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근처에서 만나는 불청객 볼라드. 그들은 언제나 점자 유도불럭 위에 서 있다. 그것도 정 중앙에. 깜짝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 다리를 아프게 때리기도 한다. 날이 춥거나 얇은 옷을 입은 여름에 볼라드에게 얻어맞으면 눈물이 찔끔 나고 살이 벗겨지는 상처를 입게 된다. 그 순간에는 모두가 얄밉고 원망스럽다. 아파도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교통 약자들의 편의 증진을 위해 인도와 차도의 바닥 평면을 횡단보도 진입 지점에서 균일하게 맞추어서 원만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로 구조를 갖춘 일은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차량들이 그 길을 이용해서 인도에 불법 주차하는 일은 결코 잘했다 할 수 없다.

그보다 더 잘못된 일은 인도로 무단 진입하는 차량을 막는 수단으로 볼라드를 점자 유도불럭 중앙에 세워 시각장애인들을 다치게 하는 경우라고 크게 말하고 싶다.

"사나이 울리는 못생긴 볼라드!"

볼라드와 충돌해서 멍이 든 내 다리. ⓒ유석영

별거 아니라고 그냥 지나쳐 버릴 일은 아니다. 가만히 보니 시각장애인들만 다치는 게 아니라, 눈이 어두운 노인들과 술 취한 사람들도 캄캄한 밤에는 볼라드가 검은색 계열이라 식별하지 못하고 충돌해 부상을 입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나마 요즘은 재질도 부드러워지고 키도 커져서 과거에 비해 부상을 방지하도록 바꾸어 설치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그러나 여전히 볼라드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가까이 하기에는 먼 당신이며, 무시로 괴롭히는 적군과도 같다.

키 큰 볼라드 역시 발에 걸려 넘어지기 쉽고, 어느 날은 남자들의 소중한 급소를 공격해서 자괴감에 빠져들게 하기도 한다.

그래도 횡단보도 입구에 서 있는 볼라드는 보편적 예측으로 미리 경계라도 하지만, 인도 끝에 무질서하게 박힌 그것들은 오히려 시력이 약한 교통 약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본래 볼라드의 설치 목적이 인도에 출몰하는 차량들을 막기 위해서인데, 여전히 도심 곳곳의 인도 위에는 보란 듯이 광택이 화려한 자동차들이 "편히 쉬어" 자세로 서 있고, 보행권을 빼앗긴 시민들은 마치 죄인처럼 조심스럽게 그 차량들을 피해 다녀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정말 누구를 위하여 저 많은 볼라드가 서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시민들에게 인도를 확보해 주기 위해 세운 볼라드라면 그 목적대로 차량들이 인도를 점거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그 기능을 옳게 수행하지 못한다면 모든 볼라드를 과감하게 제거하고 다른 방법으로 인도를 지켜야 한다.

예컨대, 장애인 주차 구역에 일반 차량이 불법 주차했을 때 소정의 범칙금을 부과하듯, 인도에 올라와 주차하는 차량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정하여 강력하게 단속하면 충분히 개선되리라 여겨진다.

인도 위를 침범하는 자동차들을 막지 못하고 그냥 서 있는 볼라드. ⓒ유석영

행정 편의보다는 불편을 겪는 사람들의 편의가 먼저였으면 한다. 특히 비용이 투입되는 사업이나 정책에 있어서는 엄격한 타당성 조사와 더불어 사후에 나타날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비싼 돈 들여 설치한 볼라드가 제 구실을 못하고, 도시 미관도 해치면서 교통 약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현상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낭비, 부조화, 시각장애인들의 삶의 질 저하 등등.

아량을 좀 더 넓혀 "누구나 행복할 수 있게 한다"는 발상을 기초로 입장을 여러 번 바꿔가며 신중하게 공통 분모를 찾았으면 한다.

더 나아가서 비능률과 부작용의 최소화를 지향하며 깔끔하게 목적을 달성해 가는 인간 중심의 도시 설계와 안전과 행복을 담보하는 행정이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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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영 칼럼니스트
사회적협동조합 구두만드는풍경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 향상, 선한 가치의 창출과 나눔을 이념으로 청각장애인들이 가진 고도의 집중력과 세밀한 손작업 능력을 바탕으로 질좋은 맞춤형 수제 구두를 생산하며, 장애 특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여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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