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음에도 사막 마라톤에 참가할 건가?”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싶어요. 관장님은요?”

“사막,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이구만. 지금은 사막이 지옥 같지만 또 모르지. 시간이 지나면 사막이 그리울지도.”

“관장님, 저기 앞쪽에 지프가 한 대 오고 있어요.”

인백 씨와 내 앞에 와서 멈춘 지프에는 진행요원들이 타고 있었다.

“미스터 케이티, 컨디션은 괜찮은가?”

“컨디션 제로. 시원한 얼음물이나 있으면 좀 줘.”

“미스터 케이티, 여긴 사하라야. 얼음물은 집에 가서 냉장고 열고 마셔. 대신 뜨거운 홍차를 대접할까?”

“카타리나도 농담을 잘 하는군. 어디 뜨거운 홍차 맛 좀 볼까?”

“그동안 내가 농담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미스터 케이티가 반응이 없었던 거지. 케이티, 조심해서 받아. 홍차가 뜨거우니까.”

카타리나가 내 품에다 물통을 던졌다. 엉겁결에 받고 보니 물통의 표면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차가웠다.

“미스터 케이티한테 주려고 특별히 준비해서 가져왔어. 미스터 케이티, 끝까지 완주해야 해. 이번 레이스에서 당신은 특별한 존재야. 모든 사람들 마음 속에 있는 불가능이라는 벽을 허물어 주는 특별한 존재야.”

나는 카타리나가 건네준 물병을 끌어안고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카타리나가 지프를 몰고 떠났다. 카타리나가 말한 특별한 존재라는 말이 내 마음속으로 묵직한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실명을 한 후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남들이 꺼리는 모험에 도전한 것은 아니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불능이라는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는 불가능이라는 벽을 허물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터이다.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의 아름다움, 이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서는 내 정신의 가닥이 한 올이라도 남아 있는 한 이 레이스를 포기하지 않으리라.

“이번 레이스는 관장님 개인의 영예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자, 캠프를 향해서 달립시다."

인백 씨의 배낭에 연결된 생명줄이 나를 힘차게 당겼다.

우리는 주먹만한 잔돌이 널려 있는 평원을 달렸다. 오늘 레이스를 마치면 절반 가까이를 주파하는 셈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카이로에 도착해서 장비검사와 신체검사를 거쳐 레이스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나는 어떤 물결에 휩쓸려온 것만 같다. 그게 벌써 절반이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흘 동안 겪었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한의 바닥을 기어 온 것같다. 그러나 고통은 지나면 소멸된다. 다만 고통스러웠던 상황만 기억 될 뿐. 그러나 고통을 이겨낸 인내의 결실은 빛나게 마련이다.

“관장님, 앞에 모래구릉 지대가 있는데 카타리나의 애정이 녹아 있는 물 좀 마시고 가죠.”

카타리나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 온몸의 세포가 촉촉이 젖어들며 새롭게 소생하는 것 같다.

“관장님, 카타리나가 관장님에게 갖는 감정이 특별한 것 같아요. 카타리나는 빼어난 금발 미인이거든요. 관장님 역시 한 인물 하잖아요. 사하라의 로맨스, 괜찮은 타이틀인데요.”

“인백 씨, 내 눈에는 이 세상 모든 여성이 클레오파트라 같은 미인이야. 참, 이 나라가 클레오파트라의 왕국이었지? 내가 클레오파트라와 로맨스를 꽃피웠던 시저나 안토니우스가 아니잖아. 사하라의 로맨스! 하하하…. 그 발상 자체가 허망한 신기루야. 어서 가자고.”

모래구릉을 올라가는 동안 카타리나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나는 애써 고개를 흔들어 카타리나의 모습을 지웠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불가능이라는 벽을 허물어주는 존재라는 격려의 말을 되새기며 모래 속에 묻힌 발목을 빼내어 구릉을 올라갔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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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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