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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대상은 자폐 아닌 나와 세상의 무지·편견

오랫동안 말해지지 못했던 이야기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2-01 15:26:52
“(엄마인) 내가 흘린 눈물로 (다운 증후군이 있는) 제이슨이 익사할 정도였어요. 나는 이런 상상을 했어요. 예컨데 무척 정교한 핀셋을 개발해서 그 핀셋을 들고 제이슨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제이슨의 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세포에서 불필요한 염색체들을 하나씩 전부 뽑아내는 거죠.”(에밀리 펄 킹슬리)

“당신은 축복받은 엄마군요!”

아들 벤에게 자폐성 장애(ASD, Autistic Spectrum Disorder, 영어로는 자폐 스펙트럼이라 함) 진단을 내리면서 소아과 발달 전문의 캐서린이 말했다. 예전 같으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 진단을 내렸겠지만, 지금은 (고기능) 자폐성 장애로 통합되었다는 친절한 설명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미 오래 전에 엄마표 진단을 내린 터라 공식적인 진단은 후련하면서도 꾹꾹 눌러왔던 슬픔과 고통을 다시 불러냈다.

슬픔은 엄마의 등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기생한다. 맘 같아서는 “축복이라고요? 당신이 한 번 살아 볼래요?” 고함치고 싶지만 생각을 고쳐먹었다. 불쌍하고 가엾다는 연민과 동정의 눈빛이나 근심과 걱정스런 말로 진단을 알리는 의사였다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내 아이를 오래 동안 만날 전문가가 우리 가정을 축복받은 가정으로 여긴다는 사실은 살짝 안심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만감이 교차하며 고개를 떨군 나에게 캐서린은 엄마를 위한 심리 상담사 연락처를 써주며 덧붙였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우울과 비탄과 슬픔과 죄책감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하게 돼요. 혼자서 감당하려고 하지 말고 힘들면 엄마가 먼저 도움을 받도록 해요. 진단은 아이 뿐만 아니라 부모도 함께 도움을 받는 과정이에요.”

만 3세경부터 의심하기 시작한 벤의 발달을 만 7세가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진단 받은 셈이다. 호주로의 이민 준비와 이민 후 정착, ‘발달 장애인’ 낙인을 새기는 일이라며 진단을 두려워하는 남편 설득, 벤의 초등학교 입학과 학교생활이 어느 정도 안착된 후에 숨을 고르고 전문가를 수소문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여러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벤과 함께 먹고 싶던 음식들, 벤과 함께 여행 할 나라들, 벤과 함께 고르고 싶던 옷과 신발들, 벤에게 가르치고 싶던 운동들, 벤이 연주하길 원했던 악기들, 벤이 다닐 학교와 친구들, 함께 가고 싶던 미술관, 벤과 거리를 거닐며 나누고 싶었던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던 일상과 잡담들….

임신을 계획하고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을 하면서 수없이 꿈 꿔왔던 찬란한 미래들이 손안에서 모래알 빠져 나가듯 스르르 쏟아져 내렸다. 내가 알던 인생이 통째로 흩어져 버렸다.

엄마에게는 쉽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아들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집밖은 무섭고, 새로운 음식은 구역질이 날 거 같고, 시끄러운 곳에 가면 귀가 아프고,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두려워서 움츠려 들고,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너무 빨라서 따라 갈수가 없고,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일상과 익숙한 장소에 가야 안심이 되어서 여행은 고역이 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그런 사람 중 한명이 내 아들이라니…. 세상이 폭삭 내려앉았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을까?’

내 아이를 자폐란 불한당에게 도둑맞은 기분에 사로 잡혔고, 가능하다면 도로 벤을 찾아오고 싶었다.

그렇다 보니 엄마는 자동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폐와 맞서 싸울 전투태세 모드로 변했다. 자폐는 뇌의 신경회로가 일반인과는 다르게 연결되어 나타나는 발달상의 어려움이라니, 뇌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지 않을까? 의학과 과학의 발달이 눈부시게 발전하여 대부분의 질병과 장애를 줄이는 추세라면 자폐 분야도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 않을까?

세계 어느 곳에선 국가적 지원과 투자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자폐증을 유발하는 뇌의 부분을 찾아내어 그 부분을 핀셋으로 제거를 하던지 비자폐인처럼 연결을 하면 되지 않을까? 수많은 궁금증과 공상으로 머릿속이 터질 듯 복잡해진 엄마는 한국의 유명한 뇌과학자에게 보낼 메일을 작성하고 있었다.

“왜 정형인들(비장애인들을 Neuro Typical이라 부르고, 자폐인들을 Nuero Diversity라고 부르기도 함.)은 우리 자폐인들이 당연히 정형인이 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지?”

호주에서 만난 친구 엘리가 물었다. 엘리는 아들 둘에게 자폐성 장애 진단을 내려주면서 엄마인 본인도 함께 자폐성 장애를 진단 받은 자폐 당사자이다. 누군가 내 뒤통수를 한대 후려갈긴 듯 엘리의 반문에 입이 쩍 벌어지고 말을 잇지 못하자 엘리가 덧붙였다.

자폐는 나를 설명하는 여러가지 특징 중 하나일 뿐이란 점에서 나의 개성이고 정체성이야.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자폐 자체가 아니라 우리를 ‘열등’하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바라보고, 우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은 채, 정형인의 기준에 맞추려는 세상의 무지와 편견과 차별들이야. 정말 벤이 본인의 자폐를 혐오하고 정형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

엘리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벤과 벤이 지닌 자폐적 특성을 잘 이해하고 존중한다며 나름 ‘괜찮은 엄마’ 라고 믿었던 사실은 완전한 나의 오만이고 착각일 뿐이었다. 내가 벤을 바꾸고 싶어 하는 만큼 벤은 본인이 문제가 있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 뻔하다.

“넌 하는 짓 보니까 딱 한국인이네.”, “이젠 호주에 왔으니 한국말은 그만 쓰고 영어로만 말해.”, “냄새 나는 김치 그만 먹고 이젠 취향 좀 바꾸자.”, “젓가락질 말고 포크와 나이프로 먹자.” 만약 호주인이 하루 종일 쫓아다니며 내가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수시로 끄집어내고, 호주에 산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호주인의 방식으로 바꾸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것도 나는 한국인이란 정체성이 부끄럽지도 창피하지도 않을 뿐더러, 영어 사용이 자유롭지 않아 호주 생활이 불편하긴 해도 한국어가 나의 자긍심(pride)이 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분명한 점은 호주에 몇 년 살아보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굳이 누가 나를 호주인의 생활방식과 문화로 바꾸려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조금씩 그들의 문화에 물들어 갔다.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 부지불식간에 다양한 물감들이 서로 섞이는 일이었다.

‘그동안 나는 아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이고 무례한 엄마였던 것일까.’

정신이 바짝 들었다. 벤의 자폐 세계가 엄마에게 서서히 번져 왔듯이 벤도 본인의 속도대로 비자폐인들의 세계를 연습하고 공부하는 중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 벤을 오롯이 사랑하는 일은 자폐마저도 끌어안고 더불어 사는 일이란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자폐를 먼저 보지 말고 사랑스런 벤을 봐요.”

남편이 수시로 나에게 하던 말의 뜻을 이제서야 불에 데인 것처럼 뜨겁고 쓰라리게 알아챘다.

“벤의 어려움을 지원하는 일은 전문가, 교사, 정부에게 분담시키고 부모는 벤의 장점과 강점에 집중하세요.” 진단을 내리면서 캐서린이 나에게 한 말의 의미도 이제서야 깨닫게 됐다.

매일 밤 똑같은 물통에 꼭 얼음 한 덩이를 넣어서 침대 옆에 놓아 주어야 하는 일, 바지를 입으면 꼭 밑단을 한 번 접어야만 하는 일, 몸의 감각을 자극하지 않는 옷만 사야하는 일, 신발끈이 없는 신발만 사야 하는 일, 슈퍼에 가기 전에 좋아하는 카페에서 밀크 티를 한잔 마셔야만 하는 일, 등하교길 차안에서 마인크래프트 음악을 매번 들어야 하는 일….

처음엔 벤의 자폐 세계가 너무 당황스럽고 황당하기만 하더니 이제는 ‘참 효율적이고 일관성이 있어 좋네!’로 바뀌었다. ‘더불어 자폐’ 생활이 길어질수록 엄마에게는 벤이 사랑스러운 만큼 자폐적 특성들이 사랑스러워 미소가 절로 나올 때가 있다. 그리고 이제는 선명하게 안다. 엄마인 내가 맞서 싸우고 바꿔야 할 대상은 벤과 자폐가 아니라, 나와 세상의 무지와 일상 속의 차별과 편견들 이란 사실을.

그래서 진심으로 엘리에게 부탁했다.

“엘리, 내 옆에 친구로 오래 머물면서 너의 얘기를 들려 줘. 그동안 말해지지 못한 오래된 이야기들, 그리고 어쩌면 벤이 미래에 하게 될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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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루나 (bom02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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