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놀이 언제 가요?” 때가 되었는지 지난 10월초부터 문의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가을나들이는 11월 8일로 정했다. 그런데 기상청에서는 7일 8일에 비가 오겠다고 했다. 설마, 아닐 거야, 요즘 일기예보는 믿을 수가 없어. 7일 하루 종일 가랑비가 간간히 내리는 가운데 나들이 준비를 했다.

경남수목원 입구. ⓒ이복남

지난 여름 음식을 준비해가서 일회용 그릇으로 먹다보니 쓰레기도 많거니와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이번에는 나름의 그릇들을 준비했다. 일회용 그릇들은 그냥 사용했지만 일회용이 아닌 그릇을 바로 사용하기가 개운치 않아 밤늦도록 식판과 접시, 컵과 수저 등을 씻고 닦고. 준비를 다 끝내고 밖에 나가보니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8일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이 고추와 마늘을 먹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풋고추와 마늘을 썰었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아침 7시쯤 되었을까. 전화가 울렸다.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어쩌지요?” “비는 오지 않을 거고 비가와도 갑니다.” 여름나들이 전날에도 비가 오더니 정작 당일에는 햇볕이 쨍쨍했었다.

8시 50분 약속했던 봉사자 차량이 왔다. 간밤에 준비한 짐을 싣고 시장에 가서 밥과 국을 찾아 약속 장소인 부산일보사 앞으로 향했다. 유리창에 빗방울이 간간히 떨어졌는데 까짓 비가 좀 오면 어떠랴.

산림박물관 가는 길. ⓒ이복남

10시가 가까워오자 사람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는데 첫 인사가 “비 오면 어떡해요?”였다. “쉿! 비 안 온다니까요, 입이 보살이라니까 말조심 하세요. 하늘이 들어요.” 모두가 웃었지만 진심이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경남수목원이다. 인원을 점검하고 출발했다. 다른 차량들과는 10시 30분 진영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가을의 주말이라 길이 막혔다. 함께 가는 차량은 총 5대인데 필자가 탄 차는 10시 40분경에 도착했고 2대는 한참이나 지나서 도착했다.

경남수목원은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 482-1번지에 있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성IC에서 나가야 되는데 길이 너무 막히는 것 같아 국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서마산으로 해서 내서IC를 지나 진동으로 향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산들은 빨강 노랑 등 형형색색으로 불타고 있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날 즈음 “아 경치 참 좋네!” 탄성을 지른 사람이 시각장애인이라 모두들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국도 14호선을 타고 임곡삼거리를 지나 수목원에 도착해보니 의외로 방문객이 많았다. 입장료는 어른이 1천5백원이고 장애인은 무료다. 미리 전화를 해 둔 덕분인지 우리 일행은 봉사자, 어린이 등 총 33명이었는데 점검도 안하고 그냥 들어갔다.

십이지신상. ⓒ이복남

이미 12시30분이라 산림박물관을 1시간쯤 둘러보고 1시 30분까지 잔디원에 모여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박물관 1층 로비 왼쪽 창가에는 십이지신상이 줄을 서 있고 오른쪽으로는 잘 다듬어진 고사목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전시물은 만지지 말아야겠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일일이 만져보곤 했다. 그밖에도 국내외의 주요 목재가 설명과 함께 진열되어 있었고 우리 전통악기와 오광대탈이 실물크기로 전시되어 있었다.

시각장애인이 나무를 만져보고. ⓒ이복남

전시실은 2층에 있었는데 지체장애인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시각장애인은 나무계단으로 올라갔다.

제1전시실(산림의 기원과 분포)은 우리나라와 세계의 산림대, 임업의 역사, 산림생성의 기원, 산림형성의 조건 등을 소개하고 있었다. 제2전시실(산림의 생태와 자원)은 짐승, 곤충, 새, 식물군락을 비롯하여 산림과 토양, 목재민속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오는 길에 아직도 논에 그대로 남아 있는 벼를 보면서 얘기했던 도리깨 탈곡기 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종다래끼(오른쪽 둘째줄). ⓒ이복남

종다래끼를 아시나요. 종다래끼는 어린 시절 나물 캐고 바지락 잡고 씨 뿌리던, 짚이나 싸리로 만든 입구가 좁고 속이 넓은 바구니인데 4~50년 전만 해도 흔히 사용하던 생활용품인데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제3전시실(산림의 혜택과 이용)에는 목재의 가공과 이용, 임산물의 종류, 한지의 제조과정 등과 허준의 동의보감과 관련된 약용식물도 있었다. 제4전시실(산림의 훼손과 보존)에는 산림의 훼손과 보존에 대한 내용으로 시대별 식물 표본, 우포의 자연 등을 다루고 있었다.

소리 나는 설명서. ⓒ이복남

각 전시실마다 음성안내가 나와서 시각장애인들도 들을 수 있었고 제2전시실에는 각종 짐승과 새소리 등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각 전시실마다 앞에 탁자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학생들의 필기를 위한 배려이지 싶다.

즐거운 식사시간. ⓒ이복남

실제 숲속 길 같은 생태실험실을 돌아 나오니 연방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배고파요 밥 주세요. 다른 사람들은 먼저 잔디원으로 가라하고 봉사자 몇 분과 함께 주차장으로 점심 보따리를 가지러 갔다. 그런데 잔디원보다 가까운 연못가에 더 멋진 장소가 있어 그곳에다 전을 폈다.

음식 준비를 하면서 돼지수육을 할까 싶어 수육전문점을 하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수육값이 많이 올랐다고 했다. 수육은 아직도 관으로 파는 모양인데 도매로 1관에 5만원이란다. 30명이라면 3관은 해야 할 거라고. 너무 비싸서 곤란하겠다고 했더니 1관은 후원을 해주겠다고 해서 아침에 3관을 받았다.

연못가의 낙엽. ⓒ이복남

맛있는 수육에다 채 식지 않은 손두부 등 먹을거리가 풍성했음에도 시간이 늦은 탓인지 사람들이 밥만 찾아서 다 퍼 주고 나니 내 밥이 없다. 밥 퍼던 사람은 어떡하냐고 발을 동동 구르는데 “괜찮아요. 저는 두부 김치에 막걸리 한잔이면 되니까 걱정 말아요.”

풋고추와 마늘을 쌈장에 찍어 수육도 한 잎 먹고, 두부를 김치에 싸서도 먹으며 모두가 희희낙락. 오늘은 대리기사가 있어 목사 기사님도 막걸리 한잔을 들이 키고 허허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 후식으로 떡도 있고 밀감도 있어요. 식사를 일찍 끝낸 사람들은 연못가에서 낙엽을 밟으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이복남

“식사 마치신 분들은 아까 못 가본 곳 가보시고 4시까지 다시 주차장으로 모여 주세요.” 수목원에는 열대식물원 난대식물원 선인장원 수생식물원 야생동물원 등도 있었다. 수목원 전체를 다 둘러보려면 최소 4시간 정도는 걸려야 산정호수를 지나 전망대까지 가 볼 수가 있을 것 같아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단풍과 낙엽 속에서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한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 내년 봄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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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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