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이 지났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IL인턴제”의 인턴으로 일한지 말이다.

작년 2013년 12월 23일자로 시범적 인턴제는 이제 만료된 상태다. 난 다시 장애인 활동가와 무료한 일상 속으로 돌아와 근무했던 자립생활센터에서 채용을 해주거나 아니면 IL인턴제가 제도화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뇌병변(경 언어장애, 긴장성강직, 불수의적 운동)의 중증장애를 갖고 있다. 그동안 많은 직장을 찾아서 헤매었지만 쉽게 해결되진 않았었다. 그러던 중 2013년 10월에 ‘IL인턴제’로 일을 배울 기회가 생겼고 나도 단기간이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IL인턴제에 대한 권유가 처음 들어 왔을 때는 언제나 그렇듯 내심 속으로 ‘이거 또 선심적으로 시행하다 말, 장애인사업 같은 거 아냐?’ 하고 의심을 가졌었다.

“무슨 일이요? 저는 이 나이 먹도록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아쉽지만 일 할 능력이 안돼요.”하며 정중히 거절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에게 IL센터에서는 정부와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인턴제 일자리니 한번 해보라고 강력히 권유했고, 아내 또한 직장을 갖게 돼 국민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이 되어 경제적으로 생활에 부담감이 있었던 터라 권유를 받아들여 광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자립생활 인턴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정부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니 만큼, 다음 년에는 제도화가 되서 시행될 것이다는 은근한 기대감이 많았다.

그 기대감으로 희망을 한가득 품게 되었고 그동안 일정하지 않는 장애인활동가로서의 불규칙적인 활동이 아닌 규칙적인 현장교육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일도 배우고 추 후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것이다.

국민기초생활수급비용에 얽매어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되게 일을 하고 정당한 급여를 받는 일꾼으로서 사회에서 인정을 받아가며 구성원이 되어 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리고 싶은 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 시혜적으로 복지를 받는 것이 아닌 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을 꿈꾸었다. 아니, 더 간단 명확히 말하자면 장애인으로써 삶이 아닌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의 삶을 꿈꾸었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이렇게 해서 나의 인턴으로서의 3개월은 시작되었다. 처음 한두 달간은 자립생활에 대한 교육과 동료상담, 센터 업무파악 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공문 수·발신 정리와 업무일지, 출장복명서, 직원 회의록, 권익옹호의 관리업무를 맡고 그 외에도 사업계획서를 쓰는 법과 센터에 필요한 공문서나 기타 문서를 쓰는 방법을 차츰차츰 배워 나갔다.

일을 하며 이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배우며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를 생활을 하며 업무 시간 외에도 일을 집으로 가져가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스트레스거나 힘이 들었다기보다는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일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때면 뿌듯한 성취감이 들어서 ‘아~ 나도 책임감 있게 무엇인가를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조금씩 업무에 적응이 되고 센터가 무슨 일을 중점적으로 하는지 아주 조금 파악이 되어 갈 즈음에 어느덧 인턴제는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빠른 시간을 보내며 2014년에는 IL인턴제가 좀 더 오랜 시간 유지되어 일을 할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을 때쯤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중증장애인 IL인턴제가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당장 센터에 문의를 해보니 센터에서도 지속적으로 채용 될 수 있도록 계획 중이기는 하나 정부의 지속적인 시행 여부에 따라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모르겠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이 말을 막상 들었을 때 마음속에서 참담함이 물밀듯 올라왔다. 이제 나는 일을 못하게 되는 건가? 비록 일을 배우는 인턴이지만 오랫동안 할 줄 알았는데 이게 뭔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비록 급여는 적더라도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던 터라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단발성으로 끝날 거라면 왜 그토록 희망을 가졌었을까? 나는 정녕 남들의 도움만 받으며 살아가란 말인가?’

처음으로 내가 처한 환경이, 중증장애인이 일을 할 수가 없는 사회가 이를 제도화시켜주지 않는 정부가 원망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기기초생활수급비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겠다며 생활전선에 뛰어든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던 차였다.

속으로 이런 참담한 생각까지 들었다. ‘둘이 벌어야 그나마 유지될 수 있을 텐데. 이래서 중증장애인들은 기초생활수급에서 탈락하는 순간 힘이 든다는 말이 있는 건가?’

이렇게 자립생활 인턴제는 나의 꿈을 뒤로 한 채 짧은 날로 끝났다.

정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마음에 희망을 품게 했다가 이렇게 절망감을 안겨다주는 단발적인 행사는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말라.

3개월이라는 이벤트성 반짝 행사를 통해 단맛을 보게 해놓고 제도화를 하지 않는다면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얼마나 큰 원망을 들으려고 하나?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IL인턴제를 제도화해 유지하라.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일을 함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게 바램일 뿐. 정부가, 지역사회가 중증장애인을 위해 이제 의지를 보여야 할 때이다. 단순 80만원에서 시작되는 시급이 아닌 최저 임금 이상을 보장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소득 보장 방안을 고안하고 소득 보장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 하라고 말이다.

장애인이던 비장애인이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정책이라 할 것이다. 다른 어떤 것 보다 사람은 직업이 있어야 진정한 자립적 생활이 가능하고 자율적으로 살 수 있게 된다.

특히, 장애인에게는 직업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조차 없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자립생활 인턴제와 같은 제도가 단발 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지원과 현실적인 삶을 보장 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장애는 개인만의 문제는 분명히 아니라는 것은 알 것이다. 사회가 장애에 상관없이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장애는 자연히 사라지고 사람만이 남는다. 지금처럼 중증장애인에게 수혜적인 발상으로 선심 쓰듯 그렇게 생각되어지는 사회라면 차라리 죽고 싶은 게 지금의 절망적인 심정이다.

이러한 절망을 넘어 희망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조속히 모색 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광주에 사는 독자 공병조 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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