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이 들락거리는 동천을 따라 걷기로 했다. 순천문학관까지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도 되지만, 때 묻지 않은 동천의 자연을 만끽하고 싶었다.

동천은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동식물의 서식환경이 뛰어난 생태 공원이다.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는데 맑은 하늘에 소나기 내리는 소리가 난다. 하늘을 쳐다보니 비는 오지 않는다. 그런데 계속해서 빗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찾아 갈대에게 다가가 귀 기울여 보니 갈대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같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갈대가 들려주는 소나기를 맞아본다. 빗물 없는 소나기는 귓속으로 내려 가슴속에 고인다. 문득 영화 “봄날은 간다”가 떠올랐다.

소리를 찾아다니는 주인공 상우(유지태)는 사운드 엔지니어다. 소리를 찾아 전국을 떠도는 상우는 바람처럼 우연히 찾아온 사랑에도 흠뻑 젖어버린다. 영원할 것 같았던 은수(이영애)와의 사랑도 바람처럼 갈대 사이로 빠져 나갔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갈대밭에 긴 마이크를 꽂아놓고 갈대가 뿌리는 소나기를 담고 싶었다.

동천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순천문학관을 만났다. 순천문학관은 순천을 대표하는 동화작가 정채봉과 소설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의 생애와 문학 사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문학관은 작고 소박하다.

흙벽돌로 담벼락을 둘렀고 볏짚으로 지붕을 얹었다. 외부는 초가집 그대로를 재현해 놨지만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문학관 안으로 진입할 수 없다. 옛 건축물이 늘 그렇듯이 모든 사람을 배려해 만든 건축물은 보기 드물다. 순천 문학관도 마찬가지다.

문학관 내부로 들어갈순 없지만 넓은 앞마당 싸리나무 담장이 고향집에 온 듯하다. 마당에 흙을 밟는 느낌도 부드럽고, 수려한 자연을 정원으로 들여놓은 순천 문학관이 곱다.

아담한 문학관을 휘 둘러보고 순천만 생태공원으로 발길을 이어간다. 문학관과 생태공원을 오가는 갈대열차가 운행되지만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탑승할 수 없다. 이럴 때마다 작은 배려가 아쉽다. 모두가 이용하는 열차를 모두가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갈대하면 늦은 가을을 연상하지만 이제 막 은빛 머리를 풀어헤친 갈대는 은빛물결이 넘실댄다. 갈대는 강이나 바닷가 습지에서 서식하며 오염물질 정화기능이 우수한 식물이다. 갈대는 한여름에 꽃을 피우며 춘천만의 환경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순천만 갯벌은 밀물과 썰물이 들고 나면서 바닷가에 생겨난 넓고 평평한 진흙땅이다. 순천만의 진흙은 특별히 고운 뻘을 자랑하고 온전한 생태계가 그대로 보전돼 있다.

데크로 아래는 농게, 방게, 짱뚱어가 서식하고 밀물 때는 갯벌이 물 속에 잠겨 호수같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엔 갯벌을 터전삼아 살아가는 바다 생명들이 먹이활동에 여념없다.

갈대가 넘실대는 순천만은 생명이 숨 쉬고, 갈대 밭 사이 데크로를 따라 걷자니 힐링할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갖춰져 있다.

순천만하면 갯벌과 붉은 갈대 사이로 난 S자 모양에 갯골을 떠올린다. 갯골을 보려면 용산전망대로 올라가야 제대로 된 S갯골을 볼 수 있지만, 전망대까지 휠체어가 올라갈 리가 만무하다. 혹시나 해서 근처까지 가봤지만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발길을 돌려 다시 순천만 곳곳을 천천히 바라본다. 갈대가 퍼붓는 소나기 바람을 맞으니 마음도 갈대처럼 흔들린다. 바람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결코 부러지지 않는 것이 갈대라 했던가.

다시 장산 관찰로를 따라 걸음은 이어졌다. 온화한 바람이 불어주는 갈대숲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두 손을 양쪽으로 벌리고 가슴가득 순천만의 바람을 폐부 깊이 들이키며 천천히 내쉬었다. 바람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니 켜켜이 쌓였던 묵은 감정이 내려가는 느낌이다.

남도여행하면 먹거리를 빼놀 수 없다. 여행의 즐거움은 그 고장에서만 먹을 수 있는 토속음식일 것이다. 남도 음식의 진수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맛 집을 찾아 나섰다.

여행을 하면서 그 지역의 음식문화를 체험 할 수 있는 것은 여행의 완성이다. 맛의 종결지 순천에서 그 일화는 통했다.

생태공원 앞엔 꼬막 정식집이들 유독 눈에 띤다.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가 자리를 잡고, 꼬막정식을 주문했다. 깨끗한 갯벌에서 캐온 꼬막이라고 하면서 주인장은 너스레를 떤다. 꼬막으로 만든 요리가 식탁위에 진상되니 마치 왕이 된 듯하다.

가장 먼저 꼬막찜이 올라온다. 짭조름하면서 감칠맛이 나는 것이 꼬막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어 한 접시 뚝딱 해치운다, 꼬막무침도 예사롭지 않은 색다른 맛이다. 싱싱한 야채를 넣고 갖은 양념으로 새콤, 달콤, 매콤하게 무친 꼬막무침은 목넘김이 부드럽다.

꼬막 하나로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어 낼수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 중에 저절로 젓가락이 가는 꼬막부침도 특별하다, 조갯살을 넣은 부침개는 먹어봤지만 꼬막을 넣고 부친 것은 처음이다. 그 맛은 기대를 저버리자 않는 가히 일품이다. 남도여행은 역시 맛 여행으로 마무리 한다.

깊어가는 가을, 아름다운 계절을 붙잡아 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다. 여행에서 행복한 순간을 사진 속에 꼭 붙들어 매놓고 일상으로 돌아와서 한 장 한 장씩 꺼내 보면 일상에서 힘든 시간을 희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수많은 인연을 묶어 놓는 여유이고, 쉼표이고, 느낌표이기 때문이다.

•가는 길

용산에서 KTX 이용 복지 할인 적용 왕복 4만원

순천역 앞 200번 저상버스 상시 운행.

순천장애인 콜택시 두 시간 전 예약 이용. 전화 061-751-8181

•먹거리

정원 박람회장 안 푸드 코트.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앞 꼬막정식

•장애인화장실

박람회장 곳곳에 장애인 화장실이 잘 마련돼 있다.

•잠자리

순천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 휠체어 접근 가능한 숙박업소 정보 제공

에코비치캐슬 http://www.ecobeach.co.kr/ 전화 061-725-3355/010-6621-0718

•문의

휠체어 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동천 자전거 길. ⓒ전윤선

가을로 가는 동천. ⓒ전윤선

갯벌이 아름다운 순천만. ⓒ전윤선

순천만 갈대 숲. ⓒ전윤선

갈대 숲 사이로 가는 길.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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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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