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밤 12시, 김포공항역에서 한 시각장애인이 인천공항 행 공항철도 2704열차에 올라탔다. 마침 자리가 비어 있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바지에 무엇인가 끈끈한 액체가 느껴졌다. 손으로 만져보니 누군가 의자에 가래침을 뱉어 놓았는데, 그 양이 상당한 것이었다.

요즘 메르스로 온 세상이 난리인데, 누군지 모르지만 의자에 가래를 묻혀놓고 사라졌으니 천인공로할 일이었다. 승객들은 모두 그 자리를 피해 저만치 떨어져 있었으나 시각장애인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모두들 시각장애인이 열차에서 내리려 하자 자신의 곁을 지나가지는 않을까 피하기 급급했다.

시각장애인도 화장실로 급히 가서 손을 10분 동안이나 씻었으나, 온갖 세균이 피부를 뚫고 침투한 듯 손등이 따끔따끔한 것 같고, 바지가 너무나 찝찝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이유로 메르스에 걸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은 것에 화가 났다.

최근 전국의 장애인복지관을 방문해 보면 입구에서 체온계로 방문자 체온을 재고, 이름과 함께 체온을 기록에 남겨 둔다. 그리고 손세척제로 손을 씻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장애인이 전국에서 많이 모이는 이룸센터에서는 이런 광경을 볼 수가 없다. 다만 활동보조인 교육을 하고 있는 2층 회의실에서는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이동을 지원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의 차량은 시각장애인만이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제외한 모든 장애인은 이 차량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니 최근 메르스 감염 병동이 투석 병동이었는데, 투석을 하는 장애인들도 이 차량을 이용한다.

감염이 염려되자 시각장애인들이 이 차량의 이용을 꺼리기 시작했다. 메르스로 인하여 안마업에 종사하는 시각장애인들이 고객이 없어 수입이 줄어 차량을 이용한 이동을 자제하기도 하고, 이 차량이 감염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용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운전자들은 기본급여 외에 장애인들에게서 받은 이용료가 그날의 수입인데, 점심값을 내고 나면 집에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울상이다.

서울시에서는 위험수당도 아니고, 격려금이라고 하여 이러한 운전자들에게 조금의 수당을 지급하였다. 시각장애인 이동차량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서울지부에서는 투석환자 중 메르스 감염 우려자로서 격리된 자의 명단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시에서는 개인정보를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콜센터에서는 투석환자 중 누가 어느 차량을 이용하였는지 정보를 시각장애인에게 제공하여 지나친 기피현상을 불식시켜 보려고 하였으나 서울시의 협조를 얻지 못하자 시각장애인은 모든 차량의 이용을 기피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쪽을 선택했다. 서울시에서는 모든 차량을 방역하도록 하였으며, 자립기반과 과장이 직접 소독 호스를 들고 차량을 일일이 소독하였다.

173번째 메르스 확진자는 타 언론에서 요양보호사로 소개되고 있으나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시각장애인이 다리를 다쳐 응급실에 가게 되자 동행한 자였다. 병원에서는 동행자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격리자 명단에서 누락하는 바람에 173번 확진자는 5일 감염된 후 10일 발열을 하였지만, 18일까지 강동구 일대를 활보하였다.

병원을 4곳, 한의원을 1곳, 약국을 4곳을 다녔으며, 강동성심병원에서 접촉한 사람만도 2135명이나 되어 이를 모두 격리하여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분은 70세 여성으로 CCTV상 나타난 접촉자만이 2135명이고, 장애인활동보조 서비스 활동을 비롯해 활동보조 중계기관 등 무수히 많은 곳을 다녔을 것이다. 자신이 메르스 감염된 것을 알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접촉되었을 것이다.

당장 52세 시각장애인 여성(고덕동, 시각장애1급)은 직접 이 사람에게서 활동보조를 받고 있던 자로 격리 수용되었다. 이제 활동보조서비스도 메르스로 인하여 안심하고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시각장애인이 만난 사람들과 같이 2차적 접촉을 한 사람까지 계산하면 7500명이 격리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 중에는 장애인과 종사자가 다수가 포함되어 있다. 장애인은 면역성이 약할 가능성이 높아 엄청난 피해가 있지는 않나 걱정된다.

173번의 확진자는 확진 시기가 늦어 입원 당시 폐렴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3일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럼 활동보조로 인한 감염이면 산재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또한 상당시간 많은 사람을 접촉하여 슈퍼전파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이제 장애인들도 서로 만나는 행사를 취소하고 집에서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장애인 특별운송차량 이용도 위험한 것인지 등 온갖 고민이 생겼다. 그리고 활동보조인이 메르스 전파자가 되었으므로 장애인들이 서비스를 기피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요양보호사나 간병인 직업을 겸한 활동보조인은 기피해야 하니 명단을 공개해 달라고까지 하고 있다.

173번 확진자는 76번이 입원한 병원의 응급실에 치료를 받기 위해 방문한 시각장애인의 동행자였지만 병원 기록에는 활동보조인은 기록에 남지 않으므로 격리자 명단 작성에서 누락되었다. 강동경희대병원에서는 치료자 명단이 아니라 방문자 신고를 하여 명단을 작성했어야 하지 않았나 한다.

그러나 메르스가 대부분 병원에서 감염이 이루어졌는데, 173번은 약국을 두루 다녔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병원만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약국도 기피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173번의 이동 경로를 보면, 6월 5일 강동경희대병원, 목차수내과, 종로광명약국, 종로광명약국, 일선당한의원, 본 이비인후과, 스마일 약국, 강동 신경외과, 강동신경외과, 튼튼약국, 위드팜 천사약국, 강동성심병원 등이다.

서울시장은 한 명의 의사가 1500명이나 접촉하도록 감독을 소홀히 한 복지부를 믿지 못하겠다고 심야 기자회견까지 했는데, 서울시가 적극 나선 지금 이것은 또 무엇인가 싶다. 스스로 병원에 간 것을 속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할 것인가? 투석환자의 메르스로 인한 사망사건은 활동보조인을 통해 장애인에게 전파될 시나리오는 충분히 상상했어야 한다.

메르스 1번은 중동의 낙타농장에 간 것을 말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낙타농장을 해 보고자 견학을 갔는데, 두바이만 경유했다고 했다. 이렇게 스스로 속이고 말하지 않으면 통제가 불가능한 시스템에서 이 사람만 정확히 파악했더라도 한국에서의 메르스 대란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계속적으로 구멍 난 것을 증명해 보이는 방역 시스템이 모두 이 사람의 잘못으로 전가되어서는 안 된다.

76번 확진자가 강동경희대병원 인공신장실(투석실)에서 슈퍼전파자가 된 후 사망하였고, 이것이 활동보조인을 통해 다시 장애인에게로 전파되는 것을 막을 비상대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나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메르스 특단의 조치가 요구된다.

173번의 사망자가 장애인을 위한 활동보조인으로 살아온 것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하지만 슈퍼전파자로 뉴스에 그토록 보도되었고, 자신도 폐렴으로까지 악화될 동안 전혀 신고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메르스가 장애인들을 매개체로 다시 전국으로 확산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현재의 장애인들의 경제적 손실이나 사회참여의 기피 등 엄청난 손실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복지부와 서울시는 장애인계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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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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