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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서기 부담스럽지만 그럼에도 나서야 하는 이유가 있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2-08-26 12:01:23
나는 평일 저녁과 주말을 이용해 세 곳의 모임을 활발히 오가는 중이다. A 모임은 지체, 뇌병변, 시각, 발달장애 등 다양한 장애유형을 가진 사람이 모였다. 2015년부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시작한 B 모임은 총무가 없다. 소규모로 운영되다 보니 따로 정하지 않았다. 발달장애인만으로 구성된 모임인 C에서는 총무를 맡고 있다. 회원들의 의견을 받아 모임 할 장소 알아보고 모임 전 날 회원들에게 연락하고 회비를 관리하는 일 등을 하고 있다.

A와 B모임에서 의견을 물으면 '나는 뭐든 좋아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요.'라고 한다. 혹여라도 나서면 '그럼 네가 한번 추진해 볼래?'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았다. B 모임에서 회비 카드로 결제 맡아볼 사람, 인터넷 예약해볼 사람은 물론 사진 찍어볼 사람에도 나는 손을 번쩍! 번쩍! 하고 들지 않았다.

무언가를 맡아서 하는 게 부담스럽고 귀찮았다. A모임은 회원이 많아서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잘 돌아갔다. B모임도 A 모임과 마찬가지로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잘 굴려가 주기를 바랐다. 카드결제 맡아 줄 사람을 찾을 때 나를 쳐다보는듯한 B 모임 제안자의 눈길이 느껴졌다. 제안자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 요리조리 피해보았지만 회원수가 워낙 적다 보니 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할 일도 많고 숫자만 보면 머리가 아픈데 모임 회비 카드를 가지고 있으려니 부담감이 100배로 치솟아 올랐다. 워낙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려 하다 보니 2015년부터 참여했던 B 모임에서는 7년 내내 회원 역할만 꿋꿋이 맡고 있다.

이렇게 다 차려놓은 밥상에 자꾸 숟가락만 얹으려다 보니 부작용이 있었다. 올해 4월부터 어쩌다 보니 총무를 맡게 된 C 모임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을 망설이게 되었다. A 모임에서는 강사님을 모시고 꽃꽂이와 비누 만들기를 했다. B모임에서는 기차 타고 춘천까지 가봤다. 롯데타워에 올라갈 계획도 세우기도 하고 가을에는 한복을 빌려 입고 경복궁에서 인생 사진도 건지기로 했다. 나 혼자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책임감을 덜어서인지 모든 활동에 오케이를 외쳤다.

반면 C모임에서는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영화 보고 박람회 구경 가고 카페 가고 밥 먹는 활동만 했다. 내가 다른 모임에서 그러하듯 C 모임 회원들도 총무만 바라보는 듯하다. 회원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지 않아 총무인 내가 많이 해본 익숙한 일만 제안하다 보니 모임에서 하는 활동들이 단조로워지지 않았나 조심 스래 추측해본다.

A와 B 모임에서처럼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앞으로도 매번 하던 재미없는 일만 하게 될 것이다. 나만 적극적으로 임한다고 모임이 굴려가지 않을 테니 회원들에게도 의견을 내게 할 방법을 찾고 있다. '다음 달엔 어떤 활동을 할까요?' '어디를 갈까요?'라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들려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활동과 갈 수 있는 장소를 여러 개 찾아 그중에 고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C모임에선 총무인 내가 책임지고 장소를 알아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모임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다.

얼마 전 C 모임 회원이 나에게 물었다. "몇 시에 모여요?" 나는 되물었다. "우리 몇 시에 모일까요?"
"오전 10시가 좋을 것 같아요."

오에! 내 뜻대로 하겠다던 회원의 의견을 얻어냈다. 진작 이런 대화방식을 취할 걸 그랬나 보다. 어떤 활동을 할지, 어디에서 모일지, 몇 시에 모일지 아무도 자신의 생각을 내놓지 못하고 내 의견만 따른 건 마냥 좋아서가 아니었다. 대화방식이 조금 잘못되어서였다. 나는 항상 '오전 10시에 모이는 거 어때요?'라고 물었다. 총무가 그렇게 물으니 회원은 "네 좋아요."라는 대답밖에 못했을 거다. 답정너 같다는 느낌에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의사소통 방식만 조금 고려해준다면 발달장애인인 우리도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더 나아가 무언가를 이룰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남들 따라가는 게 편하다고 멍하니 있으면 안 된다. 말이 어려우면 글로, 글이 어려우면 그림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발달장애인 의견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C 모임 회원들이 부담스럽고, 귀찮다는 이유로 나처럼 다른 사람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발달장애인은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낙인찍힐 수도 있다. 나도 잘 안 하려 들면서 남들에게는 등 떠밀려하다니 이런, 상 꼰대가 따로 없다.

다행스러운 점은 발달장애인도 생각이 있고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주는 사람들과 단체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발달장애인이 자기 결정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자료를 제공하고 조력도 해 준다. 환경만 뒷받침된다면 발달장애인도 모임에서 얼마든지 의견을 낼 수 있고 역할 하나쯤은 가져갈 수 있다.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 의견대로 따라가려는 나 같은 발달장애인을 만난다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떠안기 부담스러워서 잘 나서지 않는 거라는 걸 알아줄 날도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하는 얌치 없는 상상 한번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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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유리 (uri2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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