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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근”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3-02-01 15:04:42
시각장애인 재활의 아버지 Father Carroll은 1961년에 발표한 자신의 저서에서 시각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중의 하나로 문자정보에의 접근성 차단을 들었다. 또 그는 시각장애인이 재활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사람이 실명한 후에 다시 재활하는 것은 예수의 부활과도 같은 이적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은 문자정보를 음성 혹은 점자로 습득해야 하고 저시력인의 경우에도 확대인쇄와 같은 2차적 가공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있다.

시각장애인들의 독서 환경이 그러하다 보니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출판물 전체를 점자 혹은 음성 변환이 가능한 형태로 제작할 수 없어 선택적으로만 도서를 점자 혹은 음성으로 제작하고 있다.

특히 점자도서와 같은 대체자료는 제작에 비용도 많이 소요되고 점자의 읽기 속도가 문자를 눈으로 읽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느려, 분량이 많거나 소설과 같은 장르의 도서는 녹음도서 혹은 데이지 도서의 형태로 제작하여 시각장애인들에게 많이 보급된다.

점자책이 아니더라도 녹음도서나 데이지 도서의 제작 역시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출판 인쇄물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은 늘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의 경우 시각장애인의 독서환경은 말로 표현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선진국조차도 전체 출판물량의 7%만이 시각장애인 등 독서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점자, 녹음, 확대 등의 도서로 제작되고 있고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의 경우 이 비율이 극심히 떨어져 약 1% 수준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을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는 “도서기근(Book Famine)”이라고 표현한다.

가장 극심한 지역이 아프리카 지역에 속한 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영어나 프랑스어를 많이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대체도서를 제작할 여력이 없다.

또 언어적 문제가 없어 영어권이나 프랑스어권에서 제작된 도서를 수입해서 이용하는 방안이 오랫동안 모색되어 왔으나 세계지적재산권기구에 의해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국제기구인 WIPO(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과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WBU)의 노력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작된 도서의 국가 간 교류를 용이하게 하는 내용의 조약의 제정을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12년 12월 1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조약 제정을 위한 임시총회를 2013년 6월에 모로코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이 총회를 위한 준비회의를 2013년 2월에 개최하기로 했다.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발표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책을 읽을 수 없을 만큼의 중증 시각장애인은 2억 8천5백만 명이고,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해리포터와 같은 소설, 각종 법령집이나 학술서적을 읽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또,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작되는 확대도서, 점자도서 및 녹음도서의 제작 자체를 금지하는 저작권법을 가지고 있는 국가도 있고, 대다수의 국가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작한 도서를 국외로 반출하지 못하게 하는 국내법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세계지적재산권기구와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의 노력으로 논의될 조약의 주요 내용은 확대, 점자 및 녹음도서의 제작에 있어 저작권법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국내법으로 보장하고, 제작된 도서들의 국외 반출을 원활하게 하는 내용으로 시각장애인의 독서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예정이다.

이 조약이 성공적으로 공포될 경우 국가 간 도서의 중복제작을 막고 더 많은 도서를 시각장애인들에게 보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글로벌 언어를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국가들 간의 대체도서 교류가 활성화되어 상대적으로 대체도서 제작이 부진한 저개발국 시각장애인의 독서환경을 개선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점자, 확대, 녹음 등의 형태로 외국의 학술도서들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될 예정이다. 그 동안 국내에서는 수효가 적다는 이유로 늘 후순위로 가던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시켜 줄 것이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의 학력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고 국내외에서 석사과정 이상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의 숫자가 100여명이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원서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높은 비용을 부담하여 어렵게 책을 구해도 접근 가능한 형태로 제작하는 과정을 별도로 거쳐야 하는 현재 상황을 개선하는 효과를 기대한다.

둘째로 해외에 살고 있는 시각장애 교민이나 유학생들에게 국내에서 제작된 대체도서를 쉽게 보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실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과 유학생을 합한 숫자가 5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면 책을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의 수를 최소한 5,000명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들에게 한글기반의 점자, 녹음, 확대 도서를 보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셋째로 이러한 국제적 변화를 우리나라 저작권관련 법령의 개정 노력으로 이어갈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저작권법에는 저작권의 침해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대체자료를 어문저작물에 국한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방송의무화고시 등으로 화면해설, 자막/수화로 제작되는 방송영상물이나 영화는 저작권 보호 범위 내에 들어 있어 이들 대체자료(영상물)의 보급과 유통에 어려움이 많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가 2013년 6월 임시총회에서 논의될 조약의 대상 역시 현재는 어문저작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향후 영상저작물에 까지 범위가 확대될 필요가 있는 만큼 국내에서 이와 같은 국제적 동향을 파악하고 국내법이 한 걸음 앞서 시각장애인 등의 방송접근/정보접근보장을 위한 노력에 앞장서야 한다.

끝으로 지적재산권에 관한 이번 협의가 원만히 진행되어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더 많은 책을 쉽고 편리하게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이러한 일들이 우리와는 별 상관없는 막연한 일들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어떻게 우리의 이해와 연결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볼 시기이다.

외국에서 또는 국제적으로 이렇게 하고 있으니 우리도 이렇게 하자는 논리가 아니라, 서로의 이해가 상충하는 국제사회에서 이 정도의 합의가 있었다면 우리는 국내적으로 한 걸음 더 나가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국제화나 세계화는 “그들과 같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선진화는 “그들보다 나은”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국제화/세계화가 아닌 선진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번 WIPO와 WBU 사이의 협의를 넘어선 대체자료의 제작 및 보급 환경이 우리나라에서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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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하성준 (pigha19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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