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로의 비너스는 양팔이 없다. 발견 당시부터 팔이 없었다는 설과 프랑스군 약탈 과정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설이 있다. 밀로 섬에서 어느 농부가 집을 수리하기 위해 땅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하였을 때에는 팔이 있었으나, 운반 과정에서 팔을 잡아서 옮기는 바람에 떨어졌다는 것은 상상이 가능하다. 운반 과정에서 다쳤으니 교통장애인 비너스다.

밀로의 비너스가 팔이 발견 당시부터 원래 없었다면 그리스가 멸망하자 마케도니아나 페르시아에 의해 신전이 파괴될 때에 밀로의 비너스도 팔이 부서진 채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쫓겨나 밭에 버려져 나뒹굴게 되었고 흙에 묻혀 세월을 보내다가 발견된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으로 인한 장애인이다. 전투를 한 것은 아니니 상이용사는 아니지만 전쟁의 피해자인 것이다.

그리스는 아테네 주도로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하자, 그 기세를 몰아 페라클레스는 강한 나라를 만들자는 명분 아래 그리스 폴리스를 모아 델로스 동맹을 맺었고, 군사력 강화를 위해 재력을 모았는데, 그 재력으로 신전을 짓고 예술문화사업도 하게 되었다.

구전의 이야기를 모아 그리스 신화가 탄생하였겠으나, 그것을 우상으로 하여 자연을 의인화하여 자연과 인간의 풍요를 상징하는 것들을 관장하는 신들을 정하고 그 신을 숭배하고 우상화하여 더욱 풍요로운 생활과 영원한 향유를 바랐을 것이고, 이를 정치인들은 이용하여 신의 권력을 인정하여 계급의식을 심은 다음 자신들을 그 다음 권력 위에 놓아 복종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재력을 각출해야 하는 불만이 커지자,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어 27년 간 아테네와 전쟁을 하게 된다. 승리는 하였으나, 국력은 소진되어 결국 외부의 침략으로 그리스는 멸망하고 말았다. 밀로는 그리스의 상처이고, 권력과 분열의 시민들의 고통으로 파괴된 역사가 만든 장애다.

밀로스 섬에 있던 비너스를 프랑스가 약탈하였고, 지금도 반환 요구 운동이 지속 되고 있으니 밀로의 비너스는 약탈이라는 상처도 갖고 있다. 발견 당시 밀로스 섬은 터키의 지배하에 있었고, 당시 군사적으로 강국이었던 프랑스 함대가 밀로 섬 근처에 정박하였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본국에 보고하였는데 프랑스가 대사관을 통해 터키에 판매를 요청하였다.

터키는 프랑스의 힘에 눌려 판매를 하였고, 비너스는 결국 루이 18세에게 바쳤으나, 왕은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하도록 하였다. 힘에 의해 팔도록 압력을 받았다는 점과 당시 밀로스 섬이 아닌 터키에 의해 팔렸으니 불법이라는 주장과 정상적인 구입 절차를 거쳤으니 프랑스의 것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밀로의 비너스는 약소국의 설움과 국가 간 갈등이라는 아픔을 지금도 안고 있는 것이다. 비너스는 신체적 손상만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 속에 있다.

더구나 반환을 하기 싫어서 팔을 잘랐다는 설도 있고, 합법적으로 구입한 것처럼 꾸미고 있으나, 사실은 터키군과 프랑스군 격전이 일어나 그 과정에서 팔이 잘렸다는 설도 있으니 어느 것이든 참으로 아픈 역사가 아닌가 한다.

밀로의 비너스는 대리석 조각상이다. 대리석은 매우 섬세하게 오돌토돌한 면을 가질 수 있어 투박하지도 않고 유리처럼 미끈하지도 않아 오히려 생동감 넘치는 피부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그리고 황금비율인 9등신에다가, 오른발에 체중을 싣고 왼발을 살짝 올린 모습이다. 윗몸은 나체이고, 아래는 주름치마를 걸치고 있다. 키가 2미터 4센티미터이니 실제 인물 중 키가 큰 날씬한 여인으로 착각하고 미의 매혹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비너스는 남녀 간, 이성 간의 미를 의미한다. 당시 권력자는 남성 사회이니 여성을 표현한 것이다.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는 미의 여신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미는 여성으로서의 미를 의미하겠으나, 그것에 한정하지 않고, 신전을 지키는 수호신이고 도시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신전은 일종의 전쟁기념관이었고, 영원히 빛날 도시를 지켜주는 수호신이었으니 다산과 포용의 상징이다. 그래서 관능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여성으로서의 미보다 어머니로서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도 있다. 두발의 조각과 하반신을 덮는 옷의 표현은 오리엔트의 헬레니즘 양식의 영향으로 보는데, 헬레니즘이 수호신의 보호라는 사랑의 표현에 적절하게 적용된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 대 인간이 아닌 그리스를 지켜주고 발전시켜 주는 여인으로 사회적 역할의 우상이다. 성적 매력은 다산을 상징한 것이다.

비너스는 허리부분을 단면으로 하여 상하 두 개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팔을 복원하기 위해 미술사학자들이 연구하였으나 몸을 일부 가리기 위해 손을 메디치의 비너스처럼 하고 있었는지, 신전의 수호신이니 파리스의 황금사과(여신들끼리 최고의 미인 선발대회를 하여 얻은 물건)를 들고 있는 모습인지 합의가 되지 않아 결국 팔이 없는 상태로 남게 되었다.

팔이 없어서 보기가 흉하였다면 나중에 고증을 거쳐 수정을 하더라도 일단은 어떤 모습이든지 팔을 복원하였을 것이다. 그동안 여러 주변 섬에서는 여러 가지 비너스 상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두부 부분이 손상되어 작품의 가치가 없었다. 팔이 없는 조각상을 보니 팔이 없는데도 오히려 더 아름답다고 느낀 것이다. 그 중 하나의 모습을 본 따서 팔을 복원했을 것이다. 복원 방식에 합의가 되지 않은 원인도 있지만,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 더 아름다워서 복원하지 않은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즉 손상된 부분이 있어도 완전한 미를 표현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의 완전성을 의미한다. 장애인은 일부가 없는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똑 같은 평등한 권리를 가진 완전한 인격체로서 권리만이 아니라 몸도 완전성을 가진다는 의미이다.

스포츠채널 ESPN에서 낸 화보집에 8살에 장애인이 된 스포츠 선수를 모델로 누드집을 낸 것이나, 캐나다 테리 폭스가 소아암 모금재단 설립을 위해 횡단 마라톤을 한 것을 기념하는 포인트 재로 지점인 비톤 힐 공원의 의족 동상 등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비너스의 모습으로 이미 숙달된 영향도 있다 하겠다.

장애인 중 헬렌켈러와 같은 위인이나, 전쟁의 아픔을 알리기 위한 지뢰로 발이 잘린 동상, 미대통령과 장애인 영웅들을 기념하는 동상 등이 장애인 동상이나 조각으로 있는데, 장애인 모습으로 동상을 만들 것인가의 결정에 비너스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 누드집이나 조각 작품과 같이 장애 영역도 미의 영역으로 확산 되는 것을 증명해 보여준 것이 비너스 조각상이다. 팔이 없어 더욱 균형미가 있고 팔의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아 몸 자체에서 품어 나오는 분위기가 더욱 선명해지는 그런 비너스 말이다. 그리스 시화가 많은 문학작품의 원형이 되듯이, 비너스는 많은 미술인들로 하여금 미의 표현에 장애인 모습을 모티브로 사용하도록 자극하고 있어 최근 장애인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상이 작품으로 발표되고 있다. 즉 장애는 영감의 모티브다.

이는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봐 달라는 장애 인식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사람들은 상상보다는 실체를 앞에 두고 눈으로 보아야 이미지가 확실해지고 상상에도 이미지의 실체가 도움이 된다. 장애인의 삶을 상상으로 권리를 인정한다거나 장애인의 감수성을 생각하며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이 만들어내는 상대가 되기 쉽다. 그런데 비너스를 보면 장애인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투영된 모습으로 다가온다. 비너스에서 결여가 아니라 풍요와 발전, 낭만을 느낀다. 이는 삶의 문제에 대한 매개체로서의 장애다.

과거에는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신전에 모셔진 권력을 누렸던 비너스가 지금은 순수 작품으로서만 인정되는 박물관에서 잠을 자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너스에서 약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약자가 약자가 아닌 것은 있는 그대로 사회가 받아들이는 수용일 것이다. 이는 수용으로서의 장애다.

비너스는 많은 역사를 돌아 이제 장애인이 되어 우리 곁에 왔다. 최고의 미를 자랑하던 완전에 가까운 미를 소유한 자가 장애인으로서 미를 보여 주고 있다. 장애인도 기능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잃어버린 기능보다 남아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활동과 참여, 즉 능력으로서의 장애다.

소묘를 위해 석고상을 보듯이, 이제 비너스는 우리의 장애인의 삶에 하나의 표상의 신화가 되고 있다. 또한 실제로 소묘로 비너스가 사용되고 있으니 얼굴이나 몸통(토르소) 등 일부만으로도 미를 표현할 수 있음을 비너스는 알려 준 셈이다. 이는 새로운 신화로서의 탄생된 장애다.

잠재적 장애인이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죽으면 그만이 아니라, 죽어서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역사가 그렇다. 이미 잊혀진 사람도 역사 속에서 왜곡되기도 하고, 실제로 다시 살아나 장애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영원이라는 우주 공간에서 누구도 장애인의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너스가 그렇듯이 말이다. 이는 잠재적인 장애다. 그러니 누구도 장애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는 신의 인간적 속성을 드러낸 쾌락이나 질투 등 생활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수호신으로 승화하여 정치인들이 단결과 억압을 수용하도록 강요하고, 우상숭배를 하도록 우민화 정책의 하나로 만들어진 예술의 정치화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온전히 복원하지 못하고 파손된 문화유산을 통하여 장애는 인류가 영원히 안고 살아야 하는 역사임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리스의 차별과 억압을 장애인 비너스에서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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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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