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5일 밀린 주문으로 분주한 스승의 날 아침.

커피생두 ‘핸드 픽(hand pick)’ 작업에 여념이 없을 즈음, 난데없이 작업실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이내 상환이가 쭈뼛쭈뼛 들어옵니다.

“상환아, 와?”

(쑥스러운 듯 심하게 말을 더듬거리며) “지지지지 지부장님, 이이 이걸로 티 팀장님들하고 바바 밥 사먹고 오세요.”

그러고는 책상에다 돈뭉치를 팽개치듯 던져버리고는 사라져버립니다.

이만 천 원, 이만 이천 원, 삼만 원, 삼만 오천 원, 사만 원.

40,000

상환이가 팽개치듯 던져버린 4만원. ⓒ제지훈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아~ 줄라면 스승의 날 전이나 후에 주지 굳이 스승의 날 아침에 돈다발을 주는 의도가 뭐지?’

‘혹시 상환이 저거 파파라치가? 이래 줘 놓고는 집에 가서 지부장님이 돈 받았다고 소문내서 보상금 타먹을라고 저러나?’

‘아~ 진짜 뭐지? 뭐지?’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집니다.

일단 혼자 덤터기를 써서는 안 되겠단 생각에 공범을 만들기로 합니다.

“팀장님들(이하 공범들), 모두 작업실로 모여주세요.”

(공범들을 향해) “상환이가 돈다발을 던져주고는 밥 사먹고 오라는 말만 남기고 튀었어요. 어쩌지요?”

자초지정을 듣던 두 공범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급기야 눈물을 훔쳐내기까지 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 시야도 이내 흐려집니다.

사실 돈다발을 받은 후 절대로 아닐 것이라 생각했던 한 가지가 있습니다. 자조모임 참가자들이 부모님의 당부가 아닌 스스로의 결정으로 수고하는 직원들을 위해 십시일반 모았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그것입니다.

솔직히 남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의 수고에 감사를 표할 수 있을 만치 성장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지요.

“상환아, 이거 누가 시킨 게 아니라 너희가 직접 모았나?”

“네, 우리 여섯 명이서 모았어요. 철희는 돈이 없어서 못 내고, 태은이는 빌려서 천원만 냈어요.”

낱낱이 고하는 상환이의 모습에서 진지함이 묻어납니다. 결국 저와 두 공범들은 이들의 정중한 요청을 받아들여 외식을 하였습니다.

대신 4만원은 깨끗한 봉투에 잘 넣어두었습니다. 협회에 꼭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증) 상환, 민정, 태연, 철희, 태은, 다운」 이렇게 새겨 넣으려고요.

이전에 ‘피그말리온 효과’에 대해 쓴 적이 있습니다. 이는 긍정의 관점을 상호작용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일방적인 관점입니다. 피그말리온은 석상(여인상)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았거든요. 일방적으로 좋아한 것이지요. 짝사랑입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저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일방적인 관점이라 쓰고는 상호작용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 했으면, 이쯤 되면, 이 만큼 참았으면, 도대체 얼마나 더, 심하다 심해.

두 명의 공범들과 함께 외식을 하면서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이런 생각들을 조용히 내려놓자고 하였습니다.

사회전반에 ‘성과주의’ 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영향을 감지하면서도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의 성과를 창출하고픈 목마름은 이미 사회복지실천의 현장에서도 보편적인 기류로 자리하고 있어 보입니다.

서비스 제공 00회, 서비스 대상자 00명, 연 이용인원 00명, 목표 달성 00%.

평가 시 이 정도 수치화된 자료를 제시할 수 있어야 성공한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습니다.

공공부문 혹은 공익재단의 사회복지 공모사업 대상자 선정 기준은 어떻습니까? 반드시 기입해야하거나 가산점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 바로 ‘전년도 사업실적’입니다.

성과주의를 비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다만, 장애인복지 실천현장이 수치화된 실적이나 성과 등으로 사업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하기에는 그 보다 훨씬 더 소중한 사람들이 그 안에 있음을 간과할 수 있기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지요.

이런 참신한 공모사업 대상자 모집공고는 어떨까요?

‘반드시 00명 이상 장애인의 삶을 변하시킬 자신이 있는 단체’

‘포기는 배추나 셀 때 쓰고 끝까지 신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단체’

이런 프로그램 평가도 멋지지 않을까요?

서비스 제공으로 ‘생각이 변화된 사람 0명’, ‘삶의 자세가 변한 사람 0명’, ‘변화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 0명’ 등.

성과주의의 성과지표가 서비스 제공이 아닌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대하는 만큼의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아도 의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믿고 사랑하면서 투입된 재정이나 서비스 등은 잊어버리고 기다려준다면 어쩌면 상상하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결과와 마주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와 공범들이 산 증인들입니다.

2017년의 스승의 날은 큰 감동과 함께 자칫 투입(input) 대비 산출량(output)으로 프로그램의 성공여부를 단정 지을 뻔 했던 필자의 우매함을 직시하게 해 준 ‘발달장애인 교육생들’이 진정한 저의 스승이 된 날입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제지훈 칼럼리스트 (사)경남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거제시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근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후배 복지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장애인복지의 길에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오늘도 행복하게 까불짝대며 잰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발달)장애인들의 사회통합으로의 여정에 함께하며 진솔하게 일상을 그려나가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