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출근해요. 사랑이하고요

“어머님, 저 사랑이하고 지금 출근하고 있어요.”

“그래, 몸조심 잘 하고 좋은 하루가 되길 바란다.”

아내와 며느리가 손전화로 주고받은 문자의 내용이다. 요즘 보면 세 사람이 문자를 주고받는 것 같다. 아내와 며느리, 그리고 사랑이.

사랑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게 무슨 소린가 했었다. 태명을 짓는 일은 우리 세대에서는 드문 일인 것이다.

“여보, 사랑이가 누구야?”

“아, 글쎄 태아에게 붙여준 예명이래요.”

“그렇군, 신세대는 뭐가 달라도 다르군 그래.”

“혜림이가 병원에 출근할 때마다 ‘사랑아 출근하자’ 한대요. 하하하.”

얼마 전,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부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는 생각에 한바탕 폭소를 터트렸었다.

“여보, 좋겠수, 할아버지가 되어서요.”

“아니 벌써 내가 할아버지란 말이야. 허허허.”

“영감, 성당식구들이 날 할머니라고 부르길래 세월이 참 빠르구나, 했어요.”

“난, 할아버지 아니다. 아직 할아버지 소리 듣기에는 너무 젊잖아.”

“영감은 항상 청춘인줄 아세요. 나이가 50이예요.

“.....”

문득 나는 사랑이가 크면 사랑이에게 ‘너의 할아버지는 이런 삶을 사신분이다’ 라고 말해줄만한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태어날 손자에게 어떤 삶을 살아왔다고 들려줄 수 있을까? 어쩐지 변변찮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대까지 학교 공부하느라 바빴고, 삼십대에 결혼하고 허겁지겁 사느라 바빴고, 사십대에 아이들 가르치느라 허리한번 제대로 못 피고 살아왔다. 되짚어 보면 내세울만한 게 별로 없다.

“여보, 손주를 본다는 게 좋기도 하지만 은근히 걱정도 되는구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사랑이에게 내세울 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

게으름 안 피우고 더 열심히 살걸 그랬다. 지금 와서 후회하면 무엇 하리. 지금도 늦지 않았다. 더 열심히 살자.

“사랑아, 오늘도 즐겁게 지내고 있겠지. 이 할아버지가 우리 사랑이에게 ‘할아버지는 이런 삶을 살았다’ 라는 말을 떳떳하게 해줄 수 있도록 앞으로 더 열심히 살께. 사랑아 파이팅.”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