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스 포 오티즘' 행사의 상징. ⓒ이유니

2년 만에 딸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입국하였다. 한 달 정도 주어지는 꿈같은 휴가이다. 십여 년 타지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국 여행은 계획 하는 순간부터 설렘과 행복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자폐증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던 순간부터 공항과 비행기에서의 열몇 시간은 한국을 가기 위해 넘어야만 하는 큰 산과 같은 장애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모든 감각에 초 예민한 자폐성향을 가진 아이들에게 사람 많고 시끄럽고 불빛은 밝고, 끝없이 늘어선 줄에서 수십 분을 기다려야 하는 일들이 다반사인 공항과 비행기 여행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 내 한 자폐증 기관에 의하면 종종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과의 비행기 여행을 일찌감치 포기하곤 한다고 한다. 사람이 붐비는 공항에서 자지러지고 넘어가거나 불안 증세에 머리를 두들기는 아이들, 시큐리티에서 통과해야 하는 엑스레이가 겁나서 못 지나가는 아이들, 무엇보다 비행기 소음과 불빛을 못 견뎌야 할 많은 아이들 때문에 공항과 비행기 여행은 우리 부모들에게 불안과 공포의 관문이다.

몇 년 전, 이런 우리들의 마음을 읽어준 미국 내 발달 장애인들을 위한 가장 큰 비영리 단체인 디아크(The Arc)라는 기관에서 미국 교통보안국(TSA, Transportation Security Administration)과 함께 여러 지역 공항과 여러 항공사들의 후원으로 ‘윙스 포 오티즘’(Wings for Autism)이란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윙스 포 오티즘’이란 프로그램은 비행기 탑승을 실제와 똑같이 아이들이 미리 겪어 볼 수 있는 리허설 시간을 참석한 자폐증 아이들에게 제공해 주는 것이다. 공항에서 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서는 것부터, 짐을 보내고, 시큐리티를 통과하고, 게이트를 찾아서 비행기에 탑승하는 일련의 과정을 공항과 비행기 관계자들이 발 벗고 나서서 아이들이 미리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행사 날에는 ‘윙스 포 오티즘’ 옷을 입은 공항 직원, 항공사 직원들이 아이들을 맞이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모든 것을 설명하고 겁먹은 아이들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런 과정들을 이해하고 하나씩 통과할 수 있도록 속도를 맞춰준다.

미국 내 메이저 항공사인 유나이티드, 아메리칸 에어라인, 델타 등의 항공사 외에도 알라스카, 하와이의 경우엔 하와이안 에어라인 등 비행기 여행이 잦은 도시들을 주 거점으로 운행하는 거의 모든 항공사들이 행사를 후원하였고, 시큐리티 담당인 미국 교통보안국 직원들, 공항 관계자분들, 항공사 파일럿, 승무원들이 아이들을 도왔다. 항공사들은 이 날의 행사를 위해 실제 운항 중인 비행기를 반나절 대여해주었다.

몇 년간 전미 여러 도시에서 행사가 진행되면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비행기를 타는 법에 점점 더 많은 자폐증 아이들이 익숙해지는 동안 공항, 항공사 관계자, 그리고 행사를 구경하던 당시에 공항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로 이 행사를 통해 아이들과 자폐증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가는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고 고백하기 시작한 일이었다. 아이들을 준비시키는 행사가 역으로 공항과 비행기, 즉 환경과 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배워가는 기회가 되기 시작한 놀라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미국의 항공 서비스에서 장애인들이 얼마나 접근성을 가지냐에 대한 부분은 미국의 항공 접근성 법(Air Carrier Access Act)의 제정과 다양한 시민 단체들의 노력으로 물리적인 면들은 많이 개선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자폐증과 같은 발달 장애나 다른 정신 장애에 대해서 얼마나 공항과 항공사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는 미국에서도 아직 많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런 중에 자폐증 아이들을 위한 ‘윙스 포 오티즘’ 프로그램은 미국 사회에서 두 팔 벌려 환영받은 가장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디아크의 홈페이지에는 2018년도 행사 일정이 벌써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이들과 지난 몇 년간 이 행사를 같이 진행해오는 미국 교통보안국은 몇 년 전 이 행사의 홍보 영상을 만들었다. 영상의 마지막 부분, 미국 교통보안국 보스톤 지역 교육 담당자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비행기란 언제나 우리를 먼 곳으로 데려가는 멋진 장소여야 합니다. 모두가 그 기회를 누려야 하고, 누구도 공항에 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한국행 비행기 여행은 순탄하였고 나는 이제 아이와 공항에 가는 것이 더 이상 겁나지 않다. 우리 대한민국의 공항은, 한국의 국적기들은 이 아이들을 위해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평창올림픽을 향해 모여드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처음으로 발을 딛는 공간, 한국의 국제공항을 향해 문득 묻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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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니 칼럼리스트 현재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 도시가 속한 베어 카운티의 지적발달장애인 부서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바다 수영과 써핑을 사랑하는 자폐증이 있는 딸과 한발 한발 서로의 세상을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바다 꼬마가 사람들의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게 인생의 목표이다. 이곳에서 체험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와, 바다 꼬마와의 서툴지만 매일이 배움과 감동인 여정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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