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프리직스재단 단지의 전경. 우측 갈매기 모양의 긴 건물이 패러프리직센터. ⓒSwiss Paraplegic Center

스위스 패러프리직센터(Swiss Paraplegic Center)는, 루체른 근처의 놋윌(Nottwill)이라는 시골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세계 최고 규모의 독립적인 척수손상 전문센터이다. 시골에 있어서 접근성이 떨어질 것 같지만 사고에 의한 응급환자가 빠른 시간 안에 헬기로 수송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접근성은 문제가 되지 않고 있으며, 이 센터 한 곳에서 수술, 치료, 재활까지의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도록 최고의 첨단 시설이 다 갖추어져있다.

앞서 소개했었던 영국의 경우에는 조세를 재원으로 하는 국가보건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는데, 스위스의 보건의료제도는 영국과 다르게 되어 있다.

스위스는 모든 국민에게 공적보건의료제도를 적용하고 있지만 제한적인 조건 하에서만 적용시키기 때문에 나머지를 사보험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방식을 적용한다.

강제로 가입해야 하는 기초건강보험(Basic Health Insurance)과, 강제성이 없는 사보험 형태의 임의보충건강보험(Voluntary Health Insurance)이 혼합되어 존재한다.

그런데 임의보충건강보험은 사보험의 원리로 운영되지만 비영리 민간보험자나 질병금고 등이 보험자가 되므로, 일반적인 사보험과는 달리 공공성이 겸비된 측면이 있어서 '반-사보험(半-私保險)'이라고도 불린다.

스위스는 26개의 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로 그 각각의 주를 캔턴(Canton)이라고 부르는데, 기초건강보험은 가입자가 거주하는 캔턴 내의 의료기관 진료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다른 캔턴이나 외국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임의보충건강보험에 가입해야만 한다. 작년 패러프리직센터의 보험형태별 환자의 비중은 기초건강보험이 75.5%, 반-사보험이 11%, 기타가 13.5%를 차지했었다.

센터의 메인 로비 모습. 시원한 개방감이나 자연채광용 유리 천정의 구조도 좋지만, 날개 달린 휠체어 장애인을 표현한 상부 조형물이 이채롭다. ⓒ이광원

이 센터의 운영주체는 스위스 패러프리직스 재단(Swiss Paraplegics Foundation)으로 1975년에 설립됐고, 패러프리직센터는 1990년에 건립됐다.

이 센터는 스포츠 활동장소(탁구, 테니스, 핸드바이크), 강당, 보조공학실, 물리치료실, 외래환자 진료실, 카페테리아, 식당, 작업치료실, 직업훈련실, 아트치료실, 모바일(자동차)실, 응급환자실(10개 병상), 검사실, 입원병동(140개 병상)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센터의 각종 시설들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이 센터는 중부 스위스 지방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고용주 중의 하나이다. 이곳의 직원은 1,115명이며, 정규직원(Full-time)만으로도 853명이나 되는 큰 규모의 조직이다. 척수손상을 당한 모든 환자는, 어떤 의료보험에 가입되었는지 상관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 센터의 운영주체인 패러프리직스 재단의 재원은 후원회원들의 후원금 등으로 조성되는데 작년 한 해의 후원금 수입은 모두 7천 5백 4십만 스위스프랑(한화로 약 877억원)으로 이중 회원 기부금은 6천 5백만 스위스프랑(한화로 약 756억원), 유산 기부액을 포함한 기타 후원금은 천 40만 스위스프랑(한화로 약 121억원)이었다고 한다.

범국민적인 모금을 통해 사회봉사나 구호활동 등 다용도로 사용되는, 5천만명 인구의 우리나라 적십자 회비가 일 년에 500억원 정도인데 비해 7백 92만명 인구의 스위스에서 ‘척수손상 지원’이라는 한 가지 목적만으로 연간 877억원 가량의 후원금이 모금된다는 것은 척수장애인의 한 사람인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놀랍고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체 국민 6명중의 1명 정도가 패러프리직스 재단의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고 있어서 현재 후원회원의 수는 대략 13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2011년 회원들의 기부금 총액을 130만명으로 나눠보면 회원 1인당 연 50 스위스프랑(한화로 약 58,150원) 정도의 후원금을 낸 셈이다. 모든 후원회원들은 불의의 사고로 척수손상을 입고 마비가 될 경우 재단으로부터 약 2억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받게 된다.

전 국민의 1/6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척수장애인을 위한 후원금을 내고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인데, 그 사정을 알아보면, 스위스 국민들이 척수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높고 선진적인 기부문화가 보편화되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후원회비가 일종의 보험금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통유리창을 통해 바깥 정원을 볼 수 있게 설계된 병실(좌), 고가의 최첨단 재활의료기(중), 시승도 가능한 장애인 운전장치의 실제 모델카 전시 구역(우) ⓒ이광원

스위스 전역에서 척수손상환자들이 치료를 받기위해 이 센터에 오고 있으며, 척수손상환자뿐 아니라 외래 환자들의 진료도 하고 있다.

척수손상환자 비율은 2011년 기준으로, 사지마비가 54%, 하지마비가 46% 정도이며, 사고로 인한 손상이 49%, 질병으로 인한 손상이 51%이었다. 손상의 원인은 교통사고가 27%, 스포츠가 37%, 추락이 32% 등으로 나타났다.

질병치료비는 필자가 방문했던 2007년의 경우에 1인당 월 36,000~60,000 스위스프랑(현재의 환율로 계산해볼 때, 한화 약 4,187만원~6,978만원)으로 이중 70%~80%는 건강보험 등에서 지원하고, 나머지는 후원금에서 지원하고 있어서 개인이 지불해야하는 부담금은 전혀 없다고 했다.

보통 하지마비 환자는 평균 6~7개월, 사지마비 환자는 평균 9~12개월의 치료 및 재활기간이 걸린다.

척수손상환자가 기존의 직업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경우에는 컴퓨터 교육 등의 직업훈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아가 고용까지 연결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퇴원 후에도 이 센터에서 생활했던 것처럼 각 가정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모든 장소나 가구에 접근이 가능하도록 경사로를 설치하거나 계단에 리프트를 설치하고, 가구를 개조하는 등, 퇴원 후의 생활에 대한 계획을 철저히 한 후 퇴원시킨다. 각 개인의 집 개조비용 또한 후원회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퇴원 후에는 3개월, 6개월, 1년마다 재진료를 받기위해 병원에 내원하며, 그 후로는 매해 1년마다 재진료가 이루어진다. 또 매년마다 2주씩 의사, 치료사, 동료 등과 함께 휴가캠프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이 2주간의 기간이 척수장애인들에게는 재교육의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척수장애인 가족들에게는 잠시 쉴 수 있는 휴식기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는 조세를 재원으로 하여 치료비뿐만 아니라 고가의 보조기기, 주택 개조, 편의시설 등, 거의 모든 것들을 무상으로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스위스의 경우에는 보장성이 제한적인 건강보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나머지 비용들이 거의 다 보험이나 후원금 등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보건의료제도는 달라도 결국 척수장애인 당사자가 부담할 비용이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앞서 애기했던 것처럼 여러 용도로 쓰이는 우리나라 적십자 회비가 500억원 정도인데 우리나라의 1/6도 채 안 되는 인구의 나라 스위스에서 '척수 손상 지원'의 목적으로만 877억원 정도의 후원금이 모금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부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까지의 후원 분위기가 조성되기는 어려울 것이기에 스위스의 사례 역시 우리가 따라가기는 힘든 모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뉴질랜드의 사례를 소개해 보겠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