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낮밤 가리지 않고 엄마 곁에서 쌔근쌔근 잠을 청했었다. 엄마와의 교감이 유별나게 좋게 느껴졌던 나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드는 것이 교감의 연장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깊은 잠이 들고 난 후 일어나면 말할 수 없는 개운함으로 매일을 활기차게 살 수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장애인이다. 그냥 장애가 있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상위 중증 장애인이다. 물론 나보다 더 불편한 사람이 많이 있다. 하지만 나 역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으므로 장애 정도로 순위를 매긴다면 하이 랭커인 셈이다. 하기야 이런 걸로 상위 입상 해 봐야 좋을 리는 없지만 어쨌든 아직도 난 형태는 다르나 여전히 가족들의 케어를 받으며 매일을 살고 있다.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함은, 그 어떤 구속보다도 힘들다. 하지만 힘들어할 수도 없다. 가족을 포함한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내가 매일 느낄 구속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매일 웃는다. 그러나 때로는 나의 힘듦은 나의 것대로 지니고 있어야 하고, 게다가 일반적인 비장애인의 영역까지 걱정해야 하니 조금은 버거울 때도 있다.

예를 들면 먹고 사는 걱정 같은…. 요즘 유행하는 ‘열정 페이’ 같은 단어는 요즘 젊은이들의 기회부족을 나타내는 단어인데 사실 이마저도 내겐 거리가 먼 이야기다.

이렇듯 결코 녹록하지 않은 삶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요즘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나의 무릎에 누워 누군가 쉬어갈 수 있길….’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어릴 적엔 무조건 나의 소유였던 엄마의 무릎, 거기에서 누린 깊은 쉼 이제는 내가 돌려 드리고 싶고 내가 아는 지인 모두가 나를 향한 걱정과 염려대신 편안히 쉴 그늘이 되고 싶다.

한 사람의 무릎에서 쉴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의 존재가 정말 편안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 되고 또 동시에 몸을 누일만큼 절대적 신뢰 역시 있다는 것이니까

욕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픔도 느껴 본 사람이 공감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내 인생의 힘듦은 비록 현재형이지만 이런 아이러니한 생각이 든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모두에게 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내 평생 지워지지 않길 바라며 이 글을 맺는다.

*이 글은 경기도 성남에 사는 독자 안지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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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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