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民願)의 사전적 의미는 ‘주민이 행정 기관에 대하여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일’이고 민원사무란 ‘국민이 행정 기관에 대하여 요구하는 민원에 관한 사무. 주로 허가·인가·면허·등록의 신청, 이의 신청, 진정, 건의, 질의 따위에 관한 사무’를 말한다.

민원수어 표지. ⓒ이복남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하게 되는 주민등록증 발급에서부터 출생신고 혼인신고 사망신고 전입신고 장애인등록 등은 성인이라면 본인이 혼자서 해결한다. 물론 처음이라 잘 모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민원 담당자와의 의사소통 등을 통해서 자신의 요구를 처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귀가 안 들리고 말을 하지 못해서 의사소통이 어려운 청각언어장애인은 민원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수어 통역자를 대동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혼자서 관공서를 찾았다가 쭈뼛거리며 그대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농아인들은 장애의 특성상 눈으로 모든 정보를 입수하기 때문에 사람을 직접 만나서 일처리를 해야 하고 우리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필담으로도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이런 농아인의 특성을 모르는 민원업무 담당자는 농아인들이 오면 종이와 펜을 꺼내어 대화를 시도하고 있어 농아인은 혼자서 민원실을 찾기가 고역스럽다 못해 두렵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질수록 농아인 혼자 민원실을 찾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고 농아인 대상 민원업무 담당자와의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강주수의 민원수어 인사말에서)

정부에서는 민원업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하여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하고 있어 전국 어디서나 행정서류를 발급 받을 수 있으며, 인터넷을 통한 발급도 가능하다. 더구나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민원실 공무원을 대상으로 친절교육 등을 하면서 민원인들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기 위한 대민봉사에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건청인 즉 듣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민원업무 담당자들도 청각장애인과 수어에 대한 이해와 홍보는 미미한 수준이다.  

민원수어 ‘인사’. ⓒ이복남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민원업무 담당자가 수어를 할 줄 알아서 청각장애인과 수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수어도 하나의 언어로 건청인에게는 외국어를 익히는 것처럼 쉽지만은 않다. 

강주수씨는 민원업무 담당자가 청각장애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민원관련 180여 단어와 50여문장을 사진으로 수록한 「민원수어」(하나출판사)를 발간했다. 그리고 민원업무 담당자들이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도록 70단어와 12문장을 따로 모아 「민원수어 미니 북」도 함께 내 놓았다.

「민원수어」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 농아인과 수어, 제2장 민원 수어의 필요성, 제3장 민원상담, 제4장 민원수어, 제5장 민원문장, 제6장 지문자/지숫자/알파벳 순으로 되어 있다.

민원수어 미니북 표지. ⓒ이복남

제4장 민원수어는 인사법부터 나오는데 농아인이 관공서를 찾았을 때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안녕하세요’의 수어는 공손하게 오른손으로 왼팔을 쓸어 내렸다가 주먹을 쥐고 어깨 넓이로 벌리며 고개를 숙인다. 그 다음에 만나서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등의 인사가 끝나면 민원인들이 주로 많이 사용하는 고지서, 공무원, 과태료, 벌금, 기초생활수급권, 인감도장, 장애인등록증, 출생신고, 사망신고 등 민원용어와 여권업무,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관공서 등을 그림과 함께 수록하고 있다.

민원수어 관공서 편 첫장에 정부가 나오는데 정부(政府)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을 포함하는 통치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인데 일반적으로는 행정부를 뜻한다. 이 같은 정부를 수어로는 어떻게 나타낼까. 오른손 1지(수어에서는 검지가 1지가 된다)를 펴서 이마에 댄 다음 양손을 구부려 양 어깨에 올린다.

1지를 이마에 대는 것은 최고라는 의미와 지난날 정부를 대표하던 행정부 즉 중앙청 꼭대기가 솟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여기에 양손을 구부려 훈장처럼 어깨 위에 올리는 것은 책임이라는 뜻이다. 책임은 보통 오른 손만 오른쪽 어깨에 올리는데 양손을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이리라.   

민원수어 ‘정부’. ⓒ이복남

수어는 각 단어마다 나름대로의 의미와 뜻을 담고 있는데 맨 처음 누가 어떻게 수어를 만들었는지 그 어원과 유래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수어 단어의 의미를 하나하나 되새겨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많은데 특히 정부라는 수어의 뜻과 의미를 보면 정말 그 재치와 지혜에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부는 나라의 최고로서 (국민)을 책임지고 있다는 의미인데 그 국민 속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포함되는 것일까.

일찍이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하므로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라고 했다.

청각장애인이 쓰는 수어는 또 하나의 언어이다. 저자 강주수씨는 수어가 말하는 사람들의 언어와 달라 서로 뜻이 통하지 않으므로 농아인들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 이를 안타깝게 여겨 180여 단어와 50여 문장으로 새로 민원수어 책을 만들었으니 민원담당자들은 누구라도 쉽게 배우고 익혀서 농아인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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