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자폐증과 치과라는 주제로 여러곳에서 인식 증진 교육이 제공된다고 한다. ⓒ이유니

자폐증을 가진 딸아이가 자라면서 우리 가족에게는 하나의 최대 난제가 생겼다. 바로 치과 가기, 물론 치과에 가는 걸 좋아하는 어른도 없겠지만, 아이들에게 치과는 더욱 공포의 장소이기 마련이다.

그래도 말이 통하고 상황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되는 초등학교 나이 정도가 되면 치과 진료를 조금 적응할 만도 한데 발달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들은 언어능력과 인지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상황에 대한 이해가 힘들고,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치과에서 진료를 받는 일은 그야말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발달장애 아이들 중에서 더군다나 자폐 아이들의 경우 치과는 더욱 극복하기 힘든 공포의 장소 그 자체이다. 자폐증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예민한 감각의 문제들 때문이다.

평소에도 플래시 불빛과 같은 밝은 광선을 무서워하고,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에도 기겁할 만큼 소음에 민감해서 거리에서 청소차 소리만 들려도 걸을 때 귀를 막고 도망가는 아이들에게 강한 불빛을 마주하고 누워서 온갖 기계 소리를 들어야 하는 치과는 들어서면서부터 도망가고 싶은 장소가 된다.

심지어 많은 자폐증 아이들은 입안에 감각 문제가 심해서 양치질을 하는 것도 힘들고 심한 경우에는 섭식 장애까지 있다고 하니 치과가 우리 부모들에게 얼마나 큰 난관이겠는가?

딸아이가 지금보다 어리고 힘이 세지 않았던 만 4-5살까지는 간단한 진료는 가능했었다. 물론 치과 의자에 앉는 것은 포기하고 내 무릎에 앉은 상태로 선생님이 간단히 보고 불소 도포 정도를 했었다.

그런데 7-8살이 되어가면서 아이의 힘은 점점 세지고 치아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충치가 생기고 영구치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 무릎에 앉혀서 살살 달래서 입안을 보는 정도로는 진료가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어떤 진료도 강압적으로 하지 않는 미국에서는 아이가 진료를 거부한다고 해서 의자에 강제로 묶어서 진료를 보거나 힘으로 누르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전신 마취나 수면 마취를 권하는데 겨우 충치 하나를 치료하기 위해 전신 마취를 해야 하는 상황이 왠지 마음에 걸려서 올해 초 한국에 다녀온 김에 아이를 치과에 데려갔다.

능숙한 선생님이 아이를 의자에 눕히자마자 꽁꽁 묶는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아이 입을 벌리고 15분 만에 진료 끝, “와 역시 이런 손 빠른 서비스는 한국이 좋아” 단순한 마음에 치료를 했다는 사실에 흡족해하며 돌아왔다.

그러나 천천히 아이를 설득해서 진료를 보는 미국과 달리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료를 하는 한국 시스템이 더 좋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이었는지 돌아온 지 단 두세달 만에 깨닫게 되었다.

미국에 돌아온지 두어달만에 치아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지난 주에 아이 손을 잡고 이곳에서 다시 치과에 갔다.

이미 한번 꽁꽁 묶여서 강제로 진료를 받아본 아이는 치과 입구부터 얼음이다. 의자에 앉지도 입을 벌리지도 않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다. 한국이었으면 아이를 강제로 안고했을 진료인데 간호사도 의사 선생님도 누구도 아이를 잡지 않는다.

결국 두명의 원장 선생님이 와서 아이의 입속 상태를 겨우 보고 내게 상담을 요청하였다. 아이의 치과 트라우마가 너무 심하다고 어떻게 충치를 치료하였는지 물으신다.

이 상태로 진료를 보기 위해서는 아이를 아무래도 전신 마취시켜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참고로 무슨 이유인지 미국에서는 수면 마취를 잘 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냥 전신 마취를 한다)

물론 부모인 내가 굳이 주장한다면 아이를 붙들고 진료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하신다. 그렇지만 그러면 지금처럼 이 트라우마는 점점 심해져서 아이가 정말 힘이 세지는 틴에이저가 되면 어차피 내게 남은 선택지는 전신 마취일 뿐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조금 색다른 제안을 하셨다. 마취를 하는 날짜를 당장이 아니라 앞으로 6개월 정도 후로 잡자고 하신다. 지금 아이에게 있는 치아 문제는 그렇게 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치과에 대한 신뢰를 가지는 것이라고 하신다. 아이가 치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포감을 극복하는 훈련을 한번 해보자고 하신다.

이른바 앞으로 매달 한 번씩 치과에 와서 놀다 가기 프로젝트, 의사 선생님이 방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로 혼자서(엄마와 함께) 치과 물건들을 하나씩 직접 만져보고 의자에도 앉아보고 이렇게 놀면서 시간을 보내보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치과에서 놀다 간 것만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좋아하는 선물을 주라고 하신다. 그다음엔 선생님과 함께 진료실에서 놀아보고, 그다음엔 의자에 앉아서 놀아보고, 입 벌리기 놀이도 해보고, 이렇게 매달 시간을 함께 보내고 그때마다 아이가 치과를 다녀옴으로서 작은 선물을 받게 된다면 치과라는 공간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쩌면 마취 수술 날짜 전에 아이가 협조해서 마취 없이 진료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제안이셨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었는데 이미 본인의 환자 중에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고 우리 아이보다 더 심하게 치과 진료를 거부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신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이렇게 매달 치과 놀러 오기 시간을 가지면서 이제 간단한 진료는 잘 받는다고 번거롭겠지만 시간을 내서 한 달에 한 번씩 꼭 와보라고 하신다.

사실 아이가 진료를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속에 한편으로는 “아 우리 아이는 이제 힘으로 누르거나 마취를 하거나 둘 중에 하나밖에 못하겠구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같이 치과를 견딜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오히려 아이를 다루느라 진땀을 뺐을 치과에서 부모인 내게 자폐증인 아이도 해낼 수 있다고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하니 나의 빠른 포기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미국은 이미 자폐나 발달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치과에서 진료를 잘 받을 수 있는지 많은 곳에서 치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인식 전환에 대한 교육을 하고 치과에서도 이런 고민과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미국에서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크게 감동을 받는 순간은 이들은 장애가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못한다는 불가능 상태라고 미리 정해두지 않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아무래도 못할 것 같은데…라고 말할 때마다 할 수 있다고 천천히 조금씩 해보자고 필자의 소심한 걱정을 부끄럽게 만든다.

앞으로 모든 일들에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한두 달에 해낼 일들을 몇 년이 걸려서 하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느린 발걸음을 인내하고 기다려주면서 가능으로 인도해주는 일, 부모가 그리고 이 사회가 우리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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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니 칼럼리스트 현재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 도시가 속한 베어 카운티의 지적발달장애인 부서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바다 수영과 써핑을 사랑하는 자폐증이 있는 딸과 한발 한발 서로의 세상을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바다 꼬마가 사람들의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게 인생의 목표이다. 이곳에서 체험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와, 바다 꼬마와의 서툴지만 매일이 배움과 감동인 여정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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