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겨울연가의 두 연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지 추암해수욕장!! 유진과 준상이 함께한 첫 번째 바다. 그리고 자신과 유진이 이복남매사이라고 오해한 준상이 그녀를 떠나보내려 했던 마지막 바다. 일출을 함께 바라보고, 추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도 찍고, 아이들처럼 갈매기를 쫓아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는 모습은 연인들에게서 느끼는 애절함이 남겨진 장소다.

애국가의 첫 소절인 '동해물과~' 부분의 해가 떠오르는 일출 장면을 장식한 것이 바로 이곳인 추암해변으로, 해안절벽과 동굴, 칼바위, 촛대바위 등 크고 작은 기암괴석의 경관이 애국가의 일출 광경을 창식할 만큼이니 아름다움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시사철 일출을 담으려는 사진가들로 분주하기도 한 추암은 내게도 아련함이 가득한 곳이다.

오래 전, 주말저녁을 이용해 시외버스를 타고 무작정 바다가 보고 싶어 떠나왔던 추암은 늘 고향 같았다. 영동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서울에서 동해로 가는 길은 굽이치는 국도를 달려 대관령고개를 넘어 밤새도록 험난한 길을 달려와야 했다. 새벽녘에 도착한 버스는 어둠이 채 가시기 전 동해바다에 나를 내려놨다 무작정 떠나왔기 때문에 수중에 가진 돈도 많지 않았다. 왕복 버스비와 컵라면과 자판기 커피 몇 잔 먹을 정도의 적은 돈으로 바다를 보겠다는 일념 달려왔던 것이다.

서늘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정동진에서 일출을 보고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추암으로 왔다. 당시 추암은 이름 없는 작은 어촌에 불과해 관광객은 찾아볼 수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추암해변을 처음 찾았을 때 주변은 논과 밭 일색인 농어촌 풍경을 간직한 곳이었고 철로아래 작은 굴다리는 마을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로 굴다리를 지나야 추암해변과 만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들어 가는 길은 논과 밭으로, 논두렁엔 벼가 두 뺨 정도 자라고 있었다. 한적한 마을길을 따라 추암으로 들어가니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당시는 애국가의 첫 소절에 나오는 촛대 바위가 그 곳에 있는 줄은 몰랐고, 그냥 작고 아담한 추암의 풍경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동해안에도 이렇게 작고 소박한 해변이 있다는 것에 신기롭기 까지 했고, 작은 어촌이다 보니 편의시설은 전혀 없고 그 흔한 자판기 커피조차 없었다. 내 마음속에 쏙 들어왔던 추암은 그 후로 바다가 그리울 때마다 추암으로 가는 기차에 오르게 했다.

일상이 지루하거나 건조할 때 난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무작정 길을 나서는 규정되어지지 않는 여행자가 되고 싶었고, 그럴 때마다 나를 불러준 곳은 바로 추암해변이었다.

그 후로 드라마 겨울연가의 배경이 되면서 추암해변은 변화의 물결에 맞게 됐다. 당시 드라마가 한창일 때도 차를 타고 이 곳으로 왔다. 장애가 한참 진행중이어서 걷기가 힘들어졌고 대중교통인 기차나 버스를 탈 수 없을 정도로 다리에 쇠뭉치를 달아놓은 것처럼 걸음걸이는 천근만근이었다. 그런데도 친구의 차를 타고 추암에 왔었다.

늦겨울 추암해변은 파랗게 일렁이고 바람은 따스했으며, 차 안에 앉아 한없이 바다만 바라봤다. 저 파란 바다에 몸을 던져 바닷 속에서 자유로운 몸으로 물결을 따라 날고 싶었다. 신체적 변화에 힘들어 하던 그땐 자유롭지 못한 육체에 갇힌 내 자신이 너무도 비참했고 현실은 절망이었다. 삶은 고단했고 정지된 시간 속에서 꿈은 박제됐다. 조각난 삶은 희망마저 잃어 신음하고 있었다. 그렇게 희망이 신음할 때 추암에 다녀오면 상처 난 희망을 주섬주섬 주머니 속에 다시 넣어 삶을 이어가곤 했다.

당시 희망을 건져 올리던 추암에 변화물결이 몰아치고 있다. 삼척과 작은 산 하나를 놓고 경계를 긋던 추암에 터널이 생기면서 새천년 도로와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대를 이어 살아오던 작은 어촌 풍경은 관광객의 수요에 맞게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있는 것 이다.

어부가 살던 집은 더 이상 해변과 마주하며 살 수 없게 됐고, 올봄 모두 재개발의 소용돌이 속에 바다와 마주하던 작은 집들은 철거를 앞두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추암역사는 계단으로 된 간이역이었고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아 추암역을 이용하지 못해 동해역에서 내려 휠체어로 추암까지 3키로 남짓 걸어가야 했거나 버스를 타고 가야만 했다. 하지만 올 가을쯤 새롭게 생겨날 추암역사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그동안 불편함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편리하게 새로운 추암역 탄생을 기대하게 한다.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는 듯하다. 사람이든 환경이든 모두 시간 앞에서는 공평한 것처럼 추암해변도 시간의 공평함에 서서히 변해간다. 옛 추억을 회상할 추암엔 갈매기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닷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노닌다. 마을 사람들이 오징어를 말리면서 그 내장을 갈매기들의 먹이로 바닷가에 뿌리기 때문이다. 바닷가 마을에서 말리는 오징어 냄새. 미역 냄새가 풍기는 추암에는 파란 바다와 어우러진 한적함이 있다

바다와 마주한 빨간 지붕의 카페 연리지에서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바다를 바라보며 그윽한 향에 취해본다. 바다는 하얀 파도를 일으키며 자신의 말을 쏟아낸다. 바다는 파랗고 파도는 하얗다는 진리는 익히 알고 있지만 파도치는 바다가 왜 파란지는 매번 생각이 바뀐다. 하늘이 파라면 바다도 파랗고 하늘이 회색이면 바다도 회색이다. 하늘과 색을 같이하는 바다는 거울처럼 자신의 색을 비춘다. 물결이 해변으로 밀려오면서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고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물결이라기보다 눈사태처럼 하얀 눈 폭풍이 쏟아지는 것 같다.

추암해변에서 북평주민센터까지 휠체어로 걸어가야 하고, 주민센터 앞에서 저상버스를 타고 묵호로 가야한다. 묵호까지는 마지막 저상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어중간 하다 버스가 오려면 한 시간이 더 남았다. 아까운 시간을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릴 수 없어 바로 옆 전천강으로 가봤다.

전천강은 강변을 따라 산책로가 매끈하게 잘 닦여있다. 이 곳은 동해바다와 만나는 길목이다. 물은 맑고 깨끗해 가을이면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온다고 한다. 강변길을 따라 갯목항까지 산책하기로 했다. 강물은 투명해 바닥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고 강물을 휘휘 저으며 왜가리와 천둥오리떼는 먹이활동에 여념 없다.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은 세월을 낚고, 매끈한 길 위에 자전거를 타는 풍경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갯목항 근처엔 거대한 공룡처럼 시멘트 공장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공장 우측으로 만경대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만경대로 올라가는 길은 산길이어서 하는 수 없이 길 끝에서 돌아선다.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는 한 시간 전천강에서의 호젓한 산책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 가는 길

청량리~강릉행 무궁화 열차 3호칸 전동휠체어 좌석, 동해역 하차.

요금은 평일18,300, 주말. 19,200원. 왕복 장애할인 50% 적용.

북평동에서 추암까지 전동휠체어로 걸어서 3키로 내외며, 북평동사무소 앞에서 강원여객 저상버스 31-1번 승차, 묵호역까지 30분소요.

• 무엇을 먹나

추암해변엔 휠체어가 접근할만한 마땅한 식당이 없다. 그래서 북평동사무소 근처나 북평 5일장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간다.(3.8일장) 메밀전병, 메밀묵, 잔치국수, 막걸리 등은 3천원부터, 옛날국밥 6천원부터. 묵호어시장에서 당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활어를 3만원이면 4명이서 실컷 먹을 수 있다. 휠체어 접근가능.

• 화장실

무궁화호 장애인 화장실, 추암해변 공원 내 장애인화장실, 묵호어시장 내 회 타운, 까막바위 앞 공중화장실.

• 어디서 자나

바다마을 민박은 넓은 객실에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7만원부터, 전화 010-6373-8505

• 문의

다음카페-휠체어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연리지 카페에 본 추암해변. ⓒ전윤선

해변풍경. ⓒ전윤선

전천강 산책로. ⓒ전윤선

[댓글열전] 세계적 축제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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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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