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 ‘드리머스’ 공연 모습. ⓒ서인환

나는 어떤 영화 시사회에 갔다가 지인의 소개로 발달장애인 뮤지컬 라하프 극단을 알게 되었다. 라하프가 히브리어로 ‘비상하다’란 말을 듣고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교회에서 만나 자녀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서 만든 단체인가 싶었다. 무엇인가 해야 하는 ‘사명감’과 여건이 어려워 기회를 찾고 있는 ‘허기짐’과 겸손하고 순진한 ‘선함’과 장애인들을 진정 사랑하는 ‘아름다움’이 첫인상으로 남았다.

2016년 창단을 하여 그해 바로 무대를 올리고, 지금까지 오면서 국회의장상을 받고, 해외교류 공연을 하고, 예비 사회적기업이 되었다는 ‘고속 성장’과 발달장애인이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예술감수성과 문화감수성을 키워주고 자아존중감과 자기표현, 자기조절, 창의성, 행복감, 문제해결력, 문화수용력을 향상시킨다는 ‘효과성과 필요성’. 매년 중견 감독들을 강사진으로 구성하여 뮤지컬과 매스 콰이어 아카데미, 랩 뮤지컬 아카데미, 탭 댄스교실을 열어 신인을 발굴하고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전문역량’ 등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도 나는 그저 발달장애인의 놀이마당 역할만 해도 족하다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아카데미 수료식 전 연습공연이나 이번 뮤지컬 공연 ‘드리머스’ 연습 현장을 힐끔 볼 수 있었던 나는 정말 공연을 잘 소화하고 예술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여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갔다.

지난 20일 아침 10시 반 첫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주로 학생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학교에서 많이 참석해 주었는가 보다 하면서 관객으로 가득 찬 공연장을 둘러보니 학생들은 여느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과 전혀 다름없는 들뜬 분위기였다. 장애인 행사라거나 인식개선 동원의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팸플릿을 보니 ‘너의 그 존재만으로 내겐 선물과 사랑, 변하지 않아도 좋아 있는 그대로’란 말이 적혀 있었다. 주인공 김륜호는 발달장애인 딸을 둔 아빠다. 말을 하지 못하는 딸과 대화하는 것을 소망하며 오래 기다려왔던 아빠는 그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꿈에서 딸과 대화를 한다. 딸과 밤하늘의 별들을 보다가 딸이 마법을 가르쳐준다며 ‘사랑해’란 말을 한다.

수많은 별들은 자유롭고 아름다운 발달장애인의 모습일 수도 있고,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인간의 아름다운 세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꿈속에 또 꿈이 있다. 딸과 대화하고 나서 다시 잠을 자고 깨어나 딸을 찾아다니는 꿈으로 이중적 구조다. 김륜호의 연기와 노래 솜씨를 들으며 처음에는 좀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딸을 찾아 헤매던 아빠가 문지기(브라보 김나연)를 만난다. 꿈속에는 많은 문들이 있다. ‘세상 많은 문들 중 마음 문이 가장 어렵더라. 모든 게 열려 있는 세상에 마음 문만 꼭 닫혀. 보이는 게 전부인 건 아닌데, 눈 감아야 볼 수 있는 세상이 있어’ 아빠가 딸에게 기대하는 것은 장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기대로는 딸과 대화할 수 없다. 딸의 대화법은 마음의 대화다.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은 아빠지만, 장애를 만드는 것은 신체적 장애가 아니라 소외시키는 사회다. 그러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장애인에게 아빠와 같은 닫힌 문 속에 있다.

딸을 찾아 우주까지 간다. 관제탑 아저씨 찰스(민정기)는 날아오르는 법을 모르는 아빠에게 말한다. ‘모르니까 알 수 있지. 굳이 닫힌 문 걱정할 거 없어. 하늘 위로 이미 열려 있어’ 아빠의 비상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꿈이기도 하고, 상상을 통해 꾸는 꿈이자 희망이다. 날아오르는 비상은 우리에게 새롭고 신비한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장애인도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 그것은 상상의 나래로부터 시작된다. 상상의 상실은 미지를 잃어버리고 희망을 잃어버리며 장애를 이해하는 마음의 눈을 잃게 하고 마음의 문을 열 수 없게 만든다.

비상하여 도착한 몽글레이 월드(햄스터 마을 정도로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의 몽글레이(김유남)는 도토리를 겨울 비상식량으로 땅 속에 묻는다. 그리고는 묻어둔 곳을 잊어버린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바보라면 그는 바보이지만, 무능력이 바보라면 그는 바보가 아니다. 무엇인가 알게 되면 두 팔을 올리고 ‘화들짝’ 소리를 내며 놀라는 그를 통해 관객들에게 바보에 대해 문제를 던진다. 우리가 흔히 말해왔던 ‘바보’라는 발달장애, 거짓말을 모르는 영악하지 못함이 바보인지, 기억을 못하고 까먹으면 바보인지 따지다가 ‘까먹지 못하면 아픈 거’라고 말한다.

도토리나무(한소라)는 아빠에게 말한다. ‘세상 살다가 보면 아픈 일들이 너무 많아. 마음 속 그려진 상처 지우려 해도 남아 있어 비 내리고 해 뜨면 어둠 사라져 무지개 빛나. 하나씩 까먹는 거야. 아픈 맘 사라질 수 있게. 하나씩 까먹는 거야. 잊혀진 도토리가 나무되듯. 용서는 잊어주는 것.’ 몽글레이가 까먹는 것은 묻어둔 곳을 까먹는 것과 도토리 껍질을 까먹는다는 말과 같은 단어이다. 잊고 먹지 못한 도토리가 자라나 다시 더 많은 도토리를 인간에게 먹게 한다. 아빠가 도토리나무를 가리켜 나무라고 하자, 나무가 아니라 자신은 도토리나무라고 말하는 것에서 모든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개인이며, 소중한 가치와 존엄한 개별적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겉면의 초코가 녹아 둘이 붙어버린 도너츠(도나도나스 정범진)는 아빠에게 통과하려면 퀴즈를 맞히라고 말한다. 1+1이 뭐냐고? 둘이 합쳐져도 다시 하나 된 그들은 인간이 정해 놓은 공식 1+1은 2라는 것과 사람은 말을 한다는 정상이란 고정관념을 꼬집는다. 꿈속에서 말하던 딸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딸을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말을 만나고 싶으냐고 한다. 말하지 않는 딸이 진짜 딸인데 말이다.

발명왕 황춘삼(김상현)을 만나 아빠는 딸에 대해 알려줄 매니저(이혁)을 호출할 발명품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사람들이 발명왕을 믿어주지 않아 시련에 빠졌다고 하면서, 자신을 믿느냐고 묻는다. 여러 물품들을 예로 들면서 상상이 발명을 한다고 언연 중에 관객에게 알려준다. 상상의 힘은 방법을 만들게 한다. 이미 있는 방법을 우리는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장애인을 정상인으로 변하는 발명이 아니라 존중하고 인정하는 발견이 발명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매니저는 예약을 해야 하고, 시간을 정해야 한다. 일상의 인간의 만든 기준이고 가치관들이다. 딸을 다시 만나려면 꿈은 좋아하는 것 두려운 것 등이 나타나는 것이니 좋아하는 것을 말해 보라고 한다. 음악이라고 하자 여러 배우들을 등장시켜 춤을 추게 하고 순위를 선택하라고 한다. 능력의 차등은 약자와 소외자를 낳는다. 매니저는 다른 예약 시간이 되었다며 가버리자 춤을 추던 한 배우가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용기를 어떻게 가지는 것이냐고 묻자, 멋진 사람이 되면 된다고 말하고, 멋진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가만히’는 있는 그대로 ‘용기’는 수용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노부부(이한길, 조수진)는 딸을 찾는 아빠에게 말한다. ‘아픈 마음 슬픈 마음 나아지지 않을 거야. 다친 마음 지친 마음 좋아지지 않을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안아주는 것, 기다려 주는 것, 치료하지 못해도 너를 안아줄게. 너의 마음 내가 알아.’ 안아주는 것을 용기라고 하였다. 안아주는 것은 수용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고,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치유의 능력이고 진정하게 안다는 것이다. 앎과 안는다는 언어가 교묘하게 어울린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있는 그대로 너를 사랑해’ 노래가 끝나면 딸이 등장하고 딸이 집에 가자고 한다. 아빠가 돌아가는 방법을 모른다고 하자, 주문을 가르쳐 주었지 않느냐고 한다. ‘사랑해’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묘약이고, 주문이다. 장애인식개선은 사랑하는 씨를 심어 자라게 하는 것이다.

뮤지컬 드리머스는 처음부터 화려한 음악이나 가창력을 보이지도 않고, 대화 속의 매시시지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심리극을 보듯이 집중하게 만든다. 후반부에 가서야 뮤지컬 구성과 메시지를 이해하고 그때서야 감동이 밀려온다.

말하면 무조건 이루어지는 주문 ‘사랑해’. 이 주문 하나면 모든 별들, 즉 장애인을 포함한 사람들이 반짝일 것이다. 나는 내용 파악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가 용기 노부부의 노래에서부터 뜨거워지는 체온을 느꼈다. 나에게 피톤치드향이 뿌려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감동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이 창작 뮤지컬에 마음속으로 별 다섯 개를 부여하고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오늘의 힐링을 다시 도시 먼지 속에서 오염시키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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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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