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 공항. ⓒ전윤선

그들을 만났다. 인도여행은 먼 옛날부터 그리워만 했던 꿈의 나라이다. 떠나는 날 추위가 일찍 찾아온 탓인지 제법 쌀쌀한 기온이 초겨울 날씨 같다.

여섯 명 모두 모여 떠날 준비를 하며 배낭과 휠체어를 세관에 검사하고 짐칸에 먼저 실어놓는다. ‘왜 이리 마음이 설레는 걸까’. 인도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비행기 안에 몸을 실고 나니 지난날 인도여행을 준비해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시월 어느 날쯤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인터넷 온라인 카페 장애인과 함께 하는 세계오지여행 하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그곳을 샅샅이 들춰보았다. 이곳이 과연 장애인과 비장애인 함께 세계 오지를 찾아다니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런데 여러 명의 장애인이 세계오지 여행을 다녀온 흔적이 게시판 여기저기 아름다운 사진과 여행기행문으로 남아있다. 순간 나의 머리는 아찔해졌고 큰 망치가 내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듯 한 멍함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저들이 정말로 세계오지를 여행을 하는구나! 환희였다. 희망이었다. 때 마침 11월에 인도 타르사막 여행을 떠난다는 공지가 붙어있었다. 인도. 그것도 타르사막! 이것이 꿈인가 현실인가 잠깐 공항상태에 빠져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고 또 보았다. 역시 인도타르사막 여행이었다. 갑자기 마음 급해졌다. 심장은 머질 것 같고 힘없는 손은 나도 모르게 작은 떨림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잠시 혼미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내가 쓴 댓글을 읽어보았다. ‘장애인도 꿈에 그리던 인도로 갈 수 있나요’하는 질문이 댓글을 장식하고 있었다. 답변을 기다리는 몇 칠 동안 인도라는 나라가 언제부터 내게로 다가왔는지를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십여 년을 거슬러 올라 어느 방송사에서 보았던 오지여행 프로그램인 것 같다.

여행자가 인도 서북쪽 라자스탄 지역 타르사막을 낙타등위에 올라타고 횡단하던 그때부터 이었던 것 같다. 여행자는 낮엔 낙타를 타고 뜨거운 태양아래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걸어가고 밤엔 사막의 별을 노래하며 사막에 취해 잠이 들곤 했던 오지체험 프로그램을 보며 꿈꿔왔던 것이다.

그 여행에 대한 긴 기다림은 십여 년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가끔씩 생각을 꺼내어 보며 혼자만의 생각 속에 인도로 떠나곤 하곤 했다. 그렇게 인도는 십여 년이란 인고의 세월이 지나고서야 내 발걸음을 허락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이 지나 다시 온라인카페를 찾아들어갔다. 댓글이 달려있었다. 함께 인도로 여행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온 것이었다. 그러나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나의 생각의 장애 때문일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장애로 꿈꿔왔던 인도타르사막을 어찌 여행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의 미로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여행을 하려면 경제적인 것도 문제였다. 그렇게 꿈꿔오던 인도는 넓은 바다를 항해도 하기 전에 암초에 걸려 좌초되고 말겠다는 생각 속에 이내 포기할 생각 있었다.

여러 여건이 맞지 않은 상황에서 인도로의 발길을 내딛는 것은 내 삶에 있어 사치에 불과하다는 결론으로 치닫게 돼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지금 가지 않으면 꿈을 포기하는 것 같다는 동행인의 말에 잠시 생각 속에 잠겼다가 다시 낯선 인도 땅에 발길을 옮기로 결정했다.

며칠 후 인도기행 경비마련 바자회가 있어 구경도하고 기행에 필요한 물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도하면서 인도로 함께 떠날 길동무도 만나 얼굴도 익히고 떠나기 전 준비에 관한 전반적인 의견을 나누고 져 홍대로 향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선뜻 경비 마련 바자회를 열단 말인가? 계속되는 물음속에 발걸음은 홍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내 어찌 안가겠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버티겠는가하며 바자회 장소인 헌 책방을 찾아 나섰다.

홍대 역 근처 작고 아담한 헌 책방과 친환경 먹을거리와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장애인과 함께 헌 책방 겸 카페를 운영하며 친 환경 먹 거리를 저렴한 가격에 사랑 나눔을 벌이고 있었다. 그곳은 작은 카페이지만 많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눈인사를 건네다. 그들은 따스한 차 짜이(인 도차)를 권한다. 카페 운영자 외 인도에 함께갈 길동무 H와 K, E, J 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행색은 범상치 않아보였다

특히 카페쥔장은 질끈 묶은 긴 머리에 조용하고 차분한 어투, 여린 몸이지만 강인함이 엿보이는 인상에 계량한복을 입은 모습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흡입력 같은 것이 느껴졌다. 친환경 농산물로 만들어낸 음식들, 채식으로만 식사를 한다는 그들은 수행하는 수도승 같아 보이기도 하였다. 평소 환경과 장애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카페쥔장은 장애로 인해 여행의 꿈을 포기하고 사는 이들에게 여행의 경험을 하고 더 나아가 장애인 가이드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해 매년 여행단을 모집 한다고 한다.

야영은 기본이고 돌아다니며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해야 한다니 오죽이나 힘든 여정이었겠는가. 그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어지고 있었다.

카페 안은 가지런히 정리된 헌책들과 때가 타 있는 엘피판, 각국의 여행 사진들로 조화롭게 장식 돼 있고 카페의 수익금은 고스란히 장애인의 여행비용에 지원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총 여덟 차례의 세계 오지를 다녀올 때마다 한 명의 동반 장애인에게는 교통비 및 모든 경비를 마련해 주었고, 카페쥔장은 인식의 장애를 가장 경계한다며 누구든 환영하며 카페로 찾아오라고 손을 내밀었다

헌책카페 나침판은 언제나 희망의 세계로 항해하고 있었다. 카페쥔장과 매니저 D, K , J의 카페를 만든 취지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기금을 쓰신 분은 나중에 조금씩 기금을 내 주시면 된다고 한다.

그렇게 나의 인도기행의 꿈은 다시 시작됐다. 장애의 몸으로 나라 밖을 나선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으나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찾지 못 할 꿈이라는 생각에 신들의 세계 인도로 꿈을 찾아 나섰다.

물론 주변의 강력한 만류는 뿌리치고 설득하며 떠날 채비를 했다. 미래를 염려하느라 오늘을 놓쳐버리고 싶지 않았고 지금 떠나지 않으면 미래에 대한 아쉬움의 시간 속에 나를 가둬놓고 살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의 인도기행은 시작되었다. 꿈을 찾아 떠난 인도기행 나의 지구촌 밟기가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나의 동그란 발은 인도대륙을 즈려 밟으려 한다.

[여행의 원칙]

* 여행 중 자신이 먹을 음식(쌀+반찬+음료)은 반드시 준비를 합니다.

* 차량 동승자는 차량경비를 공동으로 부담합니다.

* 여행 중 제반 경비와 사고는 자신이 100 % 책임집니다.

* 여행 중 녹색환경 관련 책(2,500원)을 한권씩 삽니다.

* 채식 식단을 준비합니다.

*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 여행하고 남은 금액은 여행지에서 모두 기부를 합니다.

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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