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이승범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손병걸(남, 1967년생, 시각장애) 시인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않고 살아왔다

시력을 잃어버린 순간까지

두 눈동자를 굴렸다

눈동자는 쪼그라들어 가고

부딪히고 넘어질 때마다

두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는데

짓무른 손가락 끝에서

뜬금 없이 열리는 눈동자

그즈음 나는

확인하지 않아도 믿는

여유를 배웠다

스치기만 하여도 환해지는

열 개의 눈동자를 떴다.

손병걸 시인은?= 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부산일보 신춘문예(2005), 구상솟대문학상 대상(2006),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우수상(2008),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국무총리상(2011) 중봉조헌문학상 대상(2013) 외.

시집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푸른 신호등>.

시평: 이것이 바로 장애인문학이다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시 제목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를 보고 시각장애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심미안을 가졌다거나 감시를 받고 있다거나 아니면 미래의 인간상 등 추상적인 해석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시를 한 연 한 연 읽어내려가면서 중도에 실명을 한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에 적응하며 눈 뜬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신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증거를 들이대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시력을 잃게 되었을 때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사회에서 살 길이 막막하였을 것이다. 무엇이 진짜인지 찾기 위하여 이러 저러 눈동자를 굴리며 살다가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지자 더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눈동자는 쪼그라들어갔다.

앞을 볼 수 없게 된 시인은 볼 수 있었을 때는 잘도 피해가던 조그마한 장벽에도 번번이 부딪혀 넘어졌다. 시인은 그럴 때마다 두 손을 벌려 바닥을 더듬었다. 얼마나 많이 더듬었던지 손가락이 짓물렀는데 어느날 시인은 그 손가락 끝에서 새로운 빛이 느껴졌다. 드디어 손끝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뜬금없이 열리는 눈동자’라고 표현하였다. 사람들은 중도에 장애를 갖게 되면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죽을 생각만 하게 되지만 얼마 지나면 적응해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살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시인은 장애 때문에 잃은 것보다는 장애 때문에 얻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바로 확인하지 않아도 믿는 여유가 생긴 것을 고백하였다. 시인은 두 눈을 잃은 것이 아니라 열 개의 눈동자를 얻은 것이다.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영문)

I’ve Got Ten Eyes

Son Byeong-geol

I lived refusing to believe

anything I had not seen for myself.

I rolled my two eyes around

until the moment I lost my sight.

After my eyes shriveled up

every time I bumped into things and fell over

I groped at the floor

with my two hands

and at the tips of my blistered fingers

eyes opened out of nowhere.

Around that time

I learned what freedom it is

to believe without having to check.

Ten eyes have opened

that light up at a touch.

Mr. Son Byeong-geol. Born 1967. Visual impairment.

Ku Sang Sosdae Literature Award - recipient (2006)

Korea Disabled People’s Literature Award - grand prize (2008)

Korea Disabled People’s Cultural Arts Award - Prime Minister’s prize (2011)

Jungbon Joheon Literature Award - recipient (2013)

Poetry collections: I’ve Got Ten Eyes; Green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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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문학 칼럼리스트
1991년 봄, 장애문인의 창작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창간한 후 현재까지 단 한 번의 결간 없이 통권 96호(2014년 겨울호) 까지 발간하며 장애인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솟대문학'의 중단 없는 간행은 장애문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며, 1991년부터 매년 솟대문학상 시상으로 역량 있는 장애문인을 배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솟대문학' 통권 100호 발간을 위해 현재 “100호 프로젝트”로 풍성한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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