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에 도착한 송경태 씨 일행. ⓒkbs 방송 캡처

오늘 하루 달린 시간으로 짐작해 보면 캠프가 나타나도 벌써 나타났어야 했다. 지금 현재 오늘 달린 시간은 열두 시간 오 분이 되었다. 오늘의 주행 코스가 42.2㎞이니 걷기만 해도 시간당 4㎞는 주파했을 것이다.

이곳의 자연 환경이 아무리 혹독해도 우리는 나름대로 강도 높은 훈련을 거친 프로들이다. 그런데 아직도 캠프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주로를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닌지?

“인백 씨, 이상하지 않아? 시간으로 봐서는 캠프가 벌써 나타나야 하지 않아?”

“주최 측에서 발표한 거리는 GPS거리, 즉 직선거리거든요. 우리의 주로는 GPS거리보다 1.3배가 더 길 겁니다.”

나는 인백 씨의 설명을 들으며 속으로 ‘달리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 달려야지’ 하고 되뇌이며 걸음을 옮겼다. 인백씨와 나의 헉헉대는 숨소리와 발걸음 소리만 들릴 뿐 어둠과 정적뿐이다. 오늘도 인백씨와 나는 꼴찌를 맡아놓은 모양이다. 나야 애당초 등수에는 관심조차 없었으니 그렇더라도 인백씨에게 미안하다.

“인백 씨, 미안해. 오늘도 나 때문에 꼴찌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관장님, 그런 말씀 마세요. 애당초 관장님과 레이스 파트너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등 수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리고 혼자 레이스를 한다 해도 내 체력으로 상위 그룹에 들 자신도 없고요. 지금까지 관장님과 함께 레이스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많은 힘도 얻고 있어요.”

인백 씨의 말이 고마웠다. 고맙다는 생각이 내게 힘을 보태고 있는 것 같았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몸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나는 니체의 말을 곱씹으며 걸음을 옮겼다.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이다. 앞에는 언덕도 있고 냇물도 있고 진흙 밭도 있다. 먼 바다로 항해하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 조용히 갈 수는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관장님 캠프의 불빛이 보입니다.”

나는 인백 씨가 캠프의 불빛이 보인다는 말을 하는 순간, 아내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실명의 암흑에서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새가 되기로 결심을 한 후 사촌 이모가 운영하는 백화점의 의류 매장에 갔을 때였다. 이모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아가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마음 속으로 한 줄기 빛이 비추고 있었다. 그 빛은 사랑으로 환치되어 석 달 만에 결혼을 했다. 운명이었다.

지금 내가 캠프의 불빛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것 또한 운명이다. 저 캠프에는 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들은 내 마음에 비춰오는 빛이다. 나는 지금 그 빛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불볕을 등에 지고 험한 사막을 달려오는 눈 먼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들 민이가 겪고 있을 마음의 고통이 내가 겪고 있는 육체의 고통 못지않으리라. 내가 캠프에 도착해서 아들 민이의 손을 잡는 순간 나도 민이도 고통을 털어버릴 수 있으리라.

캠프에 들어설 때 ‘아버지’ 하고 민이가 부르는 소리는 내 마음속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었다.

오늘 42.2㎞를 주파한 나의 기록은 13시간 18분 59초였다.<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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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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