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건조하거나 일상이 지루할 때 여행을 생각한다. 여행이란 언제 들어도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이란 단어가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이번여행도 그랬다.

작년 가을에 초록여행을 신청했다. 초록여행은 어떤 여행일까 생각하며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 후기를 보면서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사연과 함께 여행 코스를 알차게 짰다. 이번 여행코스는 그 이름만으로도 행복한 ‘맛 여행’으로 명명했다. 맛있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신청서를 보내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신청하고 다른 일에 바빠 미처 챙기지 못한 사이 여행에 선정됐다는 연락이 왔다. “앗싸” 드디어 즐거운 맛 여행을 갈수 있다는 들뜬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이번 여행코스는 맛의 고장인 전주로 떠날 것이다. 1박2일 가족들과 함께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전주와 세계적인 전주 음식의 맛을 찾아 떠나는 신나는 여행이 시작됐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겉옷을 든든히 챙겨 입고 여느 때처럼 휠체어 배터리도 만땅으로 충전하며 여행준비에 만전을 기울였다. 오전 열시쯤 기사님이 집 앞까지 왔다는 전화가 온다. 카니발차량에서 기사님이 내리시며 인사를 나눴다.

차문이 열리고 자동으로 좌석이 밖으로 빠져 나온다. 얼마나 신기한지 한참을 쳐다봤다. 좌석으로 옮겨 타고 휠체어는 차량 뒷좌석에 안전하게 실었다. 자 이제 출발합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인 전주비빔밥의 명가로 목적지를 입력했다.

차량은 호남고속도를 타고 달린다. 밖은 설국인데 차 안은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한 시간쯤 달려 휴게소에서 볼일도 해결하고 간식거리도 장만했다. 오전 열두시가 넘어 네비게이션에 입력된 전주 명가 비빔밥 집 앞에 도착했다.

전주엔 비빔밥 골목이 형성돼 있다. 차량으로 골목골목을 빙 둘러보니 휠체어가 접근할만 식당이 있다. 47년 전통을 자랑하는 ‘성미정’은 휠체어가 접근하기 편리하다. 식당으로 들어가 메뉴를 보니 비빔밥, 육회비빔밥, 육회, 모주, 죽 등이 있다.

유네스코 음식 창의 도시 전주에서 비빔밥과 육회, 모주를 주문했다. 비빔밥은 손님상에 내어지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린다며 종업원이 양해를 구한다. 밑반찬 먼저 나오기 시작한다. 전주에 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아침도 안 먹고 간단하게 간식으로 때우며 전주 맛에 기대를 갖고 왔다.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밑반찬부터 먹기 시작했다. 그리곤 따끈한 모주 한잔을 마셨다.

진정한 술꾼의 한 잔 술, 모주는 조선조 광해군 때 인목대비 모친이 귀양지 제주에서 빚었던 술이라 해서 ‘대비모주 大妃母酒’라 부르다가 ‘모주’라 부르게 되어다는 설과 어느 고을에 술 많이 마시는 아들의 건강을 염려한 어머니가 막걸리에 각종 한약재를 넣고 달여 아들에게 줘 ‘모주’라 이름 붙였다는 설이 있다.

모주는 전주 시내 유명 콩나물국밥집 전주 비빔밥집 등에 가면 먹을 수 있다. 모주를 처음 먹어본 것은 십여 년 전 일이다. 그 후로 콩나물 국밥집과 따끈한 모주 한 잔으로 가끔 식사를 한다. 모주는 술이라기보다 음료같이 알콜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술을 전혀 못하는 나로서는 모주가 그만인 것이다. 맛도 좋고 향기도 그윽하다.

곧이어 소고기 육회가 나오고 비빔밥도 따라 나온다. 하얀 접시에 파란 상추를 깔고 그 위에 빨간 선홍빛에 육회가 앉아 있다. 육회 위엔 마늘로 꽃잎을 만들고 꽃 수술 자리엔 계란 노른자가 달처럼 떠 있다. 그 옆으로는 깨소금이 중간 중간 뿌려져 있고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 잣 서너 알이 군데군데 모여 있다. 그 모양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먹기 아까울 정도로 눈부터 먹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육회 위에 만들어진 꽃잎을 섞어서 한 입 입이 물었다. 부드러운 고기가 입안으로 퍼지면서 고소하고 싱싱함이 가득 차온다. 그 맛은 봄 햇살이 겨울을 녹이듯 사르르 녹아내린다. 혀끝을 자극하며 오감이 쉴 새 없이 반응한다. 생크림처럼 부드럽게 녹아지는 소기기와 아삭아삭 씹히는 달콤한 배 조각이 어우러진 육회는 처음 먹어보는 사람에게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놋그릇에 담겨져 나온 비빔밥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지경이다. 전주비빔밥은 조선 3대 음식 중 으뜸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대한민국 대표음식으로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한국음식 'BEST 1'이다.

전주의 10미 중 하나인 콩나물로 지은 밥에 오색·오미의 30여 가지 지단, 은행, 잣, 밤, 호두 등과 계절마다 다른 신선한 야채를 넣어 만든 전주비빔밥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과 무기질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영양식품이면서 건강식품으로, 선조들의 지혜와 과학적 우주의 원리가 담겨있는 세계인이 선호하는 완전식품이다

비빔밥은 숟가락으로 비비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재료가 상하지 않게 비벼서 먹는다. 흔히 갈등과 대립이 있을 때 서로 어떻게 하면 어우러질까 고민하면서 비빔밥을 떠올린다.

각양각색의 재료들이 한 그릇에 안에서 비벼지면서 조화를 이루고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해야만 아름다운 맛을 낼 수 있다고 해서 화해의 상징으로 비빔밥을 먹기고 한다.

육회에 비빔밥, 모주까지 근사한 한상을 받아먹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맛 기행’에 황홀할 따름이다.

전주의 대표 음식들.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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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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