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를 철저히 해도 긴장되는 것이 여행이다. 게다가 초보여행자와 함께 여행한다면 중압감은 더욱 크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떠났다.

나름 여행의 고수라고 자부하면서 떠난 동해 여행은 순조로운 듯 했다. 아침 여덟 시 청량리역에서 만났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곧 기차에 오를 시간이다. 아침식사도 거른 체 후딱 기차에 오르고 나니 한숨 돌리게 된다.

늘 그랬듯이 전동휠체어 좌석은 두 개뿐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의 인원은 네 명이다. 모두 전동휠체어를 이용한다. 거기에 보조인 한 명 추가.

청량리를 출발한 기차는 성북을 지나 남양주 쪽으로 빠져 나간다. 기차는 남양주 복선 전철 길을 따라 빠르게 지나간다. 어딘가 익숙한 풍경인 듯싶어 보니 남한강 자전거 길을 지나고 있다.

철길을 따라 자전거 길은 한참을 기차를 따라 라 달린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기차는 원주를 지나고 있다. 기차가 풍경을 스칠 때 마다 "여긴 A가 살고 있는 곳이잖아. 그래 A는 잘 지내고 있을까?" 서로 A에 대한 안부를 궁금해 하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그런데 전화기 화면엔 A의 이름이 뜬다.

"어머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양반은 못되는 구나!"

서둘러 전화를 받는다. 전화기 너머로 힘없는 A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 어디세요?"

"응 동해 가고 있어. 넌 어디니?"

"전 집이예요. 선생님 저도 데리고 가면 안 돼요?"

"어쩌니, 벌써 네가 살고 있는 동내를 한참 지났어."

A는 잘 다녀오란 말과 함께 힘없이 전화를 끊는다. 그녀와 함께 가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기차 안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4호 카페 칸에서 간단한 요깃거릴 사들고 와 커피와 함께 허기를 면한다.

제천을 지날 때쯤 열차는 잠시 쉬어간다. 승무원이 제천역에서 교대하는 것 같다. 예전엔 제천역에서 십분 넘게 쉬어가는 것 같았는데 이젠 아주 잠깐 동안만 쉬고 곧바로 출발한다.

제천을 지나면서부터 주변은 험준한 산맥으로 변한다. 한참 동안 산맥을 헥헥대며 올라가는 기차는 영월역에서 손님을 내리고 다시 태운다.

영월역사는 기와지붕이다. 이 역은 작은 간이역이지만 단종의 한이 서린 고장이다. 언젠가 영월에 차를 타고 여행했던 생각이 난다.

당시도 역마살로 인해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디론가 떠돌곤 했다. 동강에 댐이 생긴다는 그 즈음 텔레비전에선 동강의 생태를 다큐멘터리로 방송하여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겨두자는 것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사람들은 자연 그대로의 동강을 원했다. 다큐가 방영되고 나서 사람들의 열망으로 동강은 본래의 모습으로 남기기로 했다.

영월역을 지나니 기차는 산등성이로 힘겹게 올라간다. 그리고 민둥산 역에서 잠시 쉬어간다. 민둥산 역에서부터 정선으로 가는 기차와 길이 갈린다. 오지 중의 오지였던 정선은 이젠 오일장으로 전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됐다.

다시 기차는 태백산맥을 올라간다. 태백역으로 향하는 동안 개울가의 물색깔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한다. 태백은 탄광마을이 번창기를 맞을 때는 그 물색도 검은 연탄과 같은 색으로 흘렀다. 그러나 탄광이 하나 둘 폐업하고 그 빈자리를 스키장과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지역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태백은 미국의 댈러스처럼 파친코를 비롯해서 각종 사치성 오락시설이 들어서면서 지역 경제의 필요악이 됐다고 한다.

태백을 지나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인, 백두대간에서 가장 높은 역 추전역으로 기차는 온 힘을 다해 올라가리라 생각했다. 추전역을 지나면 꼭 거처야 할 스위치 백 코스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차는 어둠속으로 한참을 달린다. 긴 터널을 지나 도계역에 도착했다. 영문을 몰라 승무원에게 물었다. 역무원은 동백산역에서 도계역까지 18키로의 터널이 생겨났다며 우리 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터널이라고 설명했다.

터널이 생기면서 25분가량 시간이 단축됐다고는 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기차는 달려간다. 하지만 깜깜한 터널을 달리는 동안 험준한 태백산맥의 자연을 볼 수 없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추억도 터널에 갇혔고, 태백의 아름다운 자연과 산맥도 터널이 가둬버린 것이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중심을 잃게 된다. 그래서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옛 것에 대한 향수를 느끼려고 한다.

사실, 여행을 하다보면 목적지에 대한 기대보다 안 가본 곳에 가는 과정을 더 즐기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안 가본 곳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더 마음이 간다.

높은 산맥 앞에 숨죽일 수밖에 없었던 스위치 백 코스는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기대했던 스위치 백 코스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도계역에서 손님을 내려놓고 열차는 힘차가 동해로 달린다. 십여 분쯤 달렸을까, '동해역'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일행은 내릴 차비를 한다.

•문 의

다음카페, 휠체어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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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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