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의 지체장애인들과 함께 한 제주여행. ⓒ제지훈

우리 아이들은 아내보다 제가 해 준 음식을 조금 더 좋아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내는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하고 저는 입맛을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아내의 음식엔 몸에 좋은 재료들로 가득합니다. TV에서 양파가 건강에 좋다는 소릴 들은 이후로 볶음밥에다 양파를 넣더니 이제는 된장찌개, 김치찌개 심지어 각종 국에도 양파가 들어갑니다. 달짝지근합니다. TV를 없애든지 해야지…….

반면 제 음식엔 철학이 없습니다. 양파도 없습니다. 그러나 맛이 있습니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학문적 연구와 경험적 산물인 MSG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 집 아이들이 누구의 음식을 더 좋아하겠습니까? 아빠의 음식은 군말 없이 먹습니다. 가끔 ‘엄지 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면 아이들의 반응에 몇 가지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큰아들(6세): “엄마, 배는 안 아픈데 똥이 마려워요” -맛이 없단 소립니다.

둘째딸(4세): “엄마, 어~ 밥 먹고~ 어린이집 가요? 지금 가까요?” -먹기 싫단 소립니다.

막내(2세): “에~ 에베베베~ 푸~ 푸푸~” -숟가락 치우란 소립니다.

그럼에도 아내와 저의 요리 횟수는 7:3 정도입니다. 아내가 7번을 요리하면 제가 3번 정도 합니다. 입맛도 좋지만 영양이 더 중하기 때문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해 신체의 건강을 지켜주고, 가끔 달짝지근함에 멘탈(mental)의 붕괴가 올 때 즈음, 입맛을 돋워 정신적 건강도 함께 챙겨주는 것이지요.

음식에 있어 영양과 입맛, 이 두 가지는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것 하나를 배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한 일본 규슈여행. ⓒ제지훈

장애인복지에도 두 축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자립과 보호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두 가지는 비중의 차이는 있으나 어느 것 하나를 배제하거나 혹은 어느 한 쪽에 절대적 가치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1997년, 당시만 해도 ‘장애인복지=시설보호’라는 지배적 관념이 자리하고 있을 때 ‘서울 국제장애인학술대회’에서 나카니시(Nakanishi)라는 일본의 자립생활 운동가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자립생활’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니? 중증의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다고?’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동시에 주체 못할 설렘이었습니다. 도무지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이대로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이듬해 일본의 ‘휴먼케어협회’와 양국을 오가는 3년간의 열애 끝에 자립생활 운동은 피노키오자립생활센터와 우리이웃자립생활센터를 필두로 초원의 불길같이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졌고, 이는 많은 시설거주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서서히 장애인복지는 자립생활을 통해 완성된다는 사회적 통념이 지배력을 얻어갈 때 즈음, 자기결정에 기반을 둔 완전한 자립이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상대적 자립’이라는 용어가 보호의 자리를 치환하게 됩니다.

즉, 발달장애인들에게 시설 혹은 이전의 생활보다 더 많은 선택과 결정의 기회를 제공해 사회통합과 독립적인 생활을 보장해 주자는 것인데, 이는 최대한 가족 같은 분위기와 최소한의 시설 형태를 지닌 그룹홈이나 공동생활가정의 모습을 띠게 됩니다.

그러나 상대적 자립이 보호의 자리를 완전히 치환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는 이미 ‘진보적 보수주의자’가 주는 무정체성과 모호함의 오류를 선행학습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러니 상대적 자립을 자립에 무게감을 두어 읽기보다 ‘보호가 동반된’ 자립으로 읽어야 그 정체성이 흐려지지 않습니다.

원론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전거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인이 있어야 합니다. 체인이 없는데 죽을 똥 살 똥 모르고 페달을 굴려봐야 그것은 ‘삽질’이 됩니다. 체인을 걸어두는 곳을 ‘체인링’이라 부르는데요, 체인링은 반드시 앞뒤로 하나씩 있어야 체인을 걸어 고정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장애인복지의 두 축이 자립과 보호라 하였습니다. 장애인복지가 체인이라면 그것을 단단히 걸어 고정시킬 수 있는 두 체인링이 바로 자립과 보호인 셈이지요. 자립 쪽이 보호보다 조금 더 커도 두 축이 함께 있다면 자전거가 나아가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둘 중 하나만 있을 때가 문제지요.

진취적인 자립생활 운동가들은 필자의 글에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자립의 꿈을 안고 탈시설 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보려 발버둥 쳤던 시퍼런 청춘의 싸늘한 주검이 결국 한 줌의 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필자에겐 더 냉소적입니다.

그러나 비록 장애인복지의 두 축이 자립과 보호라 할지라도, 보호의 방향과 모습은 분명히 달라져야 합니다. 천편일률적인 생활방식을 찍어내는 보호가 아닌, 자립을 향한 지지와 응원 그리고 자립으로의 여정에 베이스캠프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자립과 보호가 대치되지 않고 장애인복지라는 체인을 견고히 고정해 힘차게 전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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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훈 칼럼리스트 (사)경남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거제시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근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후배 복지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장애인복지의 길에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오늘도 행복하게 까불짝대며 잰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발달)장애인들의 사회통합으로의 여정에 함께하며 진솔하게 일상을 그려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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