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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가족을 만나다

영화 ‘어느 가족’이 묻는 가족의 의미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8-20 16:48:19
KBS2 ‘안녕하세요’ 중에서 ⓒ네이버 에이블포토로 보기 KBS2 ‘안녕하세요’ 중에서 ⓒ네이버
시청자 고민상담 프로그램인 한 프로그램을 보다가 날씨도 더운데 후끈 열이 올랐다. 눈물로 호소하는 한 어머니의 고민이란 것이 고작 - 당사자는 심각한데 제3자인 내가 이렇게 표현하는 것에 다소 미안한 마음이 없진 않지만 - 아들의 긴 머리 때문이란다.

다정다감하고 효자이고 모든 면에서 대견한 아들인데 유독 긴 머리를 고집하는 아들 때문에 너무나 힘이 든단다.

긴 머리를 한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여자냐고 쑤군대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힘들고 이상한 사람 아니냐, 게이냐... 맘대로 상상하는 사람들의 곱잖은 시선도 너무나 신경이 쓰인단다.

그런 아들이 창피해서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아들이 아니라고 거짓말도 한다는 그 엄마.

남자는 파랑, 여자는 핑크... 이런 식의 고리타분한 성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는 요즘에도 아들의 긴 머리를 그렇게나 심각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엄마가 있다니...

게다가 아들이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저 머리 하나 긴 것뿐인데 아들의 모습이 창피하다고 서슴없이 얘기하는 그 엄마를 보면서 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엄마에게 떠밀려 방 한구석에 숨어 있었다던 어떤 장애인 친구가 떠올랐다.

남자가 긴 머리를 했다는 그 정도의 다름에도 그렇게 반응하는데 혹여 아들이 장애라도 입었다면 그 엄마는 아들의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떤 영화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전쟁에 참전했다가 폭격에 다리를 잃고 귀환한 아들이 가족에게 돌아가기 전 장애인을 경멸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결국 엄마 앞에 나타나지 못한 채 자살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가 있었다. 장애라는 정체성을 수용하고 체화하는데 가족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영화 ‘어느 가족’ 포스터 ⓒ네이버 에이블포토로 보기 영화 ‘어느 가족’ 포스터 ⓒ네이버
아들의 긴 머리를 너무도 한심스럽게 바라보며 눈물까지 흘리는 그 엄마는 아들이 창피하다는 그 말에 상처 입었을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할까. 오히려 내가 더 안타까워하다가 자연스레 영화 ‘어느 가족’이 오버랩 되었다.

요즘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조용히 흥행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타다 감독의 영화다. 영화 ‘어느 가족’도 그렇지만 고레에다 히로타다는 그동안 ‘바다마을 다이어리’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같은 영화로 주욱 가족의 의미를 물어왔다.

‘바다마을 다이어리’는 이복 자매들 간의 이야기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피와 유전자를 넘어선 진짜 가족의 의미를 물었다. 영화 ‘어느 가족’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 묻는 가족의 의미다.

이상하리만치 왜? 냐고 묻지 않는 영화... 이 영화에 대한 나의 한 줄 평은 그렇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가족에게 버려진 아이 쇼타, 가정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던 아이 유리,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집을 나와 할아버지의 전처였던 할머니와 함께 살며 유사 성행위 업소에서 일하는 아키, 그리고 이 가족의 엄마 역할을 하는 노부요와 아빠 오사무... 이렇게 다섯 가족이 각자의 상처를 안고 함께 사는데 그 상처에 대한 묘사는 아주 흐릿하고 여백이 많아서 관객은 짐작할 뿐 자세히 볼 수 없다.

상처로 연결된 이 가족들은 전남편에게 버림받았던 할머니의 아픔을, 가족에게 버려지고 학대받은 아이들의 아픔을 꼬치꼬치 묻고 묘사하지 않지만 가만히 품고 웃게 한다.

영화는 자세히 말하지 않지만 유사 성행위 업소에 다니는 아키와 서로의 상처를 나누는 일명 ‘4번 남자’를 통해 노부요와 오사무의 만남을 가늠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보이는 노부요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녀가 가진 상처를 관객은 충분히 아프게 공감할 수 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을 학대하던 전남편을 살해하고(아마 정당방위였을 것이다) 오사무와 함께 범죄를 감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사실조차도 관객은 그저 짐작할 뿐이다.

오사무의 아픔 역시 드러나지 않지만 버려진 아이 쇼타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여 준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어린 시절도 쇼타와 같았음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왜?... 너는 왜 그렇게 사는데...? 왜 그러는데...? 영화 속의 어느 누구도 서로를 향해 그렇게 묻지 않는다.

구구절절 상처에 대해 묻지 않고 일일이 파헤치지 않는다. 그저 덧나지 않게 품고 덮어서 넉넉히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서로를 돌보고 지켜볼 뿐이다.

어떻게든 상처는 기어이 남는 것이므로 그것이 아물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적절치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냥 무한히 보듬어 주는 것이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가끔 어떤 사람에게서 그의 가족을 짐작하게 될 때가 있다. 어떤 이의 무한 자존감의 뒷배에 가족이 있을 경우도 있고 또한 매사 기.승.전.열등감으로 귀결되는 어떤 이의 속수무책인 열등감의 뒷배에도 어김없이 가족이 있기도 하다.

특히 장애라는 특별한 상황이 가족과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얽힐 때 장애는 누군가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장애를 매 순간 자신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지독한 인생의 걸림돌로 여기고 그것 때문에 불행하다거나 부끄럽다고 여기는 사람에게서 나는 늘 너무나 헐겁고 무방비한 채로 연결된 그의 가족을 보곤 했다.

생각해 보라. 내 자식의 장애가 그리도 부끄럽고 남사스러워서 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자식을 골방에 밀어 넣었던 가족에게서 그가 장애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쌓아 왔을지를... 그는 늘 움츠려 있었고 아무것도 자신감 있게 나서지 못했고 늘 스스로를 믿지 못해 매순간 주춤거리곤 했다. 이것은 비단 그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

평생을 장애로 인해 아버지의 폭언과 폭행을 겪었던 어떤 이는 그런 아버지 대신 자신의 장애를 원망하며 살았다. 세상에 나가면 모든 이들이 자신의 장애를 아버지의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아서 움츠러들었다고 했다. 그런 이들에게 가족은 무엇이었을까.

영화 ‘어느 가족’ 중에서 ⓒ네이버 에이블포토로 보기 영화 ‘어느 가족’ 중에서 ⓒ네이버
영화 ‘어느 가족’에서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불꽃놀이 폭죽 소리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가족이 모여 다 함께 지붕 위 어딘가를 올려다 보지만 정작 그들에겐 불꽃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요란한 폭죽소리만 들려 올 뿐. 그런데도 이 가족은 모두 마치 화려한 불꽃이라도 보고 있는 양 행복한 함성을 지르며 폭죽소리만으로도 불꽃놀이를 만끽한다. 설령 아무것도 없어도 함께 있는 가족 그 자체만으로도 충만함을 누릴 수 있는 가족의 모습이 마치 커다란 환상 같았다.

너무 과하다 싶을 만큼 빵빵하게 질소 포장된 과자봉지처럼 가족이란 모름지기 그래야 하는 거라고 믿는다.

안에 든 과자가 수많은 유통단계를 거치며 부서지지 않도록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 가득히 채워진 질소처럼 가족도 무한한 지지와 사랑과 신뢰로 그렇게 서로를 빵빵하게 감싸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야 적어도 이 무시무시한 세상에서 부서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지 않겠는가.

“너 평생 이렇게 휠체어에서 살래? 그럼 엄마는 죽는 거야!” 한 다큐 프로그램에서 운동하다 척추를 다쳐 장애를 입은 한 청소년에게 운동을 강요하던 엄마의 협박이다.

그 엄마는 매일같이 무리한 재활훈련을 강요하며 아들이 훈련을 게을리할 때마다 이렇게 협박했다. 그리고는 한없이 슬픈 얼굴로 얼마나 간절히 아들이 일어나길 바라는지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장애 발생률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요즘 한 가정에서 장애가 발생할 때 의료적 치료 이외에 무엇이 더 제공되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되묻게 하던 장면이었다.

그 가족이 ‘장애’라는 또 다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장애를 이해해야 하는지 어쩌면 치료보다 그 가족을 도울 프로그램이 더 시급한 건 아닐까 생각했었다. 장애가 그저 ‘다름’의 한 방식이 되려면 사회보다 먼저 만나고 가장 많은 순간을 함께 하는 그 가족이 먼저 달라져야만 한다.

가족은 세상 끝에서 가장 먼저 붙잡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며 가장 안전한 질소포장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끝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도 시인 서정주의 시 한 구절처럼 우리의 어린 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켜 보이고 제일 오랜 종소리를 들려주는 존재가 제일 먼저 가족이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에겐 어쩌면 더더욱 그런 가족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장애인 가정의 다각적인 실태조사와 필요한 프로그램 지원대책은 어느 만큼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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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차미경 (myrodem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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