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가능한 오늘의 현실이 팍팍하더라도 이상(理想)을 붙들고 살다 보면 희망을 갖게 될 것이고 그러면 결국 매일을 밝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늘 좋은 미래를 꿈꾼다.

타인보다 더 웃고 밝게 사는 이유는 아마 이런 조그만 결심 때문 아닐까 싶다. 정말로 내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오빠의 밝은 에너지 때문에 힘이 나요.” 참 감사하다.

그런데 이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좌절감과 절망이 찾아 올 때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비장애인 지인 분들은 걱정부터 하시니 조금은 겁나는데, 어쩌면 이것은 사람이 살면서 찾아오는 흔한 감정기복일 것이다. 그런데 난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앞서서 난 이상주의자라고 밝혔다. 내가 말하는 이상이 무엇일 것 같은가? 다름 아니라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저 멀리 배제시키고 내가 가진 것들을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다. 물론 좋은 미래를 꿈꾸는 것도 이상의 한 부분이긴 하겠으나 현재의 상황만으로도 감사하는 것은 제일 중요한 이상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상이 무너져 감정의 기복이 찾아온다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가끔은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겠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찾아오는 불가능의 순간. 그것도 하루 이틀이고 한 두 번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횟수가 많아질 때. 그 좌절은….

뿐만 아니라 도움을 받아야 하는 그 시기에 내게 도움을 주는 그 혹은 그녀가 다른 일로 바쁘다면 나는 내 필요를 청해야 할까? 아니면 참고 인내해야 할까?

혹자는 그렇게 말한다. ‘급한 순서대로 해야 한다고….’ 혹은 ‘그 일이 먼저냐? 네 일이 먼저지.’ 말은 쉽다. 그런데 가령 둘 다 급한 용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느 쪽이 되었든 누구 한 사람은 희생해야 하는데. 누가 희생해야 옳은가?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그 이유를 말할 수 있다면 그 정당성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이런 식의 주제를 누군가에게 던지면 꼭 백 명 중의 한 명은 이런 이야길 하곤 한다.

“아직도 초연해지지 못했구나.”

초연해졌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이제는 별 것 아닌 일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 삶에서 겪는 일들은 초연해지고 말고 할 게 아니다. 내 삶은 현재형이고 미래에도 지금의 어려움이 없진 않을 테니까….

나를 포함한 장애인들은 이런 모호함 속에서 매일을 살고 있다. 남들은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사소함의 극치를 달리는 걱정거리를 달고 살면서도 매일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을 생각할 날이 곧 다가온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날이지만 그래도 장애인의 날이라고 이름 붙여졌으니 그 날만이라도 주위에 불편한 이들은 없는지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날이 되길 바란다.

모두가 다 경험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지만 조금은 다른 차원의 감정을 느끼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하며….

*이 글은 경기도 성남에 사는 독자 안지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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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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