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시설에 들어가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집안에서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시설에 맡기는 것이 최상의 방안이라고 판단하여 시설에 보내는 경우가 있다.

전문가들이 모여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곳이고,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 서로가 동료애를 느끼기도 할 것이고,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면 장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로서는 시설로 보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경제적 이유에서 장애인을 시설에 맡기는 경우도 있다.

장애 치료에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어 가정에서 부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비용은 의료비일 수도 있고, 장애로 인한 일상 생활에서의 추가비용일 수도 있다.

집안에서 장애인을 돌보려면 누군가 한 사람은 전적으로 장애인에게 매달려야 하는데, 특히 지적 장애인의 경우는 장애 등급과 무관하게 안전사고와 일상 생활을 위해 가족 중 누군가는 장애인을 돌보는 일 외에는 어떠한 일도 할 수가 없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 이런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집안에 다른 환자가 더 있다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장애인을 온전히 돌볼 수 없는 경우에는 시설로 보내는 것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과중한 부담이 시설로 보내는 이유가 된다.

시설로 보내는 것이 반드시 버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좋은 서비스나 혜택을 기대하기에 그렇게 결정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버림을 받은 사람 역시 버림을 받은 상황에서는 시설이 최상의 방안이라 생각하기에 시설로 보내어질 것이다.

문제는 더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는 사람과 버림을 받은 사람이 모두 서비스를 필요로 해 시설에 들어온 후, 발전보다는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인식을 하면서도 정작 더 좋은 서비스를 원해 들어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극명히 갈린다는 것이다.

시설로 보내지 않아도 될 사람이지만 시설에서의 혜택을 위해 온 경우 그 혜택을 누리면서도 나는 다르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고, 시설에서도 시설에 기여할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으로 대접을 받게 된다.

즉 시설을 알뜰히 이용하기 위해 온 사람이 연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대접을 받는 것이다. 형편이 더 좋은데 시설을 계산적으로 이용하는 데도 그런 결과가 온다.

6·25 전쟁 후 방황하는 이들을 위한 많은 시설들이 생겨났다. 장애인 시설도 특수학교를 설립하면서 특수학교 기숙사가 시설과 기숙사라는 두 가지 기능을 갖게 되었다.

시설이 학교보다 먼저 생겨났고, 시설 안에 학교를 설립하다 보니, 이름만 기숙사일뿐 시설은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운영비를 받고, 학교는 교과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운영하는 이중 구조를 갖게 된다.

그러다 보니, 수용 인원을 최대한으로 해 운영 예산을 늘리고 또 장애인들에게도 혜택을 주기 위해 학교 입학 후 거리가 멀어 기숙사에 들어온 경우조차도 시설 입소절차를 밟게 되고, 주민등록까지 옮기게 된다.

시각장애인이면서 영국의 노동부 장관을 지낸 데이빗은 학교를 다니기 위해 시설에 맡겨졌을 때, 과도한 긴장으로 오줌을 싸고 말았다고 자서전에서 말하고 있다.

이처럼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는 주위의 사람들의 위로가 있다고 하더라도 진정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시설에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설에서 여러 가지 서비스를 받기 위해 들어가지만, 대부분은 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나락으로 떨어지는 최악으로 인식하고, 모든 사회로부터 단절됨으로 인식한다.

이제 어둠의 터널로 내 인생을 밀어 넣고 불완전한 미래와 낯선 사람들의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감으로 두려움에 떨며 시설에 들어간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며 들어가는 것이 최악이라기 보다 한번 시설에 들어가면 두려움으로 인하여 다시 나오는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시설은 문화적 격리가 있다. 가정 환경이 아닌 단체로서의 규율이 있고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위한 대화기술과 사회문화적 대화, 지역사회에서의 기능과 역할, 관습과 태도 등에서 괴리를 느낀다. 마치 오랜 기간 교도소에 다녀 온 것 같이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들다. 사고의 방식과 가치의 기준도 다름을 알게 된다.

탈시설을 마음먹은 후에도시설을 벗어나 생활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준비가 필요한데, 그러한 준비를 할 능력이 없다. 마치 돈을 벌려고 집을 팔고 외국에 갔다가 돈을 벌어 돌아오니 옛집 수준의 집을 구입할 형편도 되지 못하는 격이다.

시설에 있으면서 주어진 용돈이나 국가로부터 주어진 연금이니 수당 등은 모두 시설에 후원하거나 생활비로 써 버린 후, 막상 독립을 준비하면 비로소 독립에 이렇게 많은 비용이 들어야 하는지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월세 보증금이라도 마련해야 하고, 주방과 청소도구, 휠체어 등 보장구도 마련해야 한다. 시설에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큰 거금이다. 아무것도 없이 단지 몸 하나만 나가면 될 것이라 막연히 생각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렇게 많은 것을 동반해야 는지 나중에야 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끌어 주고 도와주는 동료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삿짐을 옮겨주는 사람도, 명절에 놀러와주는 사람도, 시장을 보는 것 등 도와주는 사람도, 혼자 저녁에 불이 꺼지면 외로움을 달랠 사람도, 여러 가지 생활에서의 어려움을 나눌 사람도 동료로서 필요하다. 그러한 동료가 없으면 나갈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명절이 되면 시설은 가장 최악의 주거시설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그럼에도 시설에서 나가는 것에 두려움이 앞선다. 명절에는 한 번씩 시설에서 나가는 것에 대한 꿈을 꾸지만, 감히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봄바람과 가을바람이 불면 부모를 만나거나 은인을 만나 행복해지는 동화같은 신데렐라 꿈을 가지고 가출을 하지만, 장애인들은 철저히 현실을 두려워하며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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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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