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언이와 선유 두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이른바 ‘통합어린이집’으로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같이 어울려 생활하는 곳이다.

통합이 가능한 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비장애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지내고 아이들의 장애 정도에 따라 전문적 지식과 소양을 갖춘 선생님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 곳으로, 내가 사는 곳에 이렇게 좋은 어린이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곳이다.

아침마다 두 녀석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노라면 여느 집처럼 잠깐의 전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주언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옷 입히고 약 먹이고, 멋쟁이 선유 취향에 맞게 옷 입혀주고 어쩌고 하다 보면 밥을 제대로 못 먹이는데도 항상 늦는 편이다.

나가보면 아이들을 태우고 갈 어린이집 버스가 먼저 도착해 있다. 늘 서둘러 나오려고 하지만 꼭 변수가 생기고 아이들이랑 작은 실랑이라도 하다 보면 어김없이 차량 담당 선생님의 재촉 전화가 걸려온다.

제 몸보다 더 큰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선유. ⓒ이은희

선유를 먼저 자리에 앉히고, 카시트 역할을 할 수 있는 고정장치가 되어 있는 의자에 주언이를 앉히는 동안 어린이집 버스 안을 슬며시 들여다보면 웃음이 실실 나온다.

귀여운 아이들의 눈빛도 그렇거니와 아이들의 개성처럼 상태도 워낙 천차만별인지라 매일 아침 보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지적 장애를 가진 진욱이는 아이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다. 얼굴은 천사처럼 예쁘고 잘 생긴데다 늘상 웃고 있지만 덩치가 워낙 커서 진욱이의 과도한 애정표현은 훨씬 어린 친구들에게는 이따금씩 폭력(?)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뿐만 아니라 기분 좋은 마음에 버스의 이곳 저곳을 쿵쿵 두드리다가 늘 기사선생님께 그러다 버스 부서지겠다며 핀잔을 듣곤 한다.

주언이랑 같은 반인 수호는 내리는 문 바로 앞 창가에 앉아 바깥 구경하는데 열중한다. 어쩌다 침을 흘리거나 콧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얼굴에 묻는 얼룩이 전혀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잘 생긴 녀석이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 보다 더 밝을 수 없는 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어준다. 환한 웃음의 수호를 보고 나면 멋진 하루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버스 출입구 바로 앞자리에는 중증 장애 친구가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차량 선생님 곁에 앉는 것을 보면 아마도 즉각적인 대처나 보호가 가장 필요한 친구인 듯 한데, 한번도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무표정이거나 오히려 얼굴을 찡그리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2년을 넘게 만났어도 아이의 이름도 잘 모르고 있다.

며칠 전 가방을 올려주고 난 뒤 차량 선생님이 출발 준비를 하고 계시는 동안 새처럼 앙상하게 마른 그 녀석의 다리에 눈길이 머물러 잠깐 주물러 주었다. 그런데 글쎄 아이가 송아지처럼 깨끗하고 맑은 눈망울로 활짝 웃는 것이 아닌가. 아이의 반응에 고무되어 나도 모르게 아이를 만지는 손에 더 힘을 주고 한마디 말도 함께 건네주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주 심각한 복합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볼 때마다 너무나 안타깝고, 나도 한 때 내 아이에 대해 그러했었던 것처럼, 부끄럽지만 ‘희망’이라는 것에 대해 얘기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감히 이 아이의 눈빛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고 얘기하고 싶다.

똑같이 닮은 두 아이들의 환한 웃음. ⓒ이은희

가족 중에 몸이 아픈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처럼 기약도 없이 가족이 건강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떤 가족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생활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것은 가족 구성원간에 사랑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실낱 같은 희망의 끈이라 할지라도 그 것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 어떤 의사나 물리치료사도 내 아이가 걸을 수 있게 될 거라고 자신있게 얘기해준 적이 없지만 나는 단 한번도 아이가 걸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없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도 아이는 어린이집 버스의 같은 자리에 앉아 버스를 오르내리는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 또는 선생님을 향해 알 듯 모를 듯한 시선을 두고 있다. 반복되는 그 행위가 아이에게 어떠한 의미가 되어줄 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것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힘들게 키워나가는 부모에게도, 하루하루 삶을 지속해 나가는 그 아이에게도. 그리고 그들을 서포트할 의무를 갖고 있는 우리 이웃과 사회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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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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