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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손은 밥 먹는 손이 아닙니다

장애인식개선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1-16 12:36:45
필자의 첫째 아들인 여섯 살배기 시후에게 오른손은 왼손을 의미합니다. 첫째를 낳고 좋은 부모가 되어보겠단 일념으로 아들에게 조기교육을 시킨답시고 “시후야~ 오른손은 밥 먹는 손이야. 알았지?” 그렇게 ‘오른손 = 밥 먹는 손’이라는 공식을 어려서부터 가르쳤는데, 아~ 글쎄 이 녀석이 혼자 밥을 떠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니 왼손으로 퍼먹는 게 아니겠습니까? 헐~

며칠 전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데, 마주한 갈림길에서 “아빠~ 오른쪽으로 가요” 이럽니다. 엥? 뭔 소리여? 왼쪽으로 가야지라고 말하려다 아차 싶었습니다. 밥 먹는 손이 오른손이라 했으니, 이 녀석에겐 왼쪽이 곧 오른쪽입니다. 그러니 자기 입장에선 바른말을 한 것이지요.

불교계에 큰 어른이신 성철스님은 임종 전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아니, 평생을 수행하시면서 깨달은 진리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니요. (오른손이 왼손이라 말하고는 해맑게 웃는)우리 아들도 아는 것을 평생의 깨달음이라 말씀하시니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저기요 집사님, 하나님은 대체 어떤 분이세요?”
교회에 처음 나온 어떤 분이 궁금해서 오랫동안 다닌 사람에게 물었답니다.
“아~ 하나님이요? 하나님은요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세요.” 늘 교회에서 듣고 배운 대로 (습관적으로)자신 있게 대답해 주고는 구도자에게 큰 진리를 알려준 마냥 흥분했지만 정작 대답을 들은 사람은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고 하네요. 아버지께 받은 상처가 너~무 많은 사람이었거든요.

결혼생활이나 연애 중에 상대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옆집 남편(아내) 좀 본받아라.’ ‘내 친구 애인은 이런저런 이벤트를 해 준다는데’ 이러면 게임 끝입니다. 자존심이 상해 “그러면 그 사람이랑 살아라.” 이럽니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장애인에 대한 몇 가지 등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긍정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① 장애인 =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사람
② 장애인 =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
③ 장애인 = 비장애인들의 삶에 감동을 주는 사람
④ 장애인 합창단 = 천사들의 합창단 등등

압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하지만 선한 의도와 사려 깊은 배려가 도리어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에 걸림돌이 된다면 비록 그것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보편화된 표현들이라 할지라도 그 사용에 있어 반드시 재숙고의 과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표현들이 장애인 당사자나 그 가족들의 진솔한 고백일 때 우리는 그것을 통해 감동과 희망, 용기를 얻지만 그것이(당사자나 가족들의 정서적 공감대 없이)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평범한 이웃들을 날개 없는 천사나 감동제조기 혹은 신의 뜻을 전달하는 사신(使臣) 등 아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오류를 범할지도 모릅니다.

장애인복지의 패러다임이 재활에서 자립생활로 변화되면서 장애인의 사회적 역할 또한 환자, 클라이언트에서 소비자로 변하게 됩니다. 이에 많은 장애인복지 종사자들과 자립생활 운동가들이 ‘장애인=소비자’라는 등식을 전파하는 전도사가 되어 장애인들에게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강조하였지요.

그러나 장애인을 환자나 클라이언트, 특별한 존재 혹은 소비자로 여기게 하는 것이 인식개선의 목적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장애인들을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 동네 행님이나 동생 혹은 직장의 동료로 여기게 하자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인식개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립생활패러다임 이후 ‘지지/임파워먼트 패러다임’이 등장합니다만 골치가 아프니 여기서 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평범한 이웃으로 여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긴 글의 결론이라 말씀드리자니 대단히 송구스럽고 뭔가 명쾌한 해답을 기대하셨을 분들에겐 더없이 죄송합니다만, 근 20년 가까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 결코 멀리 있거나 거창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고백이 참 진리인 것 같습니다. 산을 산으로 봐야 즐거운 마음으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행을 즐기고 낙엽 밟는 기쁨을 누리지, 무슨 영험한 존재로 여긴다면 무섭고 부담스러워 산 근처에라도 가겠습니까? 물도 그렇습니다. 물을 물로 봐야 낚시도 즐기고 미역도 감고 냉수 마시고 속이라도 차리지 물에 무슨 신령한 기운이 있다고 믿으면 겁나서 물이라도 한잔 편하게 마시겠습니까?

아들에게 다시 가르쳐야겠습니다.
“시후야, 오른손은 밥 먹는 손이 아니었어. 미안해~”
은근 아들의 반응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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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제지훈 (sumgim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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