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 “정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토요일 오후 2시 30분)가 4월 5일 12강을 끝으로 모두 마감되었다.

이 강좌는 과학철학을 이해하고 대중들이 알고 있는 상식에서 벗어나 과학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볼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원래 철학과 과학은 동시에 출발하였다고 그리스 철학자 ‘밀레토스의 탈레스’는 말했다. 우리는 흔히 철학은 존재란 무엇이며, 인간이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의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이며, 나름의 가치관을 철학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과학은 객관적이고 불변하며 물질적인 원리이며 진리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철학의 논증법에 의하여 체계화되었으니 철학의 영향으로 발전했으며, 철학을 포함한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의 발전의 산물인 검증방법을 이론으로 증명해 왔으므로 오히려 사회과학이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포스터모더니즘의 영향과 다원론, 탈형이상학에 의한 재구조화의 페러다임에 의해 방법론적 이론들은 오히려 사회과학이 자연과학의 반성을 야기시키고 있다.

포퍼는 형이상학적, 현상학적 결정론, 귀납적 증명을 반대하였다. 귀납적 방법이라면 예외가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되며 모두가 질서 있게 이론에 적합하다는 모든 사례를 수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의 최상위 개념으로 패러다임이 있으며 패러다임은 이론을 지배한다. 과학은 분과적이며, 가설적이고, 객관적이나 철학은 주관을 포함하고 전체적이며 근원적이고 직관적이다. 그리고 철학은 개념ㆍ명제ㆍ법칙ㆍ이론ㆍ연역ㆍ귀납ㆍ가설ㆍ검증 등의 근원적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과학은 법칙성은 무엇인가를 따진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과학은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 과학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산물이 객관적일 뿐이다.

토머스 쿤은 정상과학이란 만들어진 패러다임의 틀에 자연을 집어넣는 것으로 인간과 환경에 위기와 혁명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포퍼의 다원주의 이론은 진리는 하나라는 믿음이 주는 종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장하석교수는 소개하면서 왜 물은 100도에서 끊는 것이 맞는가? 왜 산소는 O2인가 질문을 던진다. 수치나 언어 기호는 인간이 만든 것이지, 발견한 것이 아니고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과학에는 정답이 사실 없다.

1강 과학이란 무엇인가, 2강 지식의 한계, 3강 자연의 수량화, 4강 과학혁명, 5강 과학적 진리, 6강 과학의 진보, 7강 산소와 플로지스톤, 8강 물은 H2O인가, 9강 물은 항상 100도에서 끓는가, 10강 집에서 하는 전기과학, 11강 과학의 창조, 12강 다원주의 과학 등의 제목만 봐도 어느 정도 과학 철학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장하석 교수는 국내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 유학의 길에 올라 런던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에서 20년간 교수로 지냈으며, 박사학위는 스템포드 대학에서 ‘양자물리학의 측정과 비통일성’이라는 논문으로 받았다. 28세에 교수가 되었으며 2006년에는 과학철학 분야의 최고 권위인 러커토시상을 방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라브아지에가 발견했다는 산소는 원래 종전 플로지스톤의 이론을 연구한 과학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며, 과학사는 승자에 의한 관점에서 기록된 것이라는 지적도 해 주었다.

특히 11강은 은유와 스킬에 대한 강의였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제럴드 홀튼이 언급한 은유는 정확하게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인간의 언어 자체가 은유라고 하였다.

‘성적이 올라간다’에서의 ‘올라간다’는 ‘산을 올라간다’에서의 ‘올라간다’는 의미를 차용한 은유라는 것이다. 무엇인가 설명을 할 수 없어서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고, 전달력도 있다.

그래서 제럴드 홀튼은 은유는 미지로 가는 유일한 다리라고 말한다. 과학은 직관에 의해 발견되고 은유에 의해 설명되며, 암묵적 솜씨(스킬)에 의해 창조된다. 여기에 가장 창조적인 것은 창조를 필요로 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의심의 유예’ 이론으로 유명한 하버드대 물리학 교수는 사고실험은 창조를 낳으며, 암묵적 솜씨가 창조를 돕는다고 하였다.

아인슈타인이 핵실험을 해서 이론을 만든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서 사고실험을 무수히 하여 만든 것이라는 예도 든다. 사실 과학에서 수량화하는 것조차도 인간이 만든 은유의 하나이다.

그리고 12강에서는 과학은 혁명을 이루며 과학발전을 위해 필요를 느끼는 상황을 만들어 주어야 하며, 창조작업을 하는 자들이 크게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고 장하석 교수는 결론짓는다.

전체 강의는 매우 훌륭하지만 나는 두 가지 유감을 가지게 된다. 하나는 솜씨에 대한 설명이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이론적으로는 넘어지려는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라고 지식을 배울 수 있으나 그 지식을 머리로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탈 수는 없다.

언어 역시 단어 하나하나 단어를 생각하며 말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냥 듣고 이해한다. 여기까지 예는 문제가 없는데, 다음으로 시각장애인을 예로 들었다.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짚으면 남의 발등에 지팡이가 닿았는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솜씨로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귀가 더 밝고 촉감도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물을 보지 못하는 대신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시각장애가 청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촉각 역시 더 발달하지 않는다. 장하석 교수의 말처럼 숙련이 되어 아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지팡이로 시각장애인만은 특별히 다 아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럴 것이라는 것은 과학자의 태도와 거리가 있다.

내가 30년 전에 대구대학교 점자도서관에서 점자교과서 출판일을 할 때에 휴일에 대학 총장님의 손님이나 학교 발전기금 기증자가 자주 왔었다.

그 때면 나는 직장으로 달려가 대기하고 있다가 손님이 오면 일을 하는 모습을 보이며 학교 투어에서 학교의 복지사업의 홍보업무를 해야 했다. 한 상사는 손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촉각이 발달되어 100분의 1센티미터도 만져보고 구분합니다.” 진정 이것은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손님들은 감탄사를 발한다.

물론 지팡이의 솜씨 사례는 장 교수의 예가 아니라 홀튼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시각장애인은 지팡이 사용법을 익히게 되는데, 자기 몸과 사물과 부딪히지 않도록 보호하는 방법, 마음 속의 지도를 그려 방향을 잡는 방법, 실내에서의 보행과 실외에서의 보행 방법과 지팡이의 터티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보행은 현재의 위치를 인식하고 목적지를 단계별로 나누어서 목표로 잡고, 이동하면서 환경을 파악하기 위해 단서와 표식을 활용한다.

그러나 그 단서와 표식은 너무나 한계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이는 익숙화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보행기술을 과학자들은 솜씨를 설명하는 자료로 사용하면서 오해와 편견을 만들고 있다. 보행은 암묵적 스킬이 아니다.

다음으로 유감은 시각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봉사라고 말하였다.

장 교수가 어린 시절 외국에 나갔고, 무심결에 사용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EBS 피디나 작가는 이러한 장애인 인식이 전혀 없어 장애인단체가 지속적으로 시정을 요구함에도 끈질기게 봉사라고 용어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방조하고 있다.

방송 관련자와 장 교수가 장애인에 대하여는 스킬이 전혀 없는 듯하다. 그것이 교육방송이니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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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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