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역의 아침은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이곳은 강원도 산골로 동해 바다로 떠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힘차게 기적소리를 울리며 철마는 동해로, 동해로 달릴 채비를 하고 역무원의 손길은 손님을 안전하게 승차시키기 위해 이리저리 발을 동동 굴리며 긴장된 모습으로 경사로를 내린다.

네 대의 전동휠체어를 끌고 강릉행 무궁화호에 몸을 싣는다. 자리를 잡고 창밖을 보니 밖은 봄볕이 내리고 있고 저 멀리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듯하다. 북한강을 따라 달리는 기차는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한참을 달려 원주를 지나고 또 제천을 거쳐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역에 도착한다. 영월은 지난날 단종의 역사를 찾고자 몇 칠을 묶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영월에 잠시 정차한 후 기차는 증산, 사북, 추전역을 지나 태백으로 향하고 있다. 기차가 지나는 곳곳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강원도 산골에는 겨울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산을 보니 아득해서 더 사무치게 그리운 유년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긴 터널을 뚫고 열차가 지나가면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인도하는듯하여 고개를 들면 이네 차가운 설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난날 숨어버린 하얀 기억을 더듬은 일은 행복하다.

전신을 무중력 상태로 만드는 하얀 세상, 때론 기다림과 그리움이 온 세상을 칭칭 치감는다해도 눈은 신이내린 많은 선물 중에 이슬 가득 머금은 최고의 선물이다. 텅 빈 맘으로 다 내어주며 살아온 세월, 기차가 지나는 산들은 눈송이를 이고앉아 한 폭의 겨울 산수화를 그려내고 더 이상 시끄러운 세상이 보이질 않을 것 같아 고요한 눈의 나라에 기다림이 내린다. 수십 수백 년을 지키며 우뚝 솟은 저 산도 온갖 표정을 나눈 나무도 숨을 죽인다. 또다시 다가오는 터널을 지나면 내 삶의 일부를 되돌릴 수 있을 것 같다.

묵호행 승차권. ⓒ전윤선

달리는 기차밖의 풍경. ⓒ전윤선

동해역을 지나니 오른쪽으로 파란 바다가 나를 마중 한듯하여 눈을 뗄 수가 없다. 바다는 코발트빛을 발하며 지나온 삶의 여정을 사색하게 한다. 아름다운 물결처럼 매 순간 일렁이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묵호역에 곳 도착하리라는 안내방송이 나와 사색에서 빠져나온다. 여섯 시간 반을 달려온 기차는 우리를 묵호역에 내려주고 종착역인 강릉으로 달린다.

묵호역은 작고 호젓한 역이다 역무원들은 휠체어를 끌고 기차를 이용해 여러 명이 한꺼번에 묵호역을 찾은 것은 처음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우선은 민생고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 묵호 중앙시장에 들러 간단한 식사를 하고 미리 예약해 놓은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어판장과 어달리 해수욕장을 살펴보고 숙소로 향한다고 연락을 했다.

바다를 향해. ⓒ전윤선

어판장은 아침에 잡아 올린 싱싱한 횟감들과 상인들의 삶의 비린내가 바다만큼이나 짙고 깊게 배어 활기에 넘쳐난다.

날렵한 손놀림으로 회감을 거침없이 손질하는 노파에게 잠시 말을 건네 본다. 바다를 터전 삶아 기나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실타래처럼 다 풀어내 버린 늙은 여인의 삶은 한평생 자식의 그림자로만 살아온 세월이 눈물 없이도 울 수 있는 그 이름은 어머니이다.

당신들의 가치를 위해 일찍이 시들어버린 삶을 택한 어머니, 당신은 자식에게 내어주는데 익숙한 사람이시며 자식사랑에 차가운 겨울바닷물에 투박한 손을 담그며 시린 손을 움켜쥐는 늙은 아낙의 손은 쉴 세가 없다. 자식들 다 키워 뭇으로 내보내놓고도 노부모에게 자식은 평생 마음의 짐이요 엄숙한 굴레인가보다.

그들에 삶에 있어 바다는 자식을 키워내는 어머니의 자궁이요 삶을 이어지게 하는 생명의 근원인 것이다.

항구에 정박한 고깃배는 내일의 출항으로 분주하고 항구와 맞닿은 어판장은 하루를 마감하느라 겨울 해가 짧다.

묵호 어판장과 싱싱한 대게. ⓒ전윤선

횟감을 포장하여 가방 속에 깊숙이 찔러놓고 어달리 해수욕장으로 나의 동그란 발은 쉴 새 없이 달린다.

이미 어둑해진 동해바다는 저 멀리 정월대보름달이 수평선 위로 떠오르고 있다. 처음엔 달인지, 해인지 분간할 수 없어 잠시 내 눈을 의심해봤지만 검은바다를 밝히고 있는 것은 등대도 아니요 희미한 별빛도 아닌 쟁반같이 둥근 정월대보름달이었다.

동해 바다 심연에서 퍼 올린 보름달은 낯의 해보다 더 밝게 묵호의 밤을 비추고 나그네의 밤길에 이정표를 만들어 준다.

낮보다 더 밝은 정월대보름달. ⓒ전윤선

동해 까막바위. ⓒ전윤선

동해 바람을 맞고. ⓒ전윤선

알람소리에 눈을 뜨니 저 멀리 수평선에서 붉은 해 덩어리가 구름을 뚫고 솟아오를 채비를 하고 있고 아침 바다는 나에게 또 다는 풍경을 선사해준다.

중천에 해가 걸리기 전에 목적했던 망상해수욕 장으로 향한다. 해안선을 끼고 오른쪽으로 펼쳐진 동해바다는 파란 하늘을 닮아 있다.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높이 떠있는 태양빛을 받아 바다는 은빛물결로 출렁이고 저 멀리 수평선에는 어부의 배가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은빛물결을 흩어놓는다.

바다를 끼고 달리자니 내가 바다인지 바다가 나인지 분간할 수 없음에 바다와 난 하나가 된다. 두 시간 가량 달을까, 다다른 곳은 어느 어촌 마을. 정월대보름 행사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올 한해도 풍어를 기원하며 용왕제를 지내고 있다한다. 잠시 그곳에 들러 용왕님께 무엇을 기도할까 생각해 봤지만 기도의 말은 떠오르지 않고 어색한 마음에 돌아선다.

목적지 망상해수욕장을 1키로 앞두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 되어 아쉬움을 뒤로한 채 묵호역으로 발길을 옮긴다. 청량리행 2시 40분 기차는 묵호역 철로위로 부드럽게 발을 들여놓는다. 어지럽던 마음을 동해바다에 풀어놓고 돌아오는 기차안서 다시 찾아오리란 기약을 하며 청량리행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서울로 떠난다.

어떻게 가나?

청량리역에서 묵호역까지는 휠체어탑승이 가능하며 역무원이나 승무원에게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묵호 행 왕복 요금 19,800원.(할인된 요금)

어디서 자나?

바다마을이야기- 숙박료 주중 5만원, 주말 6만원이며 장애인 당사자가 운영하는 숙박시설이여서 숙박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문의 010-6373-8505 /바다지킴이http://cafe.daum.net/bsp100000

주변볼거리는?

-등대박물관: 숙소 뒤쪽의 산책로를 따라 보도 10분정도의 거리 등대박물관에 올라서면 동해앞바다가 훤히 보임.

-어달리해수욕장: 숙소에서 휠체어로 달려 30분정도 거리로 전동휠체어로 동해바다를 끼고 천천히 바다와 벗하며 걷는 길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묵호항어판장: 휠체어로 걸어서 4분 거리 싱싱한 횟감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이밖에도 휠체어로 달려 2시간가량 달리면 망상해수욕장과 고래화석 박물관이 있다. 특히 망상해수욕장은 넓은 백사장과 깨끗한 수질로 유명하다. 애국가에 나오는 추암 촛대바위도 기간을 2박3일 정도 넉넉히 잡아 여행 한다면 충분히 휠체어로 갈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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