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보면 이렇게 함박웃음을 짓는 남자, 마주보며 웃는 나. ⓒ한옥선

함박눈이 내려 마음이 싱숭생숭한 지 성민씨가 전화를 했다. 물론 눈이 와서 전화 한 것만은 아니다. 언제나 아침 점심 저녁 별 일 없는 지 밥은 먹었는지 전화에 문자에 핸드폰이 밤낮으로 고생이 많다. 하하

“점심 먹었어?”

“네 먹었지용”

“큰 일 났다.”

“왜요? 무슨 일 있구나?”

“응 뭐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해”

“뭐가? 파리? 모기 아님 눈에 뭐가 있나?”

“너가 왔다 갔다 해”

“깔깔깔 그럼 나 파리 된 거야? 엥~엥~엥~”

“당구에 빠진 사람이 자려고 누워 천장을 보면 당구대로 보인다고 하던데 난 모든 여자들이 자기로 보여. 껄껄”

“뜨악”

세상에나 50하고도 떡국 몇 그릇 더 먹은 남자가 이렇게 유치할 수가 있나.‘안녕하세요’라는 말 한마디 하면 할 말이 없어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사람이 완전 유치에 극을 달리고 있다. 문득 우리가 만난 지 얼마나 됐지 날짜를 세어 보았다. 헉 벌써 1033일이다.

“이젠 콩깍지 좀 벗지, 그러고도 남을 시간이 흐른 거 같은데”

“너도 50넘어 사랑해 봐 그게 브레이크가 듣는 줄 아니?”

나는 사랑이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이제야 머리로 가슴으로 몸으로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내가 변하는 모습은 잘 몰라도 상대방이 변하는 모습은 순간순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변하는 거라고 하던데 맞다. 사랑은 변하는 것이다.

우린 겉모습도 생각도 할 수 있는 것들도 변했다.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것들도 하게 되고 서로에 장애에 대해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더 많아지고 그리고 무엇보다 웃음이 많아졌다.

이전에 웃음이 호박넝쿨에 드문드문 핀 호박꽃이라면 서로를 만나고 나서의 웃음은 봄날 벚나무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다. 이래도저래도 무슨 말을 해도 웃음이 터져 꽃잎 날리듯 마구 웃음이 쏟아지는 것이 딱 그렇다.

성민씨가 나를 만나면서 한 이야기 중 내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행복하다고 말하고 웃고 살긴 했지만 왠지 가슴 한 구석은 늘 구멍 뚫린 거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명절이며 무슨 날이면 더 그 구멍은 커지고 찬바람이 휑하니 들어오는 기분, 형제가 있어도 부모가 있어도 채울 수 없는 부분. 이렇게 사는 날까지 살다가 그냥 아무 미련 없이 가지 뭐 그랬는데. 이젠 세상이 달라 보이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누가 뭐래도 마음껏 사랑하고, 표현하고 그동안 포기해 버렸던 것들을 다하고 살고 싶다고. 미쳤다고 해도 중증이라고 해도 실실 웃음이 난단다.

이런 성민씨를 내가 감히 어떻게 말릴 수가 있을까? 그렇게 커다란 태풍 같은 사랑을 내게 퍼붓듯 주는데 고마워서 나도 유치 백과사전 다 뒤져서 맞장구 쳐야지 사랑에 빠지면 미치거나 중증이거나 둘중 하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그런 손발 오그라드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할까. 아~오늘은 혀 짧은 소리 좀 내봐야겠다.

“자기양~”

용기내어 사랑하자. 마음을 다해 사랑하자. 사랑하며 살다 가기에도 너무 짧은 시간이다.

먼 길을 돌아 만난 사람 그래서 더 소중하다. ⓒ한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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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타인의 가스 폭발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 받고 다른 사람들보다 이름표 하나 더 가진 욕심 많은 사람. 장애인이 된 후 고통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불평이나 원망보다 감사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얼굴부터 온 몸에 58%의 중증 화상에 흉터들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용감하게 내놓고 다니는 강도가 만나면 도망 갈 무서운 여자. 오프라인 상에서 장애인들을 만난다는 것이 어려워 온라인상의 장애인 카페를 통해서 글을 올리면서부터 다른 장애인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삶이 사소한 나의 글 하나에도 웃는 것이 좋아 글 쓰는 것이 취미가 된 행복한 여자입니다. 제가 내세울 학력은 없습니다. 다만 장애인으로 살아온 6년이 가장 소중한 배움에 시간이었고 그 기간 동안에 믿음과 감사와 사랑이 제게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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