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커다란 그림책으로 본 사람은 일찍이 아름다움에 눈 뜬 사람이다.

이번 가을을 맞고 보내면서 새삼 그 말을 실감했다. 아직 물기 마르지 않은 잎새에 햇살이 반사되어 더욱 더 붉어진 단풍잎을 바라보면서 그 슬프도록 아름다운 모습에서 삶의 본질을 생각해 보았다.

왜 인간은 슬픔 속에서 삶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찾는걸까.

그림책 같은 아름다운 세상을 살면서 행복하다거나 기쁘다는 말보단 인생은 고해라 말한다. 그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의 슬픔, 나아가서 비극은 어디서 부터 연유된 것일까.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울음을 터뜨린 것부터가 인생의 비극성을 암시한 것은 아닐지. 세상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태아가 출산되는 순간 웃지 않고 울었다는 것은 비극이 본능에 가깝다는 걸 감지한 때문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한 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다. 개인적으로 볼 때 그는 전혀 불행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화려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상식이 미치지 못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축복받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는 것과 같이 이해되지 않는 사실을 그에게서 본다. 재력과 명예를 한 몸에 지니고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것 같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이해되지 않은 상반된 상황을 만나면서 우린 삶의 주체와 객체의 한몸에서 두개의 얼굴을 보게 된다. 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버린 경우는 아름다운 얘기로 오래도록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또 죽어야만 산다는 이해되지 않는 말도 성숙된 사고의 소유자들에겐 질 높은 삶으로 평가를 받는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죽음을 택함으로써 남은 가족에게 닥친 불행은 엄청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유가족들이 내내 겪어야 하는 고통은 단순히 가장을 잃었다는 한 때의 슬픔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일 것이다.

설령 생전에 그가 가족과 가정을 위해 헌신적이었다 하더라도 결국 그는 가족보다 자신의 명예나 야망을 채우는 쪽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세상 살이란 결국 남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마치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볼수 있듯이 타인의 존재를 통해서 나를 바로 보게 되며 곱고 아름답고 참되고 올바른 모습으로 고쳐 가는 것이 정상적인 인생이라는 말이다.

겉보기에 행복해 보이고 화려해 보이고 당당해 보였던 그였지만 결국 가족을 비롯한 타인의 모습에서 자기 모습을 가꾸어 보려는 노력이 조금만 더 있었던들 그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 아닐까. 못내 아쉽고 안타까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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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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