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독자 여러분과 제 어머니(군산 베데스다 교회 최명숙 목사)의 글을 나눠보고 싶어서 이렇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울림이 있는 공감의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목은 ‘사랑의 신호’입니다.

하반신 장애를 가진 자매가 이사를 할 때마다 그녀의 부모는 기본적으로 좌변기부터 확인하고 설치해줬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감동적이고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은 청년이 된 남성장애인에게 좌변기 대신 요강을 사용하게 할 정도로 구차했던 그 시대의 정서 때문이었지요.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돕고 지역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목사님이 건축한 큰 교회당은 엄청나게 계단이 많았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대대적으로 해오던 장로님이 개원한 병원은 경사가 좁고 가파른 계단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생각은 있어도 필요성을 인식하고 희생을 감내하는 사랑이 아니면 행동으로 실천하기 어려움을 말해줍니다. 관심이 높아졌다고 해도 선행의 대상이었지 희생의 대상은 될 수는 없었던, 지금껏 장애인은 그렇게 미미한 존재였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서 생활하시던 부모님을 뵈러 갈 때마다 나는 남편의 등에 업혀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내에서 전동휠체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면서부터는 적적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쇼핑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원하시는 대로 잠깐이라도 들어가서 어머니와 시간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그 아파트 계단에서 나는 그렇게 불편함과 한계를 말없이 견디어야 했습니다.

요즘 장애인 인식개선 및 편의시설과 자유로운 이동권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딸과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큰소리로 무엇인가를 요구했던 기억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원인이 장애를 가진 자신으로만 여겼던 우리 시대의 그 숨 막히는 의식 속에서는 집에서나 밖에서나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가정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수많은 재가 장애인들의 현실을 보면서 나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은 가장 가까운 가정과 가족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편하게 생활하도록 모든 여건은 갖춰주었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하도록 폐쇄시키는 가정도 있었는데 그러한 경우는 정신적인 가학행위로서 살았지만 이미 죽은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장애인식개선 운동은 사회나 가정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이 아닙니다. 특별한 존재로 의식해 달라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들과 하나가 되고 싶다는 우리의 뜨거운 사랑의 신호요, 눈물어린 바람입니다.

일본의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휠체어를 친구들의 키 높이에 맞춰서 사용했던 것처럼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소외되거나 구별되지 않고 친구가 되어 함께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손짓입니다.

이 땅에 공존하는 나와 당신은 이러한 소리를 낼 권리와 들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개인적인 인성의 척도와 사회적 의식수준을 대변해주는 것이지요.

바람이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서로의 체온을 느낄 정도로 더 가깝고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글은 정의당 장애평등강사 강민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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