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득해서 기억조차 희미하다. 경원선을 열차를 다시 타리라곤 생각 하지 못했다. 아득한 옛 기억 속 한탄강을 여행할 땐 경원선열차를 탔다.

당시 한탄강은 금단의 땅과 가까워 여행객의 발길은 드물었다. 배낭에 코펠과 고체연료, 먹거리를 싸들고 한탄강으로 물놀이 갔던 질풍노드의 시절.

한탄강은 깊은 협곡사이를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삼십년이 지나서 다시 경원선 열차에 올랐다. 열차의 모습은 예전과 별반 다름없다. 리프트가 장착된 것을 제외하고 특별히 달라진 곳도 없고 열차 밖 풍경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동두천역에서 백마고지 역까지 한 시간 남짓 철길 따라 풍경을 감상하는 열차여행은 가을낭만을 예감하게 한다.

기차안 사람들은 모종을 사들고 가는 노인이 대부분이고, 가끔 배낭을 멘 등산객만 눈에 띤다. 승무원은 승객 곁으로 다가가 일일이 표를 검침하며 너털웃음을 흘린다.

경원선을 이용하는 승객 대부분은 인근지역 사람들이다보니 젊은 승무원은 객지 나간 아들 같고 노인 승객은 고향집 부모 같다.

중부전선 최북단을 오가는 경원선은 신탄리역까지 운행됐었다. 6·25전쟁 이후 끊겼던 경원선 신탄리~철원(백마고지역) 구간 열차가 작년 십일월 60년 만에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반세기를 훌쩍 넘어서야 민통선과 가장 가까운 백마고지 역이 개통된 것이다.

철마는 월정리역을 지나 북으로 달리고싶지만 분단의 상처는 철길을 연결하지 못했다. 언젠가 북한을 지나 중국, 러시아, 유럽까지 철의 실크로가 열릴 것을 기대한다.

열차는 한탄강을 지나 전곡역에 손님을 내려놓고 다시 달린다. 한탄강역은 옛 모습 그대로다. 창밖으론 무장한 군인들이 가을볕을 받으며 걸어가고, 그 뒤를 따라 탱크가 줄을 지어 행군하니 군사 도시를 지나는 것이 실감 난다.

십여 분쯤 달렸을까, 신망리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작고 소박한 신망리역은 이 지역 사람들과 닮아있다. 열차는 북으로 달릴수록 높은 산이 둘러싸이고 산 아래 들판은 가지런한 바둑판같다. 노랗게 익어가는 벼는 고개를 숙인 체 수확을 기다리고 황금들판엔 햇살이 부서진다.

대광리역에 도착하니 열차는 사람들을 쏟아내고 다시 달린다. 열차 안은 몇 안 되는 승객들만 말없이 창밖만 응시하고 삶은 옥수수를 나눠먹는 노부부에게서 철길만큼 긴 세월의 흔적을 발견한다.

열차는 기적을 울리며 종착역을 향해 내달린다. 세월도 비켜간 경원선 열차 구간은 추억이 머물러있다.

이구간은 스치는 풍경만 봐도 좋고 발길 닿는 데로 아무 역에서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낭만 가득한 여행이다.

계절앓이를 하는 감성 충만한 사람에겐 경원선 기차가 그 이유를 가장 잘 알게 해주는 치유여행이다.

신탄리역에서 내리니 한가로운 가을 햇살이 간이역에 내려앉는다. 그 모습이 소박하고 정겨워 흐뭇하다.

신탄리역은 간이역 중에서 아름다운 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역사 안은 세계 1등 대륙철도, 한반도의 통일을 꿈꾸며 통일출발역 이라는 큰 사진이 눈에 띈다. 신탄리역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통일에 초석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탄리역은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는 역이다. 신탄리역에서 휴전선 넘어 평강 역까지는 너무 가까운 거리라서 금방이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북한에 있는 동천역까지 17Km 이고 금강산역과 원산역도 경원선철길이 이어지면 가까운 거리라고 한다.

역사 안엔 “신탄정”이라는 우물도 있다. 신탄정은 어릴 적 초등학교 수돗가 같다.

신탄정의 물이 수돗물이라고 해도 동네 몇몇 분은 물통을 가져와서 “신탄정” 물을 담아간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나면 수돗가에서 벌컥벌컥 마시던 물이 생각난다. 이처럼 신탄리역엔 추억의 역이고 추억으로 가는 열차가 경원선이다.

간이역엔 시인이 머무는 쉼터도 있다. 쉼터에 앉아 있으면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을 것 처럼 신탄리역은 아름답다. 이곳엔 “조성좌” 시인의 시작도 걸려 있다.

철길 주변엔 “과꽃”이 간이역의 가을을 더욱 운치 있게 해준다. 간이역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쉼터에 앉아서 풍경만 보고 있어도 치유가 되며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

역사 밖으로 나오면 시간은 칠십 년대에서 멈춰 있다. 주변 풍경은 바쁠 것 없이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천천히 바라본다. 주름 깊은 할머니는 제멋대로 생긴 찐 옥수수 몇 개를 팔려고 한 시간에 한번 씩 정차 하는 열차의 손님을 기다린다.

신탄리역은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처럼 바람도, 구름도 느릿느릿 쉬어간다. 몇 안 되는 손님이 내리고 나면 역 주변은 다시 평화롭고 고요하다.

할머니께 옥수수 한 봉지를 사들고 철길 건널목을 지나서 고대산으로 갔다.

통일을 고대해서 고대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산은 등산을 좋아하는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가을에 찾은 고대산은 산꼭대기부터 가을 옷을 갈아입고 있다. 가을의 짙어간다. 가을앓이를 하는 그대, 추억으로 가는 경원선 열차를 타면 치유의 시간이 될 것 이다.

•가는 길

1호선 동두천역, 소요산역에서 한 시간마다 경원선 기차 출발

복지할인 적용 편도 5백 원

•먹거리

신탄리역 앞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즉석 손 반죽 평양메밀국수

•장애인화장실

신탄리역 이용

•문의

휠체어 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경원선 열차밖으로 흐르는 풍경. ⓒ전윤선

열차안은 세월이 멈춰있다. ⓒ전윤선

통일을 기원하는 신탄리역. ⓒ전윤선

철길따라 세월만 흐른다. ⓒ전윤선

신탄정 우물. ⓒ전윤선

경원선 열차는 달리고 싶다.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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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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