 노모는 아들과 요양병원에 있었다.

매우 심한 그의 아들의 도전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이웃들 때문에 평생을 전전긍긍하며 이리저리 이사 다녀야 했고, 70살이 넘고 기력이 세어 버린 노모는 마지막 대안으로 아들과 함께 요양병원들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나 많은 요양병원들에서도 그녀의 아들과 주변 입원 환자들과의 다툼이 빈번했고, 이로 인해 환자들의 항의를 받아 이리저리 요양병원들을 옮겨 다녀야 했다.

아들과 동반 자살을 시도했던 그날에도 주변 환자들의 항의에 그 요양병원에서 나가라는 말을 들었고, 더 이상 갈 곳도, 의지할 곳도 없었던 노모는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하늘로 보냈다. 그리고 곧 바로 자신도 제일 독한 신경안정제를 수 십알을 먹고 혹시 살아날까봐 자해 시도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게 피가 거꾸로 치솟은 만큼의 비참하고 원통한 발달장애인의 가족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장애인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는 다음과 같은 고민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지금의 모든 복지 정책의 근간은 많은 사람들이 소위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인간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뻑 하면 주장하는 ‘인권’조차도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정도의 판단을 하고, 다수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기표현과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기본적으로 생각하고 나온 개념이다. 이 말을 역으로 말하면, ‘인권’ 조차도 다수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자기 표현과 주장을 할 수 없는 인지적 장애인은 애당초에 배제된 개념이다.

이러한 인권의 철학적 한계는 현재의 장애인 관련 제도와 정책에서도 여과 없이 나타난다. 일례로 대표적인 장애인의 인권과 자립생활을 위한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를 살펴보면, 시간 판정과 서비스 제공 인력의 요건, 서비스 수행 방식을 보면 타인에게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는데 제약을 받는 인지적 장애인에 대한 고려는 전무하다.

예컨대. 상호적인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하는데 제약을 받는 인지적 장애인의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 판정은 어떻게 하고, 활동지원사가 인지적 장애인이 무엇을 하고 싶고 좋아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교육이나 시스템에 대한 내용은 현행 장애인 활동지원제도의 전혀 없다. 따라서 이러한 현행 장애인 활동지원제도에서는 아무리 시간을 많이 받을지라도 인지적 장애인은 활동지원사의 관리나 명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장애인 자립생활 철학이 인권의 개념으로부터 출현했는데 그 인권은 소위 말하는 자기 표헌과 자기 주장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인간’만을 생각하고 나온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지적 장애인도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지역사회에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장애인 정책과 서비스제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인권과 자립생활 철학의 확장이 필요하다.

이제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정도의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표현과 주장에만 인정했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인지적 장애인의 자기표현과 주장을 어떻게 하면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첫째, 인지적 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인지적 장애인 당사자의 선호와 주장을 잘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가족과 친구 등과의 협력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고, 둘째, 기관(거주시설, 복지관, 자립생활센터 등) 중심의 서비스 제공 방식에서 지역사회 중심의 서비스 제공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다양각색인 인지적 장애인의 선호와 욕구를 기관에서만 충족하라는 발상은 또 하나의 인지적 장애인에 대한 억압일 뿐이다. 왜 인지적 장애인은 복지관과 센터를 가야 만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채울 수 있어야 하는가? 인지적 장애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춤과 노래를 복지관과 센터에 가야 만 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 두 가지를 위해서는 서비스 예산이 기관에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인지적 장애인 당사자에게 가야 된다. 그래야 인지적 장애인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활동지원을 받으면서, 떳떳하게 돈을 내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동네 노래방에서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춤을 동네 댄스장에서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동네 식당에서 사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지적 장애인도 진정한 자기결정과 선택의 실현이다.

이러한 세상이 도래하면 평생을 죄책감과 고통에서 시름하며 자식과 동반자살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부모도 행복하게 여생을 살다가 ‘나 죽으면, 내 자식은 어떻게 하나?’ 이러한 고민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12월 14일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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